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대된 구역예배에서 이종기 목사님과 대화를 하며 참으로 소중한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 입구 화단 작업을 하면서 큰 나무의 그늘 아래서 자랄 수 있는 식물에 대한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목사님의 나무 이야기, 꽃 이야기, 정원 이야기를 통해 저는 생명을 가꾸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나무를 정원에 심을 때도 아무렇게나 심으면 안되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기 좋게 작은 나무의 간격을 좁게 심으면 10년 20년 뒤에 작은 나무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될 때 너무 가까이 붙어 있는 옆에 있는 나무로 인해 고생을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교회 입구에 촘촘하게 붙어있는 나무를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지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일본 정원은 잘 절제되어 보이지만 나무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괴롭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나무가 자라고 싶은 방향을 방해하고 인위적으로 나무를 뒤틀어 버린 것을 보며 나무가 힘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무야 말을 못한다 하지만 나무를 가꾸는 지혜를 통해서 사람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 몇 주간 최효웅 성도님과 함께 교회의 나무들의 머리를 깍았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나무를 괴롭히는 녀석들을 제거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나무를 정리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이목사님과 대화를 하면서 나무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신껏 잘라야 할 가지를 자르고, 베어야 할 나무를 베어낼 수 있었습니다.
넓은 교회의 마당을 가꾸며, 나무와 식물들에게 저의 눈이 닿는 곳마다 하나님의 손길이 보였고, 저의 생각이 그치는 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작은 야생초에도, 잔디 사이의 민들레에도 주님은 당신의 흔적을 남기셨습니다. 온 세상에 충만한 하나님을 감각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작고 사소한 들풀에도 당신의 흔적을 남기셨습니다. 작은 몽우리에 아름다운 꽃이 담겨져 있었고, 준비된 씨앗들이 다시 태어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뛰지마,
그러면 너는 볼 수 있을 거야.
네 주위에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꽃 속에 사랑이 가득한 세상이 있는 걸 모르나?
뛰지마,
그러면 너는 찾을 수 있을 거야.
길가 돌 틈에서 너만을 위해 빛나고 있는 다이아몬드를.
멈춰서면 볼 수 있을 거야.
너는 많이 뛰었지만 항상 그 자리인 것을.” <칸소네>
무릎을 꿇지 않으면 감각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몸을 낮추어야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작은 꽃 한 송이를 바라보기 위해 무릎을 꿇었을 때 창조주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무릎을 꿇으면 보이지 않는 그분의 손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린 너무 분주하게 저 산너머 어딘가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만 전진하다가 우리 밭 밑에 감추인 행복을 맛보지 못한 채 질주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인생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인 것을, 인생의 길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인 것을 배워서 알면서도 우리는 속도를 늦추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을 무릎을 꿇고 낮게 사셨습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대야에 물을 담아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결코 비굴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꿇는 무릎, 이웃을 섬기기 위해 꿇는 무릎은 아름답습니다. 이번 주간 낮은 노동의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목양실에서 손경구 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