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 자라지 않는 이유는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은 자신이 의롭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거나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사람의 허점이나 실수만을 꼬집고 비판합니다. 또한 자신은 비판을 받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를 방어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위험한 태도는 없습니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을 가리게 되고, 그 분과의 깊은 교제 속에 들어갈 수 없게 합니다.
그렇다고 불의를 못 본 채 하거나 잘못을 덮어 두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주님은 한 번도 <죄>를 용납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죄인>은 용납하셨습니다. 주님은 죄인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죄에서 떠나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좋은 충고는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도와주고 살려주지만 무자비한 비판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파괴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사고 때문에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마귀는 비판과 미움, 분노와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비판 대신 격려를, 정죄 대신 사랑하십시오. 사람은 충고가 아니라 기도로 변화됩니다. 잘못과 허물은 야단쳐서 고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격려와 사랑으로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일이나 실수도 사랑과 용서와 인내로 통과 시키면 얼마 후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용서 받지 못해서 괴로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용서할 수 없어서 괴로워 하는사람도 있습니다. 둘 다 곤고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고민을 실제보다 더 크고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민을 크게 보이게 하는 것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그 어떤 고민도, 고난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보면 보잘것없습니다.
고난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고통이 곧 저주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 저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저는 요 며칠 앤아버의 가을 하늘을 보면서 그 아래에 있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제가 전능자의 그늘아래 살고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앤아버의 가을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은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합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저의 동의하지 않습니다. 네 개의 계절 중에 가을이야 말로 책 읽기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계절(非讀書枝節)인 것 같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앤아버의 아름다운 가을을 마음껏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당신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목양실에서 손경구 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