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우리 마음의 정직에 대해 잔소리를 합니다. 우리가 편지를 쓸 때 “Sincerely yours”라고 썼다면, 그것은 우리가 신실했기 때문입니다. 종종 “Love”라는 단어를 쓸 때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씁니다. 우리가 드물게 “Much love”라고 쓰는 것은 내가 아주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All my love”라고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인적인 사랑이었는가? 스스로 물을 때 마음에 찔리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마음으로 그렇게 사랑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마음만이 아니기 때문에 조건 없는 사랑을 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것을 통해 우리 삶에 거대한 변혁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어려운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고, 내가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엄청난 희생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마음만이 아니라 삶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향한 끊임없는 그리움과 관심입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내년에 만나자”라고 헤어지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은 전국체전이 아닙니다. 사랑은 끊임없는 그리움입니다. 방금 헤어졌어도 다시 보고 싶은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사모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는 성도의 중요한 본색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끊임없는 그리움, 그 사랑이 예배가 됩니다. 그리고 그 예배가 삶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주일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진심이라면 우리는 그 사랑의 고백을 우리의 일상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주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 하신 것은 우리의 마음과 행하는 모든 것을 의미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식사를 할 때나, 우리가 일터에 있을 때나, 우리가 도서관에 있을 때나,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든지, 어디서든지, 어느 때 이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그리 낭만적이지 않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예배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존재하게 하는 일에 우리 마음 속에서든지, 이 세상 속에서든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당신의 삶이 예배가 되게 하십시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성도의 본색입니다.
저는 큰 건물을 가진 교회나, 수많은 인파가 예배당을 메운 교회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가슴이 저미도록 그리워하는 교회는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적 수준을 능가하는 예배를 드릴 수 없으며, 자신이 드리는 예배 이상의 삶을 살 수도 없습니다. 믿음의 수준은 예배 안에 갇히고 예배의 질은 삶의 질에 묶입니다. 예배는 불꽃처럼 드려져야 합니다. 인생도 불꽃처럼 타올라야 합니다. 성도가 예배를 회복하면 인생이 회복됩니다. <목양실에서 손경구 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