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나 멕시코 경제를 좌우하는 카를로스 슬림 헤루, 투자왕 워렌 버핏의 행보는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선택받은 소수에게 부(재산)가 집중되는 것은 그 외의 다수에 속하는 우리에게 득이 될까, 실이 될까?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들은 부자들이야말로 다수의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자본을 제공해서 경제 활동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라며 세금 및 재분배 정책과 같은 일반적인 부(재산)의 분배 방법은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부의 불평등은 경제 성장의 장애물이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창업을 하든, 교육을 받든, 훈련 과정을 수강하든 이를 위해 대출을 해야하는데, 대출을 하기 위한 담보가 없으니 경제의 역동성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비교 경제 저널(the Journal of Comparative Economics)에 실린 한 연구가 이 논란의 해결에 도움이 될 듯 하다.
빌라노바 대학의 수티르사 박치(Sutirtha Bagchi)와 콜롬비아 대학의 얀 스베이나르(Jan Svejnar)는 억만장자들의 재력을 측정하고, 불평등이 발생하는 이유가 문제이지 불평등 수준 자체는 경제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억만장자가 정치적 유착관계를 통해 부(재산)를 획책한 경우에는 부의 불평등이 경제성장에 장해로 작용했다. 하지만 시장, 즉 경제활동을 통해서 부를 획득했고 정부와 무관한 억만장자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세계 여러 국가의 부(재산)을 분석하기 위해, 수티르사 박치와 얀 스베이나르는 독창적인 측정 방법을 생각해냈다. 바로 잘 알려진 정보지- 포브스에서 매년 발표하는 억만장자 목록을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포브스는 1982년 미국 400대 부자 명단을 소개했고, 1987년에는 이를 세계 억만장자 명단으로 확대해서 발표해왔다.
포브스에서는 명단 작성시 해당 국가의 억만장자들이 지닌 부(재산)의 총액을 구한 뒤 이 총합을 그 나라의 GDP(국내총생산량), 인구 혹은 물적자본으로 나누어 각 국가의 규모에 따라 억만장자의 부(재산)를 계량화했다.
연구에 따르면 부의 불평등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1987-2002년 사이 23개 조사국 가운데 17개 국가에서 부의 불평등은 커졌고 빈부격차가 줄어든 나라는 여섯국에 불과했고 전했다. 또한 부의 불평등 수치가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실도 밝혀냈다. 어떤 국가에서 억만장자의 비율이 증가할수록 나라 전체의 경제 성장이 둔화된 것이다.
부와 경제 성장, 정치적 유착 관계를 관찰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과거 연구는 한 국가의 부의 불평등 수준을 관찰하는 수준에 그쳤고, ‘왜’ 불평등이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부의 불평등이 정치 권력이나 인종차별과 같은 구조적 불평등의 산물인지 아니면 소수의 사람이나 기업이 시장 논리 속에서 다른 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활약을 보인 결과의 산물인지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연구자들은 포브스 억만장자 명단을 주의깊게 살핀 뒤 정치적 유착관계를 통해서 부를 획득한 부류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분류했다. 이렇게 하니, 아주 극명한 대비가 보였다. 거의 대부분의 억만장자가 최소한 한 번 이상은 정치적 유착관계를 통해서 이득을 본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정경유착이라는 개념을 아주 보수적인 기준으로 적용해서, 정부와의 연계를 통해서 부를 획득한 것이 분명한 억만장자들만을 따로 분류해냈기에 친-비즈니스적인 정부 정책으로 득을 본 싱카폴이나 홍콩의 억만장자는 여기에서 제외됐다.
연구자들이 주목한 것은 수하르토 재임 시기의 인도네시아와 같은 사례였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서는 수입 승인을 위해서는 정계와 연을 대야하는 일이 일반적이었다. 또 1990년대 중반의 러시아도 주요한 사례인데 이 때는 일부 러시아 공직자가 민영화 프로그램을 이용해 하룻밤 사이에도 막대한 재산을 벌어들이곤 했다.
연구자들은 정경유착이 있는 국가에서 억만장자에게 부가 집중되는 현상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래의 표에서 보이듯이 포브스 억만장자 명단 상위의 4개 국가는 콜롬비아, 인디아,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이고 미국과 영국은 하위에 올렸다.

러시아,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말레이시아,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태국, 한국, 이탈리아가 상대적으로 정경 유착과 이로 인한 부의 불평등이 심한 국가다.
홍콩, 네덜란드, 싱가폴, 스웨덴, 스와질랜드, 영국은 모두 정계와 재계 사이에 유착관계가 전혀 없는 국가들이다. 미국 또한 정경유착 및 부의 불평등 수치가 낮은 편으로 상위 10위 권에서 살짝 밀려난 1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 결과가 아주 명확해졌다. 정경유착을 일삼는 억만장자는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이 부의 불평등 현상을 관찰해보니 경제성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대부분 정경유착으로 인한 것이었다.
연구자들은 한 국가의 부의 불평등 수치가 3.72% 상승하면, 1인당 실질 GDP가 0.5% 하락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정경유착으로 인한 부의 불평등은 왜 그렇게 국가에 악재로 작용하는가? 연구자들은 부와 권력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될 경우, 재계와 정계의 소수 엘리트들이 정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다수의 이익을 저해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정계와 유착한 사업가가 소비자에게 더 높은 서비스 비용을 청구할 수도 있고, 대출 및 펀딩에 대한 규제를 두어 다른 이들의 창업을 막아 경쟁자를 제거할 수도 있다.
수티르사 박치는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준 사실 중 하나는, 억만장자가 일단 어느 정도 상당한 규모의 부를 획득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경쟁자의 자산 획득을 제한하고자 하는 일이 흔하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멕시코에서 통신망 사업을 처음 시작한 억만 장자, 카를로스 슬림 헤루의 사례를 꼬집어 말했다. 카를로스 슬림은 멕시코에서 통신망 민영화가 이루어졌을 때 상당수의 지분을 낮은 가격으로 인수해서 막대한 재산을 벌어들였다.
멕시코 정부에서는 그렇게 하면 카를로스 슬림의 그루포 카르소에서 가격을 낮추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통신망을 보급하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수티르사 박치는 “현실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말한다.
현재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멕시코의 통신비가 눈에 띄게 상승하고 있는 반면 통신 부문에 대한 투자는 감소하고 있다.
또 다른 예로 러시아의 올리가르키(신흥재벌, 과두재벌)을 들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포브스의 억만장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러시아 재벌은 없었다. 그러다 러시아에서 석유와 천연 가스 사업을 민영화하기 시작했다.
수티르사 박치는 “시대를 잘 만난 특정 정부 관계자들은 천연자원 사업체들을 완전 헐값에 사들여서 자기들 통제 하에 두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 예로, 러시아의 억만장자 중에서 미카일 프리드먼(Mikhail Fridman)의 경우를 살펴보자. 2001년 월스트릿 저널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그는 1996년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의 재선 캠페인을 후원함으로써 국영 석유 및 광업 회사를 싼값에 인수할 수 있었다.
수티르사 박치는 이후 20년에 걸쳐, 정실 자본주의가 러시아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경제잠재력을 저해했다고 평했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괜찮은 순위에 올랐지만, 작년 연구 결과를 볼 때 2002년 이후 정계와 재계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구제금융안 발효와 수퍼팩(Super PAC)의 도입으로 액수의 제한이 없이 선거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되면서 전에 없이 미국에서 정재계의 유착이 긴밀해질 가능성이 생겨났다. 이로 인해 경제 성장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확률도 높아졌다.
출처: 케이어메리칸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