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지금부터 약 2000-3500년 전의 기간에 살면서 각 시대에 사용하던 세 가지 다른 언어로(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 자신들이 살던 정치․문화적 배경의 한계 내에서 붓을 들었던 각계각층 각 시대의 40명가량의 사람들의 손을 빌어서 기록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대략 2-3천 년 전 사람들과 ‘시월애’(時越愛)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한글이 창제되기 2600년 전부터 이런 기록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경이롭기 그지없다. 그러니 이 정도의 시공간 거리를 갖고 있다면 종종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기 그런 어려운 대화의 한 자락을 짚어본다.
우리 독자들은 어떤 경우에 발을 가리는가? 이상하게도 얼마 되지 않아 양말의 엄지발가락 부분에 구멍이 잘 나는 필자는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 화들짝 발을 가리는 수가 있다. 구약 성경에서도 발을 가린다는 표현이 두 번 나오는데 많은 성경 독자들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 같다. 사사 에훗이 모압 왕 에글론을 시해하고 다락의 별실로 향하는 문을 잠가 버렸다. 왕이 그곳에서 나오지 않으니까 신하들은 “필연 다락방에서 발을 가리우신다”고 생각을 했다(삿 3:22). 왕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고 좇아가다가 양 우리 근처의 굴에 들어갔다가 그곳에 숨어있던 다윗이 그의 옷자락을 자르는 일화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도 사울은 그 굴속에 “발을 가리우러” 들어갔다고 한다(삼상 24:3). 이것이 어떤 행동을 가리키는 표현일까?
‘발을 가리운다’는 것은 긴 두루마기 같은 옷을 걸친 고대 유대인들이 용무를 볼 때 발이 가려진 상태를 묘사한다. 그래서 이것은 화장실 용무를 가리키는데 사용된 완곡어법(緩曲語法, euphemism)이다. 에글론의 신하들은 그가 큰일을 보러 들어가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으로 생각했고, 사울은 용무를 보러 굴에 들어갔다가 그곳에 숨어있던 다윗에게 옷자락을 잘린 것이다. 이제 우리도 식사 중에 잠시 실례를 해야 할 때 점잖게 “발 좀 가리고 오겠습니다” 하는 것이 어떨까?
유승원 목사의 목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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