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마음의 정서를 따라갑니다. 그 이유는 생각은 항상 마음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밭이라면 생각은 그 밭에서 자라나는 식물입니다. 마음이 좋으면 생각이 좋아지고, 마음이 나쁘면 생각도 나빠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바꾸려면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나쁜 언어는 나쁜 생각의 결과이며, 나쁜 생각은 나쁜 마음의 결과입니다.
사람의 지각이 어떤 생각에 예민하다고 해서 그것이 꼭 그 생각의 정서에 쉽게 빨려 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호기심을 가지고 지적인 동의를 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적으로 더 많이 알고 싶어 하면서도 자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인격에 대해서 마음을 열지 않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비록 하나님의 생각에 대해 민감하다고 할지라도 성경이 말씀하시는 부드러운 마음은 아닙니다. 말씀에 대한 지적 동의는 인간의 이성과 논리에 기초하기 때문에 초월적인 능력을 이끌어 내지 못합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선명한 경험을 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하나님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정서가 담겨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랑을 품은 마음의 정서가 반영되지 않고 머리로만 말한다면 그 사랑에는 감동도 능력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감동으로 다가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서가 우리의 마음에 전달되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분투하면서도 간직할 가치가 있는 부드러운 마음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쉽게 영향을 받는 마음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은 항상 순결한 마음은 아닙니다만, 그 마음은 쉽게 하나님 앞에서 무너지는 마음입니다. 좋은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차마 거스르지 못하는, 그 분의 정서에 대한 연약하고 경건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항상 그러한 마음 안에 깃들게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한없이 부드러워 지게 마련입니다. 땅이 부드러우면 옥토라고 부릅니다. 딱딱한 땅이 부드러워지려면 그 땅을 갈아야 하는데, 땅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고난입니다. 하지만 땅이 부드러워지면 씨앗을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가난한 마음이 바로 이런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영향을 받는 일이 없이 우리의 삶에 성화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린아이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에 뛸 듯이 기뻐하고, 은총의 햇살을 가리우실 때 안타까움 속에 흐느끼는 성도들이 교회 안에 가득 차는 것을 언제 볼 수 있을까요? 예배 속에서 끝없는 자기 깨어짐을 경험하고 돌과 같은 마음의 밭을 기경하는 일이 일반화되는 날을 우리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무지함에 가려진 복음의 진리들이 찬란하게 그 실체를 드러내며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에 가슴이 벅차 할 때를 언제나 맞이할까요?
한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만, 그 분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경험했지만, 지금은 세상의 염려와 유혹으로 인해 마음이 굳어지고,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 그러한 마음을 회복하고 싶어도 갈 길을 모른 채 미끄러지는 지체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가혹하리 만치 긴 세월, 영혼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며 부드러운 마음의 회복을 그리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회심은 마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목양실에서 손경구 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