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주 금요일(7일)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마라고 휴양지에서 마무리된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간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한 ‘100일 계획’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새 정부 출범 이후 우려돼온 두 나라의 전면적인 통상 마찰은 당분간 일어나지 않게 됐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정상회담 직후 언론 브리핑에서 “여러모로 볼 때 가장 의미 있는 일은 100일 계획”이라며 “양국이 친밀한 관계를 쌓는 데 매우 매우 중요한 상징”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양측이 각각 성명을 통해 두 정상이 ‘100일 계획’에 합의한 사실만 공개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기간부터,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는 점을 꾸준히 비판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100일 동안 양국 실무진이 후속 협상을 통해 미국의 대 중국 수출을 늘려서 무역적자를 줄이는 방안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영국신문 파이낸셜타임스가 일요일(9일) 양국 소식통을 인용, ‘100일 계획’이 어떻게 진행될지 전망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14년전 단행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를 풀고, 외국계 자본이 중국내 증권·보험사 최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미국에 제안할 예정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에서 보통 ‘광우병’으로 불리는 ‘소해면상뇌증(BSE)’이 발견된 뒤 지난 2003년부터 수입금지 조치를 유지하고 있다. ‘광우병’ 파동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이번 ‘100일 계획’ 후속협상을 통해 이를 해제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한 중국은 자국 금융산업 보호를 위해, 미국을 포함한 외국계 자본이 증권· 보험 분야 회사들의 지배지분을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제해왔는데 최근 증권에서 중신증권(CITIC), 보험에서 중국런셔우(차이나라이프) 등 자국 기업이 급성장하면서, 외국 자본에 빗장을 풀어도 좋다는 자신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 개방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오랜 요구사항이었다.
미국은 이밖에 25%에 이르는 자동차 수입관세를 낮추고, 첨단제품 수입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중국 측에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큰 틀에서 중국이 미국산 제품과 용역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전망할 수 있다.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이미 미국산 경질유의 세계 최대 수입국인데, 최근 각분야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원유 수요가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이 얻을 반대급부는 환율조작국 지정 유보가 거론된다. 미 재무부가 조만간 발간할 주요 무역상대국 환율정책 보고서에서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가 판가름되는데,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미중 정상회담 이후 환율조작국 지정 계획에 대한 질문에 “곧 나올 환율정책 보고서에서 이야기하겠다”고만 언급했다. 하지만, 두 나라가 정상간 합의에 따라 무역·통상 역조를 줄이기 위한 협상에 돌입하면서, 미국이 곧바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확률은 낮아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그만큼 보복관세를 부과받는 등 무역거래상의 불이익을 받게된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나온 무역분야 합의 들여다 봤지만, 합의 사항을 함께 발표하는 공동기자회견이나 성명이 없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공동기자회견도 열리지 않았고, 공동성명 발표도 생략됐다. 중국어권 매체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중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목표를 가지고 이번 회담에 임했다. 근래 중국은,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동등한 양대 강국이라는 의미의 ‘신형대국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이 ‘동반자 관계’라는 표현을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시하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회담후 두 나라가 각각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이 “상호존중의 기초 위에서 차이를 관리하면서 협력 영역을 확대하도록 노력한다”고 양국관계를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다.
중국의 인공섬 건설과 군사시설 구축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남중국해에서 국제규범 준수의 중요성과 비군사화에 대한 중국의 약속을 (시 주석에게) 환기시켰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쪽 발표 자료엔 남중국해 관련 언급이 전혀 없어서, 이 쟁점과 관련해 회담 분위기가 중국에 불리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두나라 사이의 종합적인 안보대화 경로를 정례화한 것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공통적인 성과로 꼽힌다. 회담 뒤 양쪽 발표를 보면 두 정상은 양국간 외교안보 대화, 포괄적 경제 대화, 사법 집행·사이버안보 대화, 사회문화 대화 등 4가지 고위급 대화체를 새로 만드는데 합의했다. 특히 국방장관이 참여하는 외교안보 대화가 신설된 것은, 방위분야 소통 필요성에 두 나라가 공감한 것으로 풀이된다. 두 나라는 그 동안 ‘전략경제대화’라는 경로를 통해 경제·사회문화 부문을 포괄해왔는데, 새롭게 안보 대화 경로가 생긴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 핵 문제도 주요 의제였다. 하지만 북한 핵문제 해법에서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핵 문제에 대한 큰 인식차만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 김정은 정권에 핵· 미사일개발을 포기하라는 압력을 행사해야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이 독자적으로 행동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은 반면, 시 주석은 이 같은 요구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것으로 여러 소식통들이 언론에 밝혔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방어적 조치로 주한미군이 배치중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 사드)’에 대한 갈등도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한반도 사드 배치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차질없이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주요 언론이 분석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일요일(9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왕이 부장 명의의 미·중 정상회담 상황통보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