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2일 목회서신 청종(聽從)
“시간이 갑니다. 일초… 이초… 삼초… 그리고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다시 시간이 갑니다. 일초… 이초… 삼초… 그리고 다시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 죽음은 자연사가 아닙니다. 이 죽음은 아사(餓死: 굶어 죽음)입니다. 우리가 불경기를 지나며 사업에 어려움이 오고, 살기 어렵다고 불평하고 있는 동안! 다시 시간이 흐릅니다. 일초… 이초… 삼초… 그리고 다시 한 사람이 굶어 죽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의 불평이 얼마나 배부른 불평인지를 알게 됩니다.” 첫날 집회 때 오목사님의 첫 번째 메시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습니다. 처음 두 번의 물음에서 주님은 <아가페>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물음에서 주님은 <필리아>로 물으셨습니다.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온전하고 완전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필리아는 인간의 사랑입니다. 완전한 사랑이신 주님께서 아가페의 사랑에서 필리아의 사랑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주님은 친히 베드로의 자리에 내려오셨습니다. 바로 이 사랑이 복음(福音)입니다. 러시아에서, 시베리아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곧 SEX를 의미합니다. 그러한 곳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가슴에 품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역자를 우리는 이번 주간에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오석환 목사님을 모시고 집회를 할 수 있음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오 목사님께서 여느 강사와 다른 점은 물 한 모금, 그리고 생명의 떡에 대한 깊은 체험을 통한 말씀을 선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일년에 육 개월 이상을 캄보디아와 시베리아에서 주님께서 동일하게 사랑하는 영혼을 위해 헌신하는 목회자에게서 나오는 말씀은 같은 말씀이라도 내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번 집회를 통해서 저에게 크게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은 <청종>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청종은 “듣는 것과 순종하는 것”입니다. 청종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청종은 말씀에 대한 지적 동의가 아닙니다. 청종은 나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순종에 능력이 있습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신앙생활은 곧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나의 중심에 모시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 내가 자신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순종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순종하면 온전하게 됩니다. 순종은 성경지식이 아닙니다. 순종은 직분도 아닙니다. 순종은 지적인 동의도 아닙니다. 순종은 정말로 믿는 것입니다. 순종이 믿음이요, 믿음이 순종입니다. 두려움이란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 생기는 불안한 생각입니다. 두려움의 근본 동기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결국 두려움은 불순종의 결과입니다.
청종(聽從)은 “잘 듣고 따른다”는 뜻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려면 먼저 잘 들어야 합니다. 잘 듣기 위해서는 나의 소리를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귀를 기울이는 것과 들려오는 음성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치열한 순종이 신앙생활이며, 이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는 우리가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간에도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목양실에서 손경구 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