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

“이민 목회의 사표셨다”

김득렬 원로 목사 93세로 소천

 

[싸우스필드=주간미시간] 미시간 한인 사회의 큰 어르신이셨던 김득렬 원로 목사가 향년 93세로 1월 8일 별세했다.

11일 오전 그가 2대 목사로 봉직했던 디트로이트 한인연합장로교회에서 열린 장례예배에는 동 교회 성도들과 지역 한인들이 다수 참여해 고인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최병호 NCKPC(미국장로교 한인교회 전국총회) 총회장은 조사를 통해 “미주내 300여개 한인 교회가 속해있는 미국 장로교 총회의 기초를 세워주신 분이고 미국 한인 역사의 개척자셨던 김득렬 목사님을 잃게 되어 아쉽다”고 전했다. 클리브랜드 중앙한인장로교회의 김성택 목사는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평생을 섬기다 떠나셨다”고 말하고 “이 복된 전통이 자자손손 이어지기를 축복한다”고 전했다.

안덕치 새기너 장로교회 은퇴 목사는 추모사에서 “1963년 연세대 졸업반 시절 교수님으로 만난 것을 시작으로 미시간에서도 저의 목회를 위해 커다란 멘토 역할을 해주셨다”고 말하고 “항상 곧은 자세를 잃지 않으시고 이민 목회의 사표가 되신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김 목사님은 갈등의 모습을 전혀 내색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셨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이루시려고 노력했던 분이셨다”고 평가했다.

안덕치 목사가 추모사를 전하고 있다.

동 교회 주광덕 목사는 설교에서 “평생을 남을 위한 기도로 보내신 김득렬 목사님께서 눈을 감으시기 전 마지막으로 한 기도도 동 교회를 떠나는 유승원 담임 목사를 위한 축복의 기도였다”고 말하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포일 수 밖에 없지만 고인의 유가족인 김종대 장로의 가정에서는 그런 공포를 느낄 수 없었다. 그것은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

고 김득렬 목사는 1927년 3월 8일 황해도에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유공자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김경하 목사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인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대와 경북대 사범대학 영문학과를 각각 졸업하고, 뉴욕 성서신학교 석사, 하트포드 신학교 종교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3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황해로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계명대와 연세대 종교교육학 교수로 재직했었다.

1971년 미국으로 건너온 고인은 미시간 한인 사회 첫번째 교회였던 디트로이트 한인연합장로교회에서 2대 담임 목사로 봉직하다가 1993년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그는 미국장로교 한인교회 전국총회(NCKPC) 회장, 한영 찬송가 출판위원회 위원장, 한미장로교 장학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은총의 교역 : 목사 – 목자와 교사’, ‘기독교 교육의 학습과 지도’, ‘결혼과 가족관계’, ‘시냇가에 심은 나무’ 등이 있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두번째인 디트로이트 소녀상 건립에도 일조했던 그는 1992년 한미장로교장학재단을 설립해 27년간 399명에게 39만 달러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김종대 장로는 “당시 총회에서 한영 찬송가 위원회를 만들어 2세들을 위한 편찬사업명목으로 조성된 기금을 바탕으로 장학재단이 형성되었으며 그 후에도 지인들과 가족의 후원등으로 현재에도 약 10만 달러의 기금이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고인의 장남인 김종대 장로가 감사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김 장로는 “아버님은 매우 가정적이셨고 집안의 화평을 매우 강조하셨던 분”이라고 회고하고 “아버님의 장례식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고 전했다.

유가족으로는 장남: 김종대(이혜경), 차남: 김종선(박경숙), 장녀: 김혜영(사위 김정환), 차녀: 김혜란를 두었다.

고 김득렬 원로 목사의 유가족들이 조문객들을 맞아 인사를 나누고 있다.
관을 닫기 전 주관덕 목사가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있다.
예배 전 관이 닫히고 고 김득렬 목사는 영면의 시간으로 들어갔다.
우편함에는 아직도 김득렬 목사의 이름이 그대로 남아있다.

 

mkweek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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