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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명숙의 교육 에세이 1] 부모라는 무게

20대 후반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때는 그 아이를 한 인간으로 키워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몰랐다. 그냥 정해진 삶의 여정으로 받아들이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너무나 예쁜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두려움이 생겼다. 이 아기가 어른이 되는 18살 전에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공포.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빼고는 짝과 장거리 여행은 같이 안하려고 노력했다. 둘이 있을 때 무슨 사고가 생겨 아이들이 고아가 될까 두려워서 였다.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있어 주는 것이 부모로써 나의 가장 중요한 의무라 생각했다. 그렇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겁고, 두려운 일이다. 아무리 한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며 아이를 키워도 어른이 된 아이를 보면, 미안한 마음 한 조각없이 당당히 최선을 다했다고 말 할 수 있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들에게는 항상 죄인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 부모다.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교사였으며, 또 지금은 교사들을 길러내는 직업을 가진 교육자인 나도 두 아이를 어른으로 키워내는 2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정말 순간 순간 답을 몰라 방황하고, 고민하고, 갈팡질팡 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떠나고 나니 난 너무 홀가분하여 좋았다. 나의 길고 무거웠던 엄마라는 책임에서 벗어난 것에 시원하고, 기뻤고, 감사했다. 그리고 두 아이에게 가장 잘 한 일은 두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아무일 없이 내가 건강하게 살아있어 준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아이들이 자기 품을 떠날 때 아쉬워서 울고, 슬퍼하고, 외로워 한다는데, 난 가볍고 즐거웠다. 부모로서의 책임이라는 그 무거운 짐을 벗은 그 시원함이 좋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만들어 놓은 내 ‘작품’ 을 감상할 시간이라고… 이제 막 어른의 문턱에 서 있는 내 아이가 어떠한 젊은이로 자기 스스로를 키워 갈까를 지켜보는 것은, 그동안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얘기한, 부모로서 아이에게 보여준 자신의 삶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도덕, 남을 배려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 따스함을 내 아이가 잘 배우고 무의식 속에 잘 새겼는지를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이다. 그래서 난 아이들과 이야기하여 ‘부모 장학금’ 을 놓고 딜 (deal)을 했다. 미시간 대학을 가면 부모 장학금을 주고, 다른 주로 가면 본인이 론 (loan)을 받고, 아니면 내가 근무하는 대학으로 오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부모 장학금을 부담하는 댓가로 아이들이 자신을 키워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즐거움을 갖고 싶었다. 그리고, 큰 아이는 첫방을 아주 쎄게 날렸다 (☺). 입에 술 한번 대어보지 않고 대학을 간 큰 아이는 미시간 첫 풋볼 (football) 게임 파티에서 양주를 마시고 경찰이 부른 응급차를 타고 미국 친구와 함께 응급실로 실려갔었다고 일주일 후 고백했다. 이것이 나의 첫 경험이다. 성인이 된 아들이 할 수 있는 첫 일탈. 그리고 미시간 대학생들이 풋볼 게임을 핑계 삼아 얼마만큼 일탈을 하는지도 배웠다(?). 함께 응급실에 실려갔던 절친 미국 친구의 부모는 그 이후로 부모 장학금을 끊어 버리고 아이와의 관계에 유리벽을 만들었다. 하지만 난 아무 말 안하고 응급차 비용 천불을 지불했다. 자신의 행동을 객관화해서 일어난 일을 자신의 어리석었음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이야기하는 아이를 믿었고, 이미 자신의 어리석음과 제 인생 처음 경찰과 이야기 하며 느꼈을 공포로 다시는 똑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너무 쎄다” 한마디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후 나의 아이들은 술을 이성적으로 다룰 줄 알게 되었다 (5살 어린 동생은 형을 보며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제 내년 5월이면 둘째가 졸업을 한다. 비록 내 집에서10여분 거리에 두 아이들이 모두 집에서 나가 살았지만, 난 내 작품이 어떻게 결론 지워졌나를 볼 수 있었다. 내 아이들이 젊은이들로 커가는 모습, 그 아이들과 가끔 점심 데이트를 하며 듣는 그들의 세상을 바라보고, 익어가는 그들의 사고 형성 과정을 보는 그 즐거움은 경제적으로 생활비를 아껴가며 준 부모 장학금 금액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제 내년 5월이면 둘째 아이가 세상을 향해 독립된 인간으로 나갈 시간이다. 난 별로 큰 걱정은 없다.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20대의 나의 아이들은, 삶의 순간 순간 어찌 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 하던 자신들의 부모들처럼 삶의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따르는 책임은 자기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난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내짝 말고 둘이 더 생겼다. 물론 셋 다 모두 남자친구인 것이 조금 아쉽지만, 결국 자식이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서서히 자식이 부모와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제는 내가 가르치고 키운 아이들에게서 거꾸로 많은 것을 배운다. 아이들이 읽어보라는 책을 읽게 된다. 들어보라는 강의를 유툽에서 듣게 된다.

고명숙, 교육대 교수
Eastern Michigan University
(kohedusuccess@gmail.com)

그래서, 어느날 교육 에세이를 써봐야겠다 생각했다. 교육이라는 말 자체는 굉장히 많은 의미를 함축하는 딱딱한 말이지만, 논문이 아닌 에세이를 써 보려고 한다. 아직도 온전히 부모로써 당당 할 수 없지만, 두 아이를 키운 엄마로써, 교육자로서, 부끄럽지만 나의 생각과 갈등, 고민등을 통해 내가 배운 것들을 나누고 싶었다. 미시간에서 15년째 내 아이들을 키우고 미시간의 교사들을 트레이닝하는 선생으로서 이곳에 거주하는 젊은 부모님들과 같이 고민하고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질문을 주면 그 내용에 대해서 쓸 수도 있고, 그때 그때 작은 것이지만, 내가 그랬듯 어린 아이를 키우며 고민하는 부모님들에게 그 시간을 지나온 엄마로 교육자로 작은 지혜라도 공유하고 싶다고 느꼈다. 그래서 내가 쓴 내용에 내 자랑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가 똑똑하든, 장애가 있든, 말썽을 피우든, 말을 잘 듣든, 고민이 없는 부모는 없고, 정답을 아는 부모도 없고, 힘들지 않은 부모도 없다. 아이들은 종종 부모가 정답이 없어 당황하게 하고, 어리둥절하게 하는 순간들을 만든다. 그래서, 그저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 최선이 나중에 최악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 순간에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부모가 되었으면 많이 고민하고, 공부하고, 포기도 해야하는 것은 맞다. 아이를 임신한 동안 좋아하던 커피를 포기하고, 아이들 앞에서 술을 마시고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아이들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등등. 아주 작지만, 아이들 앞에서 내가 나를 컨트롤 못해서 보여주는 모든 행동은 아이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부모가 흔들리면 아이들에게는 세상이 흔들린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진다. 그러면 힘없는 아이는 세상에 홀로 놓인 자신을 어떻게 지키게 될까?  같이 고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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