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믿음 – 지금 있는 것을 버려 아직 없는 것을 갖기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곧 현실, 소유, 상식과 기득권을 버리라는 요구였습니다. 그 말씀대로 아브람은 많은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들로 여겼던 조카 롯이 삼촌을 등지고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아브람에게는 가늘디 가는 희망의 끈을 잘라내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그 와중에 아브람은 지역 왕들의 충돌에 휘말려 잡혀갔던 롯의 가족을 구출해 냅니다. 318명의 가신을 동원했다 해도, 명색이 왕들의 싸움인데, 보복과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 뛰어들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삼촌이 자기를 위해 그런 희생을 했어도 롯이 삼촌에게 돌아오진 않습니다. 아마도 아브람은 혈육에 대한 애착을 여기서 끊은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멜기세덱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롯을 구해내느라 덩달아 도움받은 소돔 왕이 승전의 전리품을 나눠주겠다는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당신 덕에 아브람이 부자가 됐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소!” (창 14:22-23) 하나님 것만 받겠다는 결연한 신앙고백입니다.

이 사건 이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만나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말라, 내가 너의 방패이고 너의 큰 상급이란다 (창 15:1). 아마도 지역분쟁에 뛰어든 일로 다른 왕들의 보복이 있을까봐 두려워하지 않았었나 짐작됩니다. “내가 너의 상급이다” 얼마나 감격스런 말씀입니까? 사람손에 들린 것 바라보며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상급으로 알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마음은 온통 상속자에게 가 있습니다. 무슨 상급을 주셔도 상속자가 없으면 소용이 없지 않은가… 내게 주신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자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아들처럼 기른 다메섹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겠노라고 하나님께 제안을 합니다 (창 15:3) 아브라함과 사래는 이미 노인입니다.

합리적인, reasonable 한 생각이라 받아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네 몸에서 날 자” 라고 확인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양자삼는 풍습을 정죄하신 것이 아닙니다. 엘리에셀이 눈에 안차서도 아닙니다. 엘리에셀은 신실하고 착한 사람입니다. 후에 노쇠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신부감을 찾는 대업을 맡길만한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장 아브라함의 수중에 있는 것 중의 최선에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약속을 붙들고 산다면, 지금 존재하는 것의 한계를 넘어서서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갖기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주께서 주신 비전을 따르다보면, 지금있는 최선으로 안되고 아직 존재해본 적이 없는 새것을 꿈꿔야 할 때가 종종 찾아옵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금 있는 것을 버려 아직 없는 것을 갖기”라 이름해 봅니다. 절대적 최선을 얻기 위해 수중에 있는 최선, 차선을 버리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중 대다수는 언제나 second best 에 만족하는 겁장이들인지도 모릅니다. 아브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네 몸에서 날 상속자”의 약속을 받고 그가 한 일은 아내 사래의 몸종 하갈과 동침하는 것이었습니다! 폐경기가 지난 사래에게서 자식을 기대할 수는 없으니, 아내의 여종과 동침해 자식을 얻으면 입양해서 상속자로 삼자는 계획이었습니다. 정부인의 여종을 첩삼아 아이를 얻어 입양하는 것은 당시 고대근동에 일반적인 풍습이었으니, 세상 기준으로 부도덕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사람 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는 “적극적 사고”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낳은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13년이 지나도록 두셨다가, 99세된 아브람에게 너와 네 아내 사래의 몸을 통해 아들을 주겠다고 확인하십니다. 75세 86세 때 불가능해 보이던 약속을 가능하게 만들려는 사람의 노력을 좌절시키시고 99세가 되어 절대! 불가능한 상황이 된 후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케 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그 성취를 경험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개명까지 시키신 것입니다. 믿음의 노정에서 익혀야 할 필수과목은 기다림과 인내입니다.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통해 복을 얻게 하마”라는 가슴벅찬 약속이 실현되기까지, 아브람이 아브라함 되기까지 그는 기다리고 인내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매일 동일한 훈련을 받습니다. 지금 있는 것을 버려 아직 없는 것을 붙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다.

유선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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