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로 부터 아이티선교여행 기행문을 써달라는 제안 받았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왔는데 구태여 내가 쓸 필요가 있을까하여 대답 없이 웃음으로 대신하였는데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파송되신 이경휘 선교사님이 폭탄테러로 인하여 순교를 하신 것이 계기가 되어 용기를 내어 기행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파송예배에도 참석을 못하고 추모예배에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을 못하게 되어 죄책감을 느끼며 이 글을 고 이 경휘 선교사님에게 바칩니다. – 필자 주: 엄재학 집사
” 아이티 선교 여행 ”
2011년 11월 7일
2011년 제일 사랑교회 머슴선교회 회장을 맡으며 회원들의 제안에 따라 처음에는 에콰도르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선교하시는 장다슬 선교사님을 돕기 위하여 선교지를 에콰도르로 정하고 개인후원인과 골프대회를 통하여 기금을 마련하고 있던 중 저에게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9월 예정이었던 에콰도르 선교여행이 11월 7일 아이티 선교 여행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일정은 4박 5일로 정하고 대원은 최시훈 목사님, 최창렬 장로님, 유성환 집사님 그리고 필자 4명으로 구성된 선교 여행팀이 구성이 되었습니다.
11월 7일 새벽 3시에 교회에서 만나 공항으로 갔습니다. 모두들 선교여행에 들떠서 피곤한지도 모르고 Spirit Airline에 가서 짐을 부친 후 비행기를 타기위하여 Gate로 갔습니다. Detroit 공항을 출발하여 2시간여 만에 Florida 있는 Fort Lauderdale-Hollywood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하여 간단한 점심식사를 한 후 아이티행 비행기를 갈아탔습니다.
저희 일행은 경비를 아끼기 위하여 저가 항공의 대명사 Spirit Airline을 이용했는데 의자와 의자의 간격도 좁고 조절도 하지 못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이 항공사는 물도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합니다. 다음에 이 항공사를 이용하시려면 이런 것을 감안하셔야 합니다. 물도 탑승 전에 지참하시고 탑승을 하실 때도 조그만 가방 하나만 기내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고 그 외에는 부쳐야하는데 한 개에 $35 ~ $40 입니다. 저희들이 일인당 왕복 $460 에 Spirit Airline 티켓을 구입하였는데 다른 항공사는 값이 $200.00 이상이 비쌌습니다.
이제 1시간 30분 있으면 우리들의 행선지 아이티 땅에 도착하게 됩니다. 비행기 안이 초만원이었습니다. 아이티행이 하루에 한번에서 두 번 정도 운행이 되기 때문에 항상 만원이 된다고 합니다. 드디어 섬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티는 섬나라로 인구는 1,000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섬의 반은 도미니카 공화국 반은 아이티 공화국입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상대적으로 아이티보다는 모든 경제 조건이 좋고 생활환경이 좋습니다.
섬이라 그런지 비행기 아래에서 내려다본 아이티는 너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갑자기 2년 전 아이티 지진이 일어났을 때가 생각납니다. 필자는 Las Vegas Trade Show를 참관한 후 지인들과 함께 Jamaica에 가기위하여 Florida Miami 국제공항에 도착을 하였는데 그 때 뉴스 속보로 아이티 공화국에 지진이 나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는 뉴스를 접했었습니다. Jamaica는 아이티 공화국에서 비행기로 약 30분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였는데 여행을 마친 후 뉴스로 들은 것은 경악 그 자체 이었습니다. 10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그 뉴스를 들은 후 자책감에 빠졌던 생각이 듭니다. 휴가 중에 일어난 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너무 아팠었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드디어 아이티공항에 무사히 착륙했습니다. 역시나 상상한데로 보이는 것은 공항인지 아니면 시골의 한 기착역인지 판단이 안 되는 조그마한 공항 이였습니다. 입국수속과 짐을 찾기 위하여 공항 청사까지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작고 지저분한 공항 안에서 짐을 찾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는데 Cart를 직원들이 가지고 오면 그 Cart를 빌리기 위하여 구석에 마련된 조그마한 책상 앞에서 미화 $2.00을 지불한 후 부족한 Cart를 쟁탈(?)하기 위하여 서둘러야 합니다. 이곳은 질서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짜증이 났었지만 한국인 특유의 감각으로 평상심을 되찾고 Cart를 차지하여 짐을 실었습니다. 비행기 안에 들어갈 때 가지고가는 가방은 가능한 한 작게 만들어서 타시기를 권유합니다. 특히 Sprit Airline을 이용할 때에는 주의하셔야 합니다. 저희 같은 경우는 승무원이 가방이 조금 크다고 자기들이 Baggage Claim에서 찾을 수 있게 Delivery 해준다고 해서 탑승 후 가방을 맡겼는데 이 가방을 찾느라 2 – 3시간 가까이 공항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고생을 하였습니다. 공항직원들과는 영어가 안 통합니다. Body Language, 불어 아니면 현지어 Creole만이 통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짐 검사를 통과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제복을 입은 많은 현지인들이 있었습니다. 현지인들이 접근하기에 우리는 도움이 필요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짐에 손을 얹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이지만 손을 얹는 것은 자기가 이짐을 맡았다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곳 선교사님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합니다. Parking Lot에서 이곳으로는 사람이 들어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현지인을 쫓아가는데 멀리서 김승돈 선교사님이 웃는 얼굴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승돈 선교사님은 평신도 선교사로서 아이티에서 선교사역을 하시고 계시며 현재 빈민가에서 선교센터를 건립하고 계시며 현재 많은 학생들이 공사가 완공이 안 되어 있는 상태인데도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남부플로리다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파송된 김 선교사는 아이티의 가장 낙후된 슬럼가인 시티솔레이(Cite Soleil)에서 지역사회 개발 사역을 하고 있다. 선교사님과 일행이 인사를 마친 후 짐을 부리기 위하여 선교사님이 머무시는 사택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여서 먼지가 많이 났고 거리거리에서 쓰레기 태우는 냄새가 진동을 하였습니다. 가는 도중 사진에서나 볼 수 있었던 텐트촌이 길주위로 있었습니다. 이곳 현지인들은 화장실 시설이 없고 물도 귀해서 아무 곳에서나 생리현상을 해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마다 악취가 대단했습니다.
선교사님 사택에 짐을 부린 후 곧바로 선교 센터 공사현장으로 향했습니다. 가면서 많은 UN차량과 현지인들의 교통수단인 트럭이 보였습니다. 트럭은 뒷부분을 개조하여 의자를 놓은 후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School Bus를 개조한 Bus, 많은 오토바이 손님이 원하는 곳으로 모셔다 주는 대중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거의 1시간동안 둘러 본 수도의 가운데는 쓰레기장이었습니다. 저마다 가지고 나온 작은 물건들을 서로 사고파는 곳, 이리 저리 버려진 채소들의 찌꺼기 더미들에서 나오는 악취와 거리에 가득한 매연들, 우리는 상상도 못한 나라에 와 있었습니다.
“Oh, My God! 세상에 저기 봐요!” 차를 타고 가며 대화했던 말 가운데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었습니다. 할 일이 없어 거리에 나와 앉아 있는 청년들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앞만 바라보아야 했던 1시간의 시간은 너무 긴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얀 색깔의 장갑차들과 기관총들로 무장한 유엔군들의 차량들이 이 나라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내전으로 인한 가난들, 그리고 미래가 없어 보이는 이들의 모습들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내 눈에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교 센터에 무사히(?) 도착한 후 선교사님의 선교 센타 건축 진행사항과 앞으로의 비전을 브리핑 받은 후 선교사님의 안내로 선교 센터 주변의 교회와 주민들이 거주하는 집을 방문하기 위하여 동네로 나왔습니다. 밖으로 나오는 그 순간부터 저희 일행에게는 보이는 모든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아무리 빈민촌이라고 하지만 이런 환경의 마을도 있을 수 있을까요? 이 세상의 온갖 쓰레기와 그 쓰레기를 태우는 냄새, 음식 썩는 냄새, 하수도는 정상 기능을 잃은 지 오래고 오물로 온갖 하천은 뒤덮여 있고 하릴없이 길에 나와 있는 청년들과 아이들의 힘없는 눈빛, 무너진 담장, 쓰레기를 뒤지며 먹을 것을 찾고 있는 꼬마 아이들, 겨우 한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 사이에서 파리 떼에 가려서 보이지도 않는 생선과 정체불명의 재료로 음식을 요리하고 있는 주민들, 그 와중에도 지나가는 저희들을 뻔히 쳐다보며 온갖 세상의 고뇌를 가진듯한 표정들, 시궁창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돼지를 부러운 듯이 쳐다보고 있는 벌거벗은 어린아이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경들이 저희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누구에 대한 분노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가 아파올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이 아직도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을 수 있을까요?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런 열악한 환경에 이들을 놔둔 체 모른척하고 계실까요?
선교사님의 안내로 한 지역주민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비위가 강한 저도 순간적으로 구토를 느낄 정도로 집안에서는 악취가 나고 있었습니다. 집안은 인간이 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옛날 한국 시골집에서나 볼 수 있는 돼지우리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빈민가 방문을 마친 후 사택으로 돌아와 선교사님과 예배를 본 후 내일 여정을 위하여 일찍 취침을 하게 됐습니다.
이곳은 11월인데도 밖에서 자는 것이 시원하고 잠이 잘 옵니다. 그래서 모기장은 필수품입니다. 선교사님의 배려로 콘크리트 바닥에 매트리스를 깐 후 모기장을 설치하고 잠을 청했지만 낮에 본 광경 때문에 몸이 피곤한데도 잠을 청할 수가 없었습니다. 진심으로 두손 모아 이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이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현지인들을 위하여! 주여! 이들에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축복과 은혜를 주시옵소서!
2011년 11월 8일
모두들 5시30분 새벽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다들 내색은 안하지만 문화적으로 충격을 많이 받은 것같았습니다. 눈물이 저절로 나옵니다. 누구를 위한 눈물인지… 무엇을 위한 눈물인지… 그저 하염없이 눈물이 나옵니다. 참으려 고해도 눈물이 나옵니다… 울고 나며는 마음이 후련해지겠지 기대를 했지만 더욱 더 많은 눈물이 나오며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오늘은 어제 예정한대로 재래시장을 방문하여 고아원에서 필요한 식량과 필수품을 사서 선교사님이 지원하시는 다섯 군데 고아원을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재래시장에서 쌀 22포대, 옥수수가루 7포대, 식용유, 과자, 하이타이, 케첩, 스파게티 소스, 스파게티 등을 구입하였습니다. 선교사님의 말씀대로 시장에서 나는 악취는 도저히 우리 일행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구입대금으로 총 미화 $855.00을 지불하였는데 생각 외로 물가가 비쌌습니다. 이 정도의 돈을 지불하면 아이티 경제사정을 고려해서 미국에서 구입하는 것에 대비해 2배에서 3배정도는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현지 실정은 미국의 쌀값과 이곳의 쌀값이 거의 같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일반 노무자의 일당이 미화 $5.00 이라고 하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더군요. 많은 물품들이 Made in USA 또는 Made in Dominican 입니다.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기본적인 농업도 미국에 의존하고 하물며 과자도 자체생산이 안되고 수입을 해서 먹는다고 합니다.
고아원을 가는 도중에 길이 너무도 험하여 차 뒤에 타신 분들은 아마 롤러코스터를 타신 기분이었을 겁니다. 도로마다 아스팔트가 파헤쳐져있고 운전을 정상적으로 운행을 해서는 앞으로 나아 갈수도 없고, 목숨을 걸고 운전을 해야 하는 그런 도로 사정이었습니다. 수많은 차가 뿜어내는 매연과 마스크를 착용해야 할 정도로 먼지가 날렸습니다. 가는 도중에 수많은 텐트촌을 보게 되었습니다. 텐트촌도 등급에 따라 돈을 받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고아원을 방문했습니다. 밖으로는 담장이 쳐져있었는데 담장 안에는 텐트 2개가 처져있었고 그 안에는 고아들이 학년에 따라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원장 선생님이 이곳에서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은 N.G.O 단체에서 미화 $100 씩 월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월급이 적어서 그만 두는 선생님이 많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안내로 고아원 시설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저는 더욱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고아원이라는 것이 우리가 보아온 그런 고아원이 아니었습니다. 부랑자 수용소라고나 할까요? 조그마한 방에 수십 명의 아이들이 악취가 나고 변소, 하수도 시설이 없는 곳에서 벌레와 쥐가 우글거리는 토굴방 같은 침침한 곳에서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선한 눈망울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고아원에서 지내야 한다고 합니다. 밖에는 자의적으로 나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다섯 군데 고아원 모두 같은 환경이었습니다. 다만 한군데는 2주전에 새 건물로 이사를 왔다고 하는데 저희들에게 모여서 환영의 노래도 해주고 기도도 해준 곳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열악한 환경에서 살 때는 다른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과 똑같이 웃음이 없이 살았겠죠. 그러나 이들은 2주 만에 밝은 웃음을 띤 개구쟁이들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환경이 얼마나 어린아이들에게 중요한지 깨닫게 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번에 저희들이 즉석카메라를 가지고 갔었는데 이들이 즉석 사진 한 장에 행복해 하는 것을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들은 이 조그마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데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떠한가, 특히 나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드립니다. 이 어린양들이 주님을 의지하고 살며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이를 실천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날 저녁 선교사님, 목사님 그리고 우리 일행들은 합심기도를 하며 그들을 위하여 눈물을 쏟아내며 기도하였습니다. 아이티의 어린 양들을 위하여!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아이티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2011년 11월 9일
선교사님께서 건축 재료를 지원해주시는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현재 아이티는 많은 교회들이 지진으로 인하여 파괴되어 비를 피할 수 있게 천장만 비닐로 막고 예배를 드리는데 보통 30여 명이 모여 3시간 정도 열광적으로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 선교사님은 이들에게 돈으로 지원을 안하고 건축 재료로 지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원된 건축재료로 교인들이 모여서 재건축을 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이 무어냐고 선교사님을 통해 질문을 하니 현지인들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교회를 빨리 재건축을 하여 영적 갈증을 채워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상상을 뛰어넘는 대답이었습니다. 배고픔의 해결이 최우선일 것 같았는데 의외의 대답이었습니다. 현재 건축 재료를 살 돈이 없어 교회를 수리도 못하고, 변소도 없는 상태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한 교회당 미화 2만여 불의 재료 구입비만 있으면 현지인 목사님과 교인들이 힘을 합쳐 교회를 재건축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현지인 목사님과 교회 신도들을 나도 모르게 다가가서 껴안으며 눈물의 포옹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의 열정적인 마음을 그들의 얼굴 표정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제가 선교사님 보고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저렇게 항상 미소를 띄울 수 있는가 하며 질문을 하니 선교사님께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혹시 조용필씨의 노래 중에 가사 “웃고 있지만 울고 싶어라”라는 가사를 아시냐고? 그 가사가 그들의 속마음을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요. 가슴이 찡해집니다.
다시 1시간 운전을 하여 쓰레기 소각장을 방문했습니다. 소각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쓰레기 타는 냄새가 온 세상을 진동합니다. 이 매연 속에서 수건으로 입을 막고 먹을 것을 찾으러 주민들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또 이곳에서 거주하며 쓰레기 중에서 쓸만한 것을 골라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천막으로 만들어진 일명 “쓰레기장 교회- Leglise De Dye Kristyen “을 방문하였습니다. 소각장에 위치한 이 교회는 이미 십년 전부터 다 쓰러져가는 상태였고 지진 이후 담장이 쌓이고 이제 삼분의 일 정도 완성이 된 교회로 성도는 약 60-70 명이고 대부분의 성도들이 쓰레기를 주어서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쓰레기를 소각하는 동안 독가스가 안개처럼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만 이를 방치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실정이지요. 쓰레기장의 반대방향으로 통풍이 잘 되고 연기막이가 되는 담과 지붕을 덮어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를 완성하려면 미화 $15,000 ~ $20,000 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이 교회 재건축을 도와줄 수 없을까하는 생각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미국에 돌아가면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되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을 뵙고 그들이 예배를 드릴 때 쓰는 악기를 가르치며 어떻게 연주하느냐 했더니 친절하게 웃으시며 시범을 보여주십니다. 그 목사님을 바라보는 순간 현지인 목사님의 바로 그 웃음이 바로 천사들이 짓는 웃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저런 아름다운 미소를 띄울 수 있을까? 저 스스로 반성을 해봅니다.
선교사님의 사택에 돌아온 후 저녁시간에 식사를 하며 그동안 느꼈던 감정들을 서로 얘기하며 공유했습니다. 또 선교사님의 고백이 저의 마음을 찡하게 합니다. 선교사님은 저희들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자기는 이곳 선교사로 파송 나오기 위해 세 가지를 내려놓았다고.. 첫째: 맛있는 음식을 내려놓았다. 아마 이 음식의 의미는 인간의 욕망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둘째: 사랑하는 가족을 내려놓았다. 현재 두 명의 자제가 있는데 막내가 아홉 살이라고 합니다. 아홉 살이면 한창 아빠가 필요한 나이인데 선교사역을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했다고 합니다.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선교사님의 진정한 주님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마음속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셋째: 세상에서 가졌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선교사역의 하나님 명령을 받기 전에는 앞날이 촉망된 사업가였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과연 나 같으면 선교사님같이 모든 것을 하나님과 예수님을 위하여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그 날 밤도 잠을 못 이루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2011년 11월 10일
선교지에서 마지막 여정입니다. 오늘은 지진 피해 현장을 직접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아직도 복구할 여력이 없어서 그대로 방치돼있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대통령궁과 대통령궁 앞에 있는 대주교 성당이 파손된 채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도로 시설이 안 좋아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피해 현장을 먼저 본 후에 역사박물관과 수도가 한눈에 보이는 섬의 정상으로 가기로 계획을 짰습니다.
먼저 대통령궁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철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놨지만 예전에는 아름다우면서 위용을 뽐냈을 건물이 처참하게 무너져 있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단편적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그리고 대통령궁 앞에 현존하고 있는 텐트촌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대통령궁 바로 마주 보는 곳에 있는 텐트촌! 아이티 공화국의 현실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까운 곳에 대주교 성당이 있어서 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당시 대주교께서 지진으로 인하여 희생당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기둥만 남아있는 상태였습니다. 기둥과 남아있는 잔해를 보니 지진이 나기 전에는 정말로 아름다움을 아이티 땅에서 뽐냈을 것 같습니다. 선교사님의 안내로 역사박물관도 방문하였습니다. 그동안의 궁금증이 선교사님의 상세한 설명으로 풀리게 되었습니다. 이곳의 인디오는 철저한 말살정책으로 지금은 그 자손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곳의 흑인들은 옛날 노예상인들에 의해 아프리카에서 수입되다가 미국과 영국을 가기 전에 몸이 약하거나 상품가치가 없는 흑인들을 이곳에 싼값으로 넘기고 갔다고 합니다. 그들의 후예가 바로 현재 아이티인들 입니다. 원래 원주민들은 백인들에 의해서 철저하게 말살되고 원주민들의 후예가 아닌 노예의 후예들이 이곳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그림을 보니 백인들이 인디오들을 남녀노소 구별 없이 손을 자르고 목을 자르고 코를 자르고, 차마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온갖 만행을 죄책감 없이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무엇을 위하여 철저하게 그러한 악행을 저질렀는지… 이들의 독립영웅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총독의 마부를 하던 사람이 조직적으로 투쟁을 하여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수도 Port Au Prince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섬의 정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아이티 수도 Port Au Prince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섬이었습니다. 제가 감탄을 하니 선교사님이 말씀하십니다. 위에서 볼 때는 천국이여 저 곳에 내려가면 바로 지옥이라고 그 말에 마음이 아파옵니다. 4층 건물하나가 보이는데 그곳이 이곳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사택에 돌아온 후 마지막 밤을 일행들과 함께 많은 얘기를 나누며 보냈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일 새벽이면 이곳하고도 당분간(?) 이별이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찡합니다. 그동안 만났던 많은 정다운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내일을 위하여 잠을 청해야하는데 오늘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습니다.
2011년 11월 11일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일찍 사택을 떠나 비행장에서 김승돈 선교사님과 작별을 하였습니다. 공항 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게 그렇게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는 좁고 사람은 많고 이러다가 비행기를 놓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습니다. 한 직원이 나와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합니다. 일행들에게 손짓을 하며 앞에 사람을 놓치지 말라고 부탁한 후 직원을 따라가는데 거의 Express Way 였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들한테는 미안했지만 그 직원을 따라가서 공항에 설치돼있는 Check Point를 지나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인당 $10 씩 요구합니다. 지금 돈이 없다고 하며 $10 만 주니 $10 만 더 달라고 합니다. $10 이면 인부 이틀 치 일당인데 하면서도 그래도 고생안하고 공항 안으로 들어왔다 생각하고 주었습니다.
공항이 복잡하여서 Express Way(?)를 이용하는 것도 이곳에서는 필요악이라고 생각됩니다. 외국인이라고 생각되면 여러 명이 달라붙고 이들은 무장을 한 공항경비대와 밀약이 되어있는지 무사통과였습니다. 특히 여자 분들과 동행할 때는 꼭 이용하라고 권장합니다. 아직 아이티 치안상태는 무정부상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국정부에서는 아직까지 여행금지국가로 지정을 해놓은 상태입니다.
공항에 들어와 Check In을 한 후 대합실에 들어갔는데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가끔 이용하던 고속버스 터미널정도 수준이었습니다.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을 하여서 Florida Fort Lauderdale-Hollywood International Airport에 오후 1시경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비행기를 예약을 하실 때 스케줄을 신경 써서 짜셔야 합니다. 잘못 비행기 편을 예약하면 Florida Fort Lauderdale-Hollywood International Airport에서 하루 주무시고 다음날 비행기 연결 편을 타셔야 합니다.
디트로이트 연결편이 저녁 8시에 있는지라 일행 중의 한 분이 친분이 있는 목사님에게 SOS를 요청하여 공항 Pick Up을 부탁하였습니다. 목사님의 안내로 버페 일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는데 모두들 밥을 먹으면서 아이티 현지인들에게 죄책감을 느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밥도 남기고, 먹던 음식이 마음에 안 들면 새 음식을 가지고 와서 먹곤 했는데 이제는 모두들 티끌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웁니다. 비행거리 1시간 30분 거리에 이렇게 다른 환경의 세상이 존재할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밤늦게 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한 후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마지막 기도로 이번 여정을 마친 후 집에 오는 도중에 곰곰이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티의 불쌍한 어린이들을 위하여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그리고 이 좋은 환경에 살면서도 불평불만을 하고 살았던 저의 지나간 삶을 반성해봅니다.
여러분들도 기회가 되면 꼭 선교여행을 다녀오시기를 권유합니다. 혹자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자기 같으면 거기 가는 비행기 값으로 주위의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고 합니다. 그 분의 말씀도 옳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선교여행에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그분같이 비행기 값만 보냈으면 그 도움이 일회성으로 끝나겠지만 제가 가서 느꼈기 때문에 저의 여생을 숭고한 뜻을 가진 선교사님들을 돕는데 일조를 하겠다는 스스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 현지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현지인들의 고난의 생활과 선교사님들의 숭고한 뜻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다시 한 번 아프가니스탄에서 순교하신 고 이경휘 선교사님에게 이글을 바치며 부인 이진문 선교사님, 그리고 두 자제분 바다와 시원이 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저의 두서없는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엄재학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