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에서 한국 학생들에게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강의하던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고향 앤아버로 돌아왔다. 한국 사람보다 한국어를 더 잘 쓰는 미국인이 흥미로와 자기 소개서를 부탁해 봤다. 그가 앞으로 앤아버 한인 사회에 어떤 보탬이 될지 자못 궁금해 진다. – 편집자 주
1961년 앤아버에서 태어나 Wines Elementary School, Forsythe Middle School, 그리고 Pioneer High School을 다닌 토박이다. 베이비 붐 끝머리에 태어나서 1960년 말과 1970년 초 앤아버를 휩싼 반전 데모 및 사회 운동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1970년대 말까지 그런 분위기가 많이 남아 있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1978년 여름 일본에서 홈스테이를 했던 것이다. 부친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일본 점령 미군으로 2년 동안 교토에서 살았기 때문에 어렸을 때 일본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홈스테이하고 나서 일본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다.
1980년 미시간대학을 입학하고 일본어를 전공으로 공부했다.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한국인 유학생 몇 명을 알게 되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한국과의 첫 번째 만남은 1982년 여름에 일본에서 개인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일본 방문 동안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를 탔고 한국에 도착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서 일주일을 보냈다. 짧을 방문이었지만 한국인은 따뜻하고 뭔가 일본인보다 소통이 쉽다는 것을 느껴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다. 당시 한국 신문에서 한자를 읽을 수 있었고 한국어는 내 귀에 아주 아름답게 들렸기 때문에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1983년 졸업이 다가올 때까지 한국어에 대한 호기심은 사라지지 않았고,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한국에서 일 년 동안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당시에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두 군데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한국어 배울 수 있는 곳이 훨씬 더 많아졌다.
서울대학교를 선택했는데 일 년 동안 집중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했다. 미시간대학에서 쌓인 일본어 실력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특히 유사한 문장구조와 공통의 한자어 어휘가 그러했다.
미시간대학에서 응용 언어학 석사과정을 끝낸 후, 1986년에 한국어를 더 배우기 위해서 한국에 가서 영어를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일본은 한창 거품 경제 시기였기 때문에 일하기에 좋은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한국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육군 종합행정학교를 시작으로 카이스트, 고려대에서 7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는데 학생과 나이가 비슷해서 친하게 지냈다. 민주화, 경제 발전, ‘88올림픽’ 등 한국의 역동적인 시대를 함께 보냈다.
1993년 가을에 아일랜드에 있는 더블린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영어 속칭은 Trinity College Dublin)에서 응용 언어학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나는 한국을 떠나 아일랜드 수도인 더블린에 살게 되었다. 지도 교수가 제3언어 습득, 즉 제2외국어 습득을 연구했는데 일본어를 통해서 한국어를 배운 경험 때문에 제3언어 습득을 연구하기에 적합한 환경이었다.
더블린에 살면서 한국과의 접촉은 이메일(그 당시엔 아직 그다지 많이 사용되진 않았다) 및 잡지 구독을 통해 유지되었다. 멀리서 한국을 볼 수 있어서 그런지 한국의 예술과 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기사문, 예술 비평 등 많은 글을 매체에 기고하기 시작했다. 한국 문화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저명 한 한국 고전문학 학자인 김흥규 고려대 교수의 《韓國文學의 理解》을《Understanding Korean Literature》라 는 제목으로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했고 1997년에 출간되었다.
1995년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일본에서 입명관대학(立命館大學)에서 영어 교수로 부임했지만, 계속 한국에 대한 글을 쓰고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한국을 방문했다.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코리아 헤럴드》(Korea Herald)에 일주일에 한 번 고정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2002부터 2006년까지 자유로운 학풍으로 유명한 교토대학(京都大學)에서 영어 및 외국어교육 교수가 되었는데 이때는 역사적 도시인 교토에서 풍류를 많이 즐거워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려가면서 영어 교육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 와중에 2006년에 가고시마대학에서 대학 내에서의 e-러닝을 담당하면서 한국어 프로그램을 개설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국어 프로그램을 교육과정, 교재를 선택, 시간 강사 채용, 도서관 책 주문 등 모든 책임을 맡아 즐겁게 일했다. 일본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도 처음에 조금 힘들었지만, 첫 학기 동안 익숙해졌다. 일본 학생이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많이 느꼈다.
2008년 가을에 커다란 변화가 왔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가르칠 전임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같은 해 9월에 다시 한국에 돌아와 살기 시작했다. 15년 만에 한국에 살게 되었는데, 예전에 즐겨 다니던 가게들과 음식점들 중 사라진 곳도 많았지만 서울은 여전히 친숙하고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학교 일 외에도 ‘국가브랜드 위원회’에 참여했고 한국을 알기 위한 ‘왕립아시아학회’(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의 이사로서 도시의 오래된 동네 답사를 많이 안내했다.
2009년부터 요즈음 ‘서촌’이라고 부르는 경복궁 서측 동네에 살게 되었는데 재개발 및 난개발로 인하여 한옥 및 역사적 경관이 없어질 위기에 빠져 보존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하면서 한옥을 재생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2012년 체부동에 한옥을 수리하고 전통 및 현대의 조화가 잘 되어서 언론에 많이 등장했다. 30년 영어, 한국어, 그리고 일본어 사이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 집은 ‘어락당’(語樂堂)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2014년에 다시 고향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강해져서 29년 만에 다시 앤아버로 돌아왔다. 한국 생활에 대한 책을 한국어로 쓰고 올해 6월에 출간 예정이며 앞으로 다양한 집필 활동할 계획하고 있다.
한국에 살면서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라고 묻는 질문에 “언어와 문화 때문이다”라고 늘 대답한다. 동양 철학의 음양처럼 ‘언어’와 ‘문화’는 나를 끊임없이 한국에 매료시켰다. 지금은 비록 한국에 살지 않지만, 앤아버에서도 계속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행복하다.
글쓴이 : 로버트 파우저(Robert J. Fouser)
* 위 글은 로버트 파우저(Robert J. Fouser)씨가 한글로 직접 쓴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