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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물 아메리카] 20세기 후반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이차크 펄만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이번주는 20세기 후반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이차크 펄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0세기 후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차크 펄만은 연주자이면서 지휘자이고 교육자이기도 하다. 펄만은 뛰어난 예술성과 연주하는 즐거움을 듣는 사람과 서로 교감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사랑을 받고 있다.

이차크 펄만은 1945년 텔아비브에서 태어났다. 핀랜드에서 이주해온 유태인 가정의 외아들이었다. 어린 펄만은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바이올린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불행히도 펄만은 불과 네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쓸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어떤 불행도 그의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팔에는 마비가 오지 않았다. 펄만은 일생 동안 의족으로 살아야 했고, 연주는 앉아서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펄만은 텔아비브 음악 아카데미에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를 가르친 선생들은 금방 그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워낙 재능이 뛰어나다고 소문이 나자 그는 13살 때 미국의 유명 TV 토크쇼인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했다. 그 후 펄만은 장학금을 받아 뉴욕의 줄리아드 음악원에 진학했다. 18살 때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비에니아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번으로 데뷔를 하고 다음 해에는 권위 있는 레벤트릿 콩쿠르에 나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그의 이름은 차츰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펄만은 차츰 세계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로 올라서면서 여러 곳에서 연주를 하고 음반도 많이 냈다. 평론가들은 그의 연주가 특별한 것은 단순히 기교만이 아니라, 연주하는 즐거움을 듣는 사람과 공유하고, 곡이 담고 있는 감정을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펄만은 미국 시민이지만 음악으로 인해 세계의 시민이라는 말도 듣는다. 1987년에는 이스라엘 필하모닉 약칭 IPO와 함께 폴란드 바르샤바, 헝가리 부다페스트 등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연주를 했다. 특히 1990년에는 구소련의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오늘날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연주를 했다. 소련에서의 연주는 미 공영방송 PBS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많은 시청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 텔레비전 부문 최고의 영예인 에미상을 수상했다. 사실 펄만은 이 외에도 여러 차례 에미상을 받았다.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에서도 여러 차례 연주를 하고 강의도 했다. 한국도 방문해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주었다.

펄만은 기본적으로 독주자이지만 요요마, 제시 노만 등 다른 연주가들과 함께하는 음악회도 자주 갖고 있다. 그는 재즈, 미국 남부 음악 래그타임, 영화음악, 유대인 민속 음악도 연주한다. 펄만은 영화 음악에도 많이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쉰들러스 리스트, 게이샤의 추억 등이 잘 알려져 있다.

펄만은 독주자일 뿐 아니라 지휘자이기도 하다. 그는 뉴욕 필 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등 미국 내 유명 악단과 베를린 필하모닉, 런던 필 하모닉 등 외국 악단과도 연주회를 가졌다.

펄만은 인기 심야 토크 쇼인 투나잇 쇼,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 세서미스트리트 등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많이 나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 때 펄만은 첼로의 요요마, 클라리넷 앤서니 맥길, 피아노의 가브리엘라 몬테로와 연주를 했다. 이 장면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돼 4천만 명이 시청하는 인기를 끌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클린턴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은 펄만에게 예술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을 수여했다.

펄만은 지난 20여 년 동안 음악 교육, 특히 젊은 현악기 연주자들을 가르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3년부터는 부인 토비와 함께 펄먼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인 Master Class에서도 바이올린 연주에 관한 폭넓은 강좌를 실시했다.

펄만은 1966년 토비 펄만과 결혼해 5남매를 두었다. 1년에 100회 이상 연주를 하는 바쁜 생활이지만 그는 아이들의 생일이면 최대한 참석하는 가정적인 음악인이다. 황혼기에 접어든 펄먼은 11명의 손자와 함께 휴식을 취하는 것이 낙이다.

펄만은 한 인터뷰에서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음악과 함께 했다. 나는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고 말했다.

소아마비를 견뎌내며, 21세기 최고의 연주가가 되기까지 바이올린은 그에게 삶의 모든 것이었다.

 

V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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