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상담

“할머니, 나 사고 났어”…AI 목소리까지 동원하는 ‘손주 사기’ 주의보

손주·변호사·경찰까지 사칭해 긴급 송금 요구…돈 보내기 전 반드시 가족에게 직접 확인해야

 

“할머니, 나 큰일 났어. 교통사고가 났는데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해.”

이런 전화를 받는다면 대부분의 조부모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손주와 너무나 비슷하다면 더욱 그렇다.

최근 미국에서 이른바 ‘Grandparent Scam’, 즉 손주 사기가 더욱 정교해지면서 고령층을 노리는 대표적인 금융사기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손주나 가족을 사칭하는 정도였다면, 최근에는 발신번호 조작에 이어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음성 복제 기술까지 사용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도 이러한 가족 사칭 사기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며 소비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사기범들의 핵심 전략은 하나다. 피해자가 상황을 확인할 시간을 주지 않고 공포와 긴박감을 조성해 즉시 돈을 보내도록 만드는 것이다.

“교통사고 났어요, 체포됐어요”

전형적인 수법은 손주나 가까운 가족을 사칭한 전화로 시작된다.

“교통사고를 냈다”, “경찰에 체포됐다”, “변호사 비용이 필요하다”, “보석금을 내야 한다”는 식으로 긴급 상황을 꾸민다.

이어 “엄마 아빠에게는 말하지 말아 달라”, “창피해서 부모님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고 부탁하기도 한다. 가족에게 확인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잠시 후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아 자신을 변호사, 경찰관 또는 법원 관계자라고 소개하며 이야기를 뒷받침한다.

이렇게 두 명 이상이 역할을 나눠 통화하면 피해자는 실제 사건이라고 믿기 쉬워진다.

AI가 손주의 목소리까지 흉내낸다

최근 가장 우려되는 변화는 AI 음성 복제 기술이다.

범죄자는 소셜미디어나 온라인에 공개된 짧은 영상과 음성 등을 이용해 가족의 목소리와 비슷한 음성을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발신번호까지 조작하면 실제 손주에게서 걸려온 전화처럼 느껴질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목소리가 손주와 똑같으니까 진짜겠지”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Better Report가 소개한 사례에 따르면 2026년 7월에는 미국 전역의 400명 이상의 노인에게 약 500만 달러를 가로챈 전국적인 손주 사기 조직 사건과 관련해 4명이 유죄를 인정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합법적인 배달원처럼 가장한 사람에게 상당액의 현금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일단 끊어라”

이런 전화를 받았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즉시 돈을 보내지 않는 것이다.

사기범들은 “지금 바로 돈이 필요하다”, “몇 분 안에 보내야 한다”며 피해자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이때는 전화를 끊은 뒤 자신이 원래 알고 있던 손주나 가족의 전화번호로 직접 연락해야 한다. 범인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해서는 안 된다.

손주에게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부모나 다른 가족에게 연락해 실제 상황인지 확인해야 한다.

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요구가 나오면 매우 강력한 위험신호로 봐야 한다. 정상적인 응급상황에서 가족에게 알리지 못하게 할 이유는 거의 없다.

현금·기프트카드·암호화폐 요구하면 의심해야

사기범들은 추적하거나 회수하기 어려운 결제방법을 선호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돈을 요구한다면 조심해야 한다.

현금을 특정 장소로 보내거나 사람에게 전달하라고 하거나, 기프트카드를 구입한 뒤 카드번호를 알려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 암호화폐, wire transfer, 각종 송금 앱 등을 이용한 즉각적인 송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FCC는 이런 유형의 전화를 받을 경우 전화를 끊고 즉시 관계 당국에 신고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가족끼리 ‘비밀 암호’를 정해 두자

예방을 위한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가족끼리 미리 비밀 암호(code word)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제 가족이 긴급한 상황에서 돈을 요청해야 한다면 사전에 약속한 단어나 문장을 말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생일, 반려동물 이름, 손주의 학교 이름처럼 소셜미디어에서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피해야 한다.

사기범들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가족관계나 이름, 여행계획, 반려동물 정보까지 미리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분 확인하는 것이 평생 모은 돈을 지킬 수 있다

만약 자신이나 가족이 손주 사기의 표적이 됐다고 생각되면 즉시 범인과 연락을 끊어야 한다.

미 법무부가 운영하는 National Elder Fraud Hotline(833-372-8311)에 신고하거나 FBI의 Internet Crime Complaint Center(IC3)를 통해 신고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진짜 응급상황과 사기를 구별하는 간단한 원칙이다.

실제 응급상황이라면 몇 분 동안 사실을 확인한다고 해서 상황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기범은 바로 그 몇 분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전화기에서 사랑하는 손주의 목소리가 들리더라도 당황해 돈부터 보내서는 안 된다.

전화를 끊고, 가족에게 다시 전화하고, 사실을 확인하라.

단 몇 분의 확인이 평생 모은 재산을 지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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