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시간 초기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주간미시간=김택용 기자] 미시간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1,000년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이 오대호 서쪽지역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미시간을 처음 탐험한 유럽인은 Étienne Brûlé으로 약 1620년에 들어 왔다. 당시 미시간은 “Old Northwest”의 일부였으며 1668년에서 1763년까지 캐나다(뉴 프랑스)의 일부였다. 1701년에 프랑스의 Antoine de la Mothe Cadillac이 프랑스 – 캐나다인 51명과 함께 Fort Pontchartrain du Détroit라는 정착지를 설립했다.
1763년, 프랑스와 인도 전쟁에서 뉴 프랑스가 패배했을 때, 이 지역을 영국으로 양도했다. 미국 혁명 전쟁에서 영국이 패한 후, 파리 조약(1783)은 미국의 경계선을 미시시피 강의 동쪽과 캐나다의 남쪽으로 확장했다.
1800년에 인디아나 테리토리가 만들어졌고 현재의 미시간 주 대부분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1802년 오하이오가 연방에 편입될때만해도 미시간주 전체가 인디아나 주에 붙어 있었고, 미시간 영토가 설립된 1805년까지 인디애나에 귀속되어 있었다.
1825년 이리 운하 (Erie Canal)가 개장하자 5대호가 허드슨 강과 뉴욕시와 연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미시간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미시간의 작물을 저렴한 방법으로 뉴욕시장에 출시 할 수 있게 되었다.
1835년에 톨레도 전쟁으로 알려진 오하이오 주와의 분쟁이 일어났고 이에대한 해결이 지연되면서 의회의 승인이 지연되었지만 1835년 미시간은 주정부로 인정을 받게된다.
미 의회는 오하이오 주에 “Toledo Strip”을 주는 대신 미시간은 어퍼 미시간의 서쪽 부분을 양도받고 공식적으로 1837년 1월 26일에 연방정부에 가입했다.
어퍼 미시간에서 철과 구리가 발견되면서 1855년에 수 록스(Soo Locks)이 건설되었다. 광업과 함께 농업과 벌목업의 미시간의 중요한 산업이되었다.
1899년 헨리 포드는 디트로이트에 둘러싸인 독립 도시인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에 첫 번째 자동차 공장을 지었다. 제너럴 모터스는 1908년 플린트에서 설립되었다. 자동차 조립 및 관련 제조업이 곧 디트로이트와 미시간의 경제를 지배하게 되었다.
1930년대의 대공황은 미시간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제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재기한다. 어퍼 미시간을 연결하는 메키너 대교가 1957년에 완공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종적 긴장은 미시간을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디트로이트는 1967년 12번가 폭동으로 극적인 사건을 경험했다. 1980년대까지 국가는 자동차 판매 감소와 실업이 증가했다. 그후 미시간은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경제를 다양 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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