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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발행인 칼럼] 허전한 마음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공유 자산’이 답이었다

 

[주간미시간=김택용 발행인]  특별히 안 되는 것도 없는데 마음이 허전한 이유를 찾지 못해 두 달 전 몇 주 동안 깜깜한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다 지나간 가을을 타는 걸까? 외로운 걸까? 갱년기라서 그런가? 사람들을 만나 왁자지껄 떠들어보기도 하고 분위기 좋은 동네 바에 들러 우두커니 앉아 있어도 보고, 텅 빈 극장에 들러 혼자 영화에 빠져보기도 하고… 온갖 궁상을 다 떨고 다녀도 텅 빈 마음이 그대로다.

이렇게 허전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의미 있는 일들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재미에 빠져있어도 의미를 찾지 못하면 허무해지고야 만다. 돈을 버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 보지만 거기에도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들 의미는 없어 보인다.

텅 빈 가슴을 채우려면 생각에 잠겨야하는데 사색에 빠질 시간이 없다. 그러다보면 이렇게 허무해 지고 만다.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검색’에 몰두하지만 ‘사색’의 시간은 사라진 세상… 생각 없이 바쁘게만 살다보면 결국엔 이렇게 가슴이 허전해진다.

매일 매일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렇게 살다가 언젠가 맞이할 마지막 날이 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말이다. 기억이 허용하는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그 많은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갈 텐데, 어떤 아쉬움과 어떤 행복이 기억날까? 그날에 나의 생각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그 날로 미리 가보는 상상을 하면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다. 그때가 돼서 후회할 일을 지금 하고 있지는 않는지, 아니면 지금 안하고 있지는 않는지… 앞으로 얼마를 더 이곳에 머무를지 모르지만 지금 내 가슴을 가장 뜨겁게 만드는 일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가장 커다란 의미를 찾는지…

28년 전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도착한 이곳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로부터 고마운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같은 교회 집사님, 장로님들이 가끔 사주시는 식사는 물론 아르바이트 자리, 그리고 셋째를 낳았을 때 문밖에 종이기저귀 한 꾸러미를 몰래 놓고 가셨던 분까지, 내 주위엔 고마운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친형제보다 더 많이 만나면서 함께 살아온 이웃 사람들, 갚은 빚이 너무 많다.

하지만 가끔 밥도 사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분들은 많았지만 ‘미국이라는 세상’을 보여주시는 분은 없었다. 유학생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좁다보니 미시간 그리고 미국을 내다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고 싶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안목은 확장되었다. 학교 캠퍼스에서 교회를 통해 알게 된 앤아버 한인 사회, 그리고 신문을 시작하면서 낯설게 열린 디트로이트 한인 사회. 그 후 지내온 17년의 세월 동안, 한인사회는 물론 미국 사회와 여러 소수인종 커뮤니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미시간 주지사 자문위원회에도 소속되었었고 디트로이트 FBI 커뮤니티 아웃리치 자문의원, DTE 에너지 커뮤니티 카운실에서 아시안으로서 유일한 멤버가 되는 등 수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네트워킹을 형성했으며 어느 정도의 영향력도 생겼다.

한 때는 이런 영향력이 나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올지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미국 사회와 맺어진 네트워킹 파워는 개인이 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네트워킹 파워는 전체 커뮤니티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공유 자산’으로 발전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쓸데없는 자기 자랑에 불과하다.

모두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공유 자산’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몇 주 동안 고민했다. 그러다가 보이는 것이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앤아버 주변에는 미시간 대학과 이스턴 미시간대학이 있다. 이곳에는 한국에서 유학 온 수백 명의 학생들이 있다. 28년 전으로 돌아가면 나도 그 중에 한 명이었기 때문에 이 후배들을 보는 나의 마음은 남다르게 애틋하다.

이 아이들은 28년 전 내가 그랬듯이 매일 매일을 열심이 공부하며 일하며 살아가지만 자신들의 생활 반경 밖에 있는 세상과 분리되어 있다. 클래스 룸과 기숙사 룸 사이를 왕복하면서 담장밖에 있는 다른 세상을 볼 겨를이 없다. 설령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내가 못했듯이 그 나이의 학생들이 자력으로 네트워킹을 개척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갑자기 내가 17년 동안 미시간 구석구석을 쫓아다니며 쌓아온 네트워킹 파워를 이들을 위해 쓸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스턴 미시간 유학생들을 만나 ‘미국을 얼마나 아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답은 뻔했다. “어렵사리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있지만 미시간과 미국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더 많이 배우고 알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게 대답이었다.

그 사정은 미시간 대학의 유학생들도 마찬 가지었다. 때마침 미시간대학에서는 각종 한인 학생 단체들을 아우르는 Korea Leadership Summit라는 통합 단체가 생겼고 두 명의 공동 대표를 필연적으로 만났다. 또 이들과 뜻을 같이하는 18명의 임원들과도 만나 500여명의 유학생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과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누게 되었다.

이 지역에 있는 학생들과 생각을 나누면서 내린 결론은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공유 자산’을 만들어야겠다는 꿈이 생겼다. 그 공유 자산은 클래스 룸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 세상을 미리 산 선배들로부터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될 것이다.

이들이 꼭 알아야 할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일 그리고 미국에서 성공하는 어려가지 노하우들을 가르쳐 줄 수 있다면 이들의 시야는 넓어질 것이다. 내 자식도 잘 못 키우면서 남의 자식타령이냐는 말을 들을 수 도 있지만 이런 일들은 이미 유태인, 아랍, 중국 커뮤니티에서는 하고 있는 일이다. 후세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없는 커뮤니티는 한인 사회뿐이다.

장학금 천 달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1세들이 후세들을 위해 그런 네트워킹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는 천군만마를 주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쓴 기사가 생각난다. 우리 한인사회는 골프대회를 통해 또 개인들에게 부탁해서 모은 기금으로 후세들에게 장학금을 준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미시간에 있는 아랍 커뮤니티는 미국 기업들로 하여금 한 학생을 케어하도록 연결지어주는 방법을 쓴다. 우리끼리 하느냐 미국 사회와 연결시켜 주느냐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미시간 한인사회 선배들에게도 뜨거운 마음이 있다. 후세들을 위해 보다 좋은 환경을 남겨주기 위해서 열심인 분들이 많다. 지금까지 이런 노력들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다면 이제부터는 힘을 모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 테이블에 공유할 수 있는 각종 자산을 올려놓고 누구라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풀(pool)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뜻에서 이스턴 미시간 학생들을 위해 본 학교를 졸업한 선배들이 후원회를 만들고 있다. 이름은 가칭 ‘디딤돌’이다. 선배들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줄 테니 우리를 밟고 담장 넘어 세상을 보라는 뜻으로 만든 이름이다. 우리를 밟고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더 멀리 보라는 뜻이다.

아직 시작은 미미하지만 내 자식만 위하던 이기적인 마음에서 벗어나 우리 커뮤니티에 있는 우리 모두의 자식들에게 세상에 나가 승리할 수 있는 도구를 쥐어 주는 일은 매우 의미 있어 보인다.

미국에는 혼자서 성공한 한국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한인 커뮤니티에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커뮤니티가 돌봐서 성공한 아이들은 커뮤니티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어느 지역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후세들을 위한 ‘디딤돌 역할’이 미시간 한인 사회에서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미주 한인 역사에 길이 남은 족적이 될 것이다. 매년 1월 13일에 있는 미주 한인의 날을 제대로 기념하기 위해서는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기념할 만한 의미 있는 일들을 만들어야 한다.

몇 달 동안의 사색을 통해 답을 찾았다. 이제는 더 이상 마음이 허전하지 않다.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남의 자식들을 케어하면서 내 자식들이 모두 성장해 집을 떠난 뒤 허전했던 empty nest syndrome도 달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진정한 행복을 느낄 때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할 때인 것 같다.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일 같아도 의미가 있으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마지막 날에 후회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미시간대학 학부 도서관에서 주간미시간과 인터뷰 왼쪽부터: 김준범 KLS 공동대표, 김택용 주간미시간 발행인, 최호정 KLS 공동대표, 김주호 포럼 준비위원장

 

mkweek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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