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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발행인 칼럼]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어디서?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새해가 되면 모두가 나누는 인사,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그런데 그 복은 어디서 누구한테 어떻게 받으라는건가?

그런 인사를 하는 사람이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알려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 그냥 무작정 받으라는 건데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는건가?

물론 신을 믿는 사람들은 그 복이 신으로부터 온다고 믿을 것이고 조상을 잘 섬겨야 복이 온다는 사람들도 있고 또 부적을 쓰거나 점쟁이를 찾아가는 등 사람들은 더 많은 복을 받기 위해 모든 관심을 집중한다.

복은 한국 사람들에게 태어나면서 죽을때까지 따라 다닌다. 한 사람이 복을 갖고 태어나서 복을 누리고 살기를 바라고 또 죽으면 명복을 빈다.

우리의 복에 대한 집착은 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수많은 표현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복을 타고 나다’, ‘복이 있다’, ‘복이 찾아온다’, ‘복이 달아난다’, ‘복을 받는다.’, ‘복을 누린다.’, ‘복을 심는다.’, ‘복스럽게 생겼다.’ 등등 다양한 표현들이 있다. 복을 지니고 살라고 복자를 넣어 지은 이름도 많아서 복동(福童)·만복(萬福)·수복(壽福)·복수(福壽)·현복(賢福)·복실(福實)·복녀(福女)·복희(福姬)·복란(福蘭)·복순(福順)등이 있다.

기독교에서도 좋은 소식을 ‘복음(福音)’이라고 하고 welfare를 번역하면 ‘복지(福地)’가 된다. Lottery는 ‘복권(福券)’이고 부동산은 한국에서 ‘복덕방(福德房)’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에서는 팔복을 얘기하고 교회를 가면 매주 듣는 말이 ‘축복’, ‘강복’… 복을 달라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먼저 복이란 무엇을까?

사전적 의미로 복은 ‘삶에서 누리는 큰 행운과 오붓한 행복’이다.

한자로 ‘福’은 ‘시(示)’와 ‘복(畐)’의 회의문자이다. ‘시’는 하늘[天]이 사람에게 내려서 나타낸다는 신의(神意)의 상형문자이고, ‘복’은 복부가 불러 오른 단지의 상형문자라 한다.

‘복’의 한자 어원도 역시 복의 뜻이 가지는 두 함축, 곧 사람의 힘을 초월한 운수라는 뜻과 오붓하고 넉넉하다는 뜻의 함축을 풀이해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일설에서는 신(示)이 한(一) 사람(口)을 땅(田)에 보내신 것이 우리에게 복이라고 푸는 주장도 있다. 그 한 사람이 예수라는 말이다.

 

아무도 마다하지 않는 이 좋은 복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하지만 복이 어디서 오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혹시 복이 어디서 오는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건가라는 자문을 해본다. 복을 갈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이 된다면 더 근사할 것 같다.

사서삼경에 나오는 오복은 오래 사는 것, 부자가 되는 것, 건강한 것, 남에게 선행을 베풀어 덕을 쌓는 것, 천수를 다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조상들이 ‘남에게 선행을 베푸는 덕’도 복으로 봤다는 점이 특이하다. 복은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는 진리가 들어있는 것 같다.

성경에서도 화평하게 하는자는 복이 있다고 한 말이 이것과 일맥상통한다.

복을 베푸는 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좋은 기운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먼저 주위 사람들을 향한 질책과 비판을 줄이고 덕이 되는 말, 기운을 좋게 만드는 이쁜 말을 해주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복을 받을 수 있는 일차적인 환경이 조성되는 것은 아닐까?

어떤 사람만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 사람이 바로 복을 전파하는 사람일게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의 행동 양식이 어떤지 자세히 관찰해서 따라해볼만 하겠다.

또 한편으로는 주위에서 나에게 복많이 받으라는 말해주는 사람들 자체가 나에겐 복인것은 아닐까? 나이가 먹어가면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느냐인것 같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성공을 했어도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그는 절대 성공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하면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머무르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복을 받으려는 사람보다 주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진 것이 적어서 나눌 것이 많지 않더라도 베풀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떻게든 가지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주려고 했던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지게 되고 가지려는 사람들은 아직도 허탈한 경우를 많이 본다.

그래서 또다시 배우는 진리는 내가 얼마나 줄 수 있는 사람인가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잘 주는 사람에게 나눌 수 있는 복을 더 많이 주실게 분명하다. 올해는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주간미시간 발행인 김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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