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머리가 좋아지는 팁(24)

– 부제: 허물고, 무너뜨리고, 그리고 바꿔라(2)

한국에서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외식을 하러 밖으로 나갈 때 항상 ‘무엇을 먹을까?’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양식, 일식, 중식, 그리고 한식이 있는데 요즘에는 베트남 음식이 가세를 했다. 십여 년 전부터 퓨전레스토랑이 생겼는데 그 말의 의미는 여러 종류(국가)의 음식을 주문하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 그런데 한국 부모님들은 예전부터 퓨전음식을 드셨는데, 특히 아버지들은 중국집에서 노란 단무지(일식)대신 김치와 고춧가루를 달라고 하셨다. 즉 중식에 한식이 곁들인 퓨전음식(?)이다. 그리고 미국인들 중 한국음식 매니아(mania)는 김치찌개를 좋아하거나 삼겹살에 매운 고추를 상추에 싸서 소주와 같이 먹기도 한다. 자기 민족의 음식문화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자기 민족의 음식만을 고집하지 않고 타민족의 음식을 음미하는 것도 좋은 자세이다.

필자가 한국의 모 일간지에 실린 글을 읽고 ‘나도 그런 실수를 할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자(writer)가 국제회의에 참석 후, 저녁식사시간에 자기나라의 독특한 요리를 소개하게 되었고, 보신탕(?)대신에 세발낙지를 소개하기로 했다. “한국의 세발낙지는 날 것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데, 이 때 고통 때문에 꿈틀거리는 낙지의 움직임을 혀로 느끼며 먹는 것이 이 음식의 묘미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그 낙지는 발이 세 개랍니다’라는 사족(蛇足)을 덧붙이는 바람에 외국인들의 질문을 받게 되었는데 “나머지 다섯 개의 다리는 어떻게 되었느냐?”(What happened to the remaining 5 legs?)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까지 저자는 세발낙지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세발’이 한자인 가늘다는‘세(細)’와 한글인 ‘발’로 만들어진 조어(造語)임을 알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그런데 저자가 그 때‘낙지의 다리가 8개라는 사실을 어떻게 한 사람도 혼동하지 않고 정확히 알고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진 것을 구술하였는데 바로 그 순간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이 아주 얄팍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외국인들은 외래어의 어원(語源, the origin of a word)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말의 어원을 알고 있으면 그 말에서 파생되는 여러 단어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외래어에는 수(數, number)를 나타내는 어원을 갖고 있는 단어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1과 2를 나타내는 모노(mono)와 바이(bi)가 포함된 단어로는 독백(monologue), 독점(monopoly), 그리고 바퀴가 두 개인 자전거(bicycle), 이진법(binary)등이 있다. 3, 5, 8을 나타내는 트리(tri), 펜트(pent), 옥트(oct)가 포함된 단어 역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트라이앵글(triangle)은 삼각형 모양의 타악기이고, 트리오(trio)는 3명이 연주하는 경우를 말한다. 또 미국의 국방성 펜타곤(pentagon)은, ‘gon’은 ‘각’(angle)을 뜻하는 히랍어(greek), 오각형 모양을 하고 있으며, 386, 486으로 이름 붙인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가 500번대로 가면 펜티엄(Pentium)이란 이름이 붙는 이유이다. 또한 필자가 중학교 때 사용하던 카메라가 펜탁스(pentax)였는데, 그 이유는 카메라 안에 5각형의 프리즘(prism)이 있기 때문에 상품명을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 또한 문어를 옥타퍼스(octopus)라 하는데 다리가 8개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라 한다. 그런데 ‘왜 10월은 옥토버(October)라고 할까?’ 그 이유는 로마 구력(舊曆, the lunar [old] calendar)에서는 3월을 1년의 첫 달로 간주했기 때문에 3월을 기준으로 하면 10월이 8번 째 달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여러분이 고정 관념(stereotypes)을 허물고, 무너뜨리고, 그리고 바꿔버린다면 수학이나 과학을 공부할 때 이전보다 이해가 쉬울 것이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약 7만건에 달하는 특허가 출원되거나 등록이 되는데 그 중에서 상업적인 생산에까지 이르는 것은 매우 적다. 만약 용도가 매우 큰 위대한 발명품이 하나 있다면 그렇지 못한 그 뒤의 수 많은 발명품들이 빛도 보지 못한 채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맨 처음에 발명된 발명품이 어떤 필요에 의해 고안되었지만 나중에는 원래의 제 용도보다 뜻밖에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이 결과는 우리들의 고정 관념을 깨트리는 동기가 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 – 1819)가 증기 기관을 고안한 원래 목적은 광산에서 나오는 물을 퍼내기 위해서였는데 나중에 방적 공장에 동력을 공급하는 기계가 발명되었고, 더 나아가 기관차와 배를 움직이는 증기기관이 고안되었다. 이렇게 발명의 출발점이 되었던 초기의 발명품과 필요에 의해 초기의 발명품이 어떻게 역할의 변화, 발전, 그리고 거대 제품으로 상품화가 되는가 하는 것은 여러분이 고정 관념(stereotypes)을 허물고, 무너뜨리고, 그리고 바꿔버린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특허를 얻으려고 하는 발명가들은 발명품의 새로움을 증명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발명가들은 기존의 다른 발명가들의 성과를 깎아 내리거나 좀 더 나은 발명품을 개발해야 되는데, 가장 이상적인 발명품이란 그 전 단계의 형태가 전혀 존재하지 않거나 좀 더 창의적이고 경제적인 것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X가 Y를 발명했다’는 주장 뒤에는 그보다 앞서 만들어졌지만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있다가 누군가에 의해 그 아이디어가 부활하며 발명의 원조 주인공이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우리는 제임스 와트가 1769년에 증기 기관을 발명했다고 알고 있다. 그가 주전자 주둥이에서 김(steam)이 솟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이 이야기는 불행히도 거짓말이며, 실제로 와트가 증기 기관을 만들 아이디어를 얻게 된 것은 토머스 뉴커먼(Thomas Newcomen, 1663 – 11729)의 증기 기관을 고치면서였다. 그것은 뉴커먼이 57년 전에 발명한 증기 기관이었고, 와트가 수리 작업을 하던 시기는 이미 영국에서 100대 이상이 제조가 된 후였다.

그리고 뉴커먼의 증기 기관도 사실은 영국 발명가 토머스 세이버리(Thomas Savery, 1650 – 1715)가 1698년에 특허를 받은 증기 기관을 참조했으며, 그의 증기 기관도 프랑스인 드니 파팽(Denis Papin, 1647 – 1712)이 1680년경에 설계한(그러나 제작은 못했음) 증기 기관의 뒤를 이은 것이다. 그런데 그 것 또한 네덜란드인 크리스티안 하이헨스(Christiaan Huygens, 1629 – 1695)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먼저 있었다. 그렇다고 와트가 과거의 증기 기관을 크게 향상시킨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별도의 증기 콘덴서와 복식 실린더를 개발, 설치함으로써 보다 향상된 증기 기관을 만들었다.

이와 같이 어떤 발명품을 만들었다고 흔히 알려진 영웅들도 사실은 그 이전에 비슷한 목표를 위해 설계를 하고 실용적이거나 상업적인 모델을 만든 이전 발명가들의 뒤를 이은 사람들이다. 발명왕 에디슨이 1879년 10월 21일 밤에 발명했다는 백열전구도 실은 1841년에서 1878년까지 다른 발명가들이 특허를 얻은 수많은 백열전구를 개량한 것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라이트 형제가 만든 유인 동력 비행기도 그보다 앞선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 1848 – 1896)의 유인 무동력 글라이더와 새무얼 랭글리(Samuel Langley, 1834 – 1906)의 무인 동력 비행기가 있었다. 그리고 일라이 휘트니(Eli Whitney, 1765 – 1825)가 단섬유(내륙형) 목화를 다듬기 위해 만든 조면기(繰綿機, Cotton Gin)는 이미 수 천년 동안 장섬유(시아일랜즈) 목화를 다듬는 데 이용되었던 조면기를 개량한 것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그들의 발명품을 폄하(貶下, disparage)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여러 종류의 제품 발명자들의 공헌이 없었더라면 현재 발명품들의 형태는 다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아이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일부 천재 발명가들이 혼자의 힘으로 세계사에 커다란 족적(足跡, foot print)을 남겼는가? 하는 것에 대한 대답을 해주는 것이다. 물론 아니다. 그런 사람은 어느 곳에도, 어느 때라도, 아무도 없었다. 널리 인정받는 유명한 발명가들에게는 항상 유능한 선.후배가 있었고, 사회가 그들의 제품을 필요로 하는 시기에 발명품이 개량되었던 것이다.

참조 문헌:  ‘총, 균, 쇠’ 제레드 다이아몬드 박사 지음

김준섭 박사/SKY M.I.T.C. 248-224-3818/mitcsk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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