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

과거는 묻지 마세요, 미래가 있잖아요!

디트로이트 중앙연합감리교회 심령부흥회에서

 

[메디슨하이츠=주간미시간] 김택용 기자 = 디트로이트 중앙연합감리교회(담임목사: 김대기)가 달라스 중앙연합감리교회 이성철 목사를 초빙한 가운데 19일부터 사흘간 심령부흥회를 개최했다.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제목의 부흥회에서 이성철 목사는 “하나님은 회복을 원하시는 분”이라고 강조했다. 21일 주일 설교에서 그는 “기독교인들은 제발 과거를 묻지 말라”고 말하고 “특히 잘한 것은 기억하되 못한 것을 빨리 잊어버리라”고 전했다.

달라스 중앙연합감리교회 이성철 목사가 21일 디트로이트 중앙연합감리교회에서 주일 설교를 하고 있다.

“사람에겐 다 장단점이 있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내가 채워주면 된다고 생각하는것이 기독교인 다운 것 아닌가?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면 과거보다는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만 행복해서는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우리는 행복의 통로, 징검다리가 되어야 한다. 이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부흥이 아니다. 복이 흘러 세상으로 넘치게 할 수 있어야 진정한 부흥이다”라고 말한 그는 마가복음 2장의 말씀에서 중풍환자를 위해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상을 달아 내려 예수님을 만나게 해준 네 명의 친구와 같은 마음이 같이 우리 모두가 회복과 치유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목사는 감명깊은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보스턴의 한 보호소에 앤(Ann) 이란 소녀가 있었다. 앤의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아빠로 인한 마음의 상처에다 보호소에 함께 온 동생마저 죽자 앤은 충격으로 미쳤고 실명까지 했다.

앤은 수시로 자살을 시도하고 괴성을 질렀다. 결국 앤은 회복 불능 판정을 받고 정신병동 지하 독방에 수용되었다.

모두치료를 포기했을 때 노(老)간호사인 로라(Laura)가 앤을 돌보겠다고 자청했다. 로라는 정신과 치료보다는 그냥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날마다 과자를 들고 가서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었다. 그렇게 한결같이 사랑을 쏟았지만 앤은 담벼락처럼 아무 말도 없었고, 앤을 위해 가져다 준 특별한 음식도 먹지 않았다.

어느 날, 로라는 앤 앞에 놓아준 초콜릿 접시에서 초콜릿이 하나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용기를 얻고 로라는 계속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었다.

앤은 독방 창살을 통해 조금씩 반응을 보이며 가끔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얘기했고, 그 얘기의 빈도수도 많아졌다. 마침내 2년 만에 앤은 정상인 판정을 받아 파킨스 시각장애아 학교에 입학했고,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심으로 밝은 웃음을 찾았다.

디트로이트 중앙연합감리교회 김대기 담임목사가 집회에 참석한 성도들을 축복하고 있다.

그 후, 로라가 죽는 시련도 겪었지만 앤은 로라가 남겨준 희망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했고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 수술에도 성공했다.

수술 후 어느 날, 앤은 신문에 난 광고를 봤다. “보지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돌볼 사람 구함!”

앤은 그 아이에게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은 못 가르친다고 했지만 앤은 말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요.”

결국 사랑으로 그 아이를 20세기 최대 기적의 주인공으로 키워냈다.

그 아이가 ‘ 헬렌 켈러 ‘이고, 그 선생님이 앤 설리번(Ann Sullivan)이다.

로라는 앤과 함께 있어주고 앤의 고통을 공감하면서 앤을 정상인으로 만들어냈고, 앤도 헬렌과 48년 동안 함께 있어주었다.

헬렌이 하버드 대학에 다닐 때는 헬렌과 모든 수업에 함께 하면서 그녀의 손에 강의내용을 적어주었다.

헬렌은 말한다. “항상 사랑과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앤 설리번 선생님이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볼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설리번 선생님을 보고 싶어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상처에 대한 적절한 분석과 충고가 아니라 그냥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상한 마음은 충고를 주기보다 자신을 줄 때 아문다. 좋은 충고보다 좋은 소식이 중요하다. 그런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바로 기독요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사랑과 축복은 화려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좁은 길에서, 가장 어려운 상황속에서 그것은 오랜 시간 견뎌내는 희생을 감당할 수 있어야 비로소 하나의 영혼이 구해지는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희 할 수 없는 이런 엄청난 일들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해 보이는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역사가 위대하다는 것이다.

감명깊은 설교였다. 듣기에만 감명깊었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바램이 생기는 집회였다.

 

mkweek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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