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일본을 식민지배하던 1937년초. 17세 마사코는 조선의 공장에 취직할 여자들을 모집한다며 마을에 나타난 일본남자의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취업의 꿈을 꾸던 많은 일본의 처녀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한 마사코 일행을 인솔자는 한 여관에 집어넣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여관에 갇힌 일본 처녀들의 악몽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꼬박 일주일을 고급장교들에게 유린당한 마사코 일행은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보내졌습니다.’
‘1940년, 16세 아키코는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황혼무렵 집에 돌아오다 길에서 군도를 찬 조선 헌병과 마주쳤습니다. 헌병은 무서워 벌벌 떠는 아키코를 끌고 헌병대로 갔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끌려온 다른 소녀들과 함께 기차역으로 데려가 다른 인솔자에게 넘겼습니다. 15세 에이코도 시모노세키 경찰서 앞을 지나다 ‘야 너 들어와 봐’하는 순사의 말에 거역못하고 경찰서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엔 불안에 떠는 소녀들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모두 영문을 몰랐습니다. 그날 밤 11시쯤 경찰은 군용차를 끌고온 헌병에게 소녀들을 인계했습니다.’
‘1941년, 17세의 요시코는 외동딸이었습니다. 이미 ’처녀공출‘이니 ’처녀사냥‘이니 하는 소문을 듣고 있던 터라 요시코의 아버지는 수상쩍은 취업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취업권유를 하던 조선 여자가 어느날 조선군모를 쓴 남자와 함께 왔습니다. 그러더니 우격다짐으로 요시코를 끌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안돼, 요시코” 하며 부르짖는 아버지를 완력으로 쓰러뜨렸습니다. 요시코는 지금도 아버지가 주저앉으며 절규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한번 처지를 바꿔봅시다. 한국이 일본이고 일본이 한국이라면 어떨까요. 19세기말 제국주의 야욕에 불타는 조선제국의 낭인들은 일본 천황의 아내를 시퍼런 조선도로 살해합니다. 그들은 일본의 국모를 발가벗기고 시신(屍身)을 범하는 천인공노할 짓까지 저지릅니다. 제국주의의 광기에 사로잡힌 조선은 마침내 1910년 일본을 식민지배합니다. 천황일가는 해체되고 일본 열도는 철저히 조선에 수탈당합니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을 침략하고 식민국가의 청장년을 징용하고 생체실험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은 그들의 죄과는 만고에 걸쳐 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위의 사례들은 위안부로 끌려간 한국 할머니들의 끔찍한 체험을 일본의 처녀들로 뒤바꿔본 것입니다. 일본인들로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일본처럼 죄많은 나라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선조의 죄를 뉘우치며 평생 참회하는 인생을 살지는 못할 망정 역사와 진실을 부인하는 기막힌 짓거리는 차마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알량한 양심이란게 있는 ‘사람’이니까요.
자, 오늘날 일본을 보십시오. 보수우익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허위와 날조의 역사를 통해 대다수 일본국민들을 무지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독일이라면 대통령이 히틀러의 위패가 있는 사당을 참배할 수 있을까요? 일본은 제국주의의 전범 위패들이 놓인 신사 참배를 버젓이 하며 그들의 명복을 빌고 대동아공영을 부르짖던 과거를 그리워합니다.
오늘날 일본의 역사관은 뻔뻔하다 못해 미쳐버린듯 합니다. 뉴저지 팰리세이즈팍 공립도서관 앞엔 ‘위안부 기림비’가 있습니다. 지난 2010년 10월 한인사회와 팰팍시가 힘을 합쳐 서방세계 최초로 세워진 기림비입니다.
시게유키와 정무담당 부총영사 나가세 켄수케가 뉴저지 팰리세이즈팍 시청을 방문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제임스 로툰도 시장과 한인정치인 제이슨 김 부시장과 이종철 시의원도 있었습니다.
히로키 총영사는 팰팍시에 ‘벚꽃길 조성을 위해 벚꽃나무를 지원하겠다’ ‘도서관 장서도 기증하겠다’ ‘미일 청소년 교환 프로그램 사업도 지원하겠다’며 거액의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그대신 위안부 기림비를 철거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방문 목적은 그들이 부정하는 역사에 방해가 되는 위안부 기림비를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장밋빛으로 포장된 선심지원을 약속하면 헤헤 웃으며 적극 검토해보겠다고 답할 줄 알았을까요?
팰리세이즈팍은 주민 절반이상이 한인들로 구성된 사실상의 한국타운입니다. 한인사회는 얼마나 낯가죽이 두꺼우면 저런 요구를 ‘당당하게’ 할 수 있을까, 기가 막히다는 표정입니다. 하긴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위안부 기림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일본인데 미국에 있는 위안부기림비쯤이야 안하무인(眼下無人)이겠지요.
다행히 팰팍 시장은 대한민국 대통령보다 역사관이 나은 것 같습니다. 서울의 소녀상은 한국 경찰들이 일본을 자극한다며 마음대로 촬영도 못하게 하는데 언제든지 가서 참배가 가능하니 말입니다.
일본총영사가 허무맹랑한 망언을 하고 돌아간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로툰도 시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안부 기림비는 전쟁과 인권침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교육에 꼭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반복될 철거 압력에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전쟁범죄 등 잘못된 과거는 재발하지 않도록 드러내고 교육해야 한다는 게 나의 정치철학입니다. 특히 기림비는 여성과 인권에 관한 문제로 정치나 외교에 우선돼야 합니다. 우리 지역에 기림비가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일본 오사카 태생의 우리 대통령은 언제 이렇게 속시원하게 말해본적이 있기라도 한가요? 청와대는 부인했지만 지난 2009년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교과서에 기술한다고 했을때 다름아닌 MB가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 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하지 않았습니까.
일본총영사관은 지난 1월엔 뉴욕 플러싱에 ‘위안부 추모길’이 추진되는 것과 관련,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에 편지를 보내 ‘미일우호를 위해 반일적인 책동은 중단되야 한다’며 경고(?)했다고 합니다.
도리가 없습니다. 한국의 대통령도 미덥지 않고 미국의 기념물까지 없애라, 하지말라는 일본의 망언과 망발이 거듭되는데 해외한인사회가 나서야하지 않겠습니까. 나치 홀로코스트 피해자인 유태계 커뮤니티와 연대한 시민참여센터(구 한인유권자센터)의 노력처럼 일본군강제위안부의 비극을 반인권의 상징이자 참혹한 전쟁범죄임을 알리고 미 주류사회와 함께 하는 운동이 되야 합니다.
물경 20만으로 추산되는 위안부로 끌려간 처녀들은 조선여성이 가장 많지만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심지어 네덜란드까지 이른다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뉴욕뉴저지 한인사회가 주도하는 위안부기림비 건립위원회를 만들어 50개주 전역과 푸에르토리코와 괌 등 미국령 땅은 물론, 세계 모든 나라에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강제위안부 기림비를 세우는 캠페인을 벌이고 해당 지역 도서관과 공립학교와 연계하는 역사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합시다.
위안부범죄는 전쟁범죄이자 여성에 대한 성범죄요, 아동범죄를 합친 최악의 만행입니다. 다시는 이런 범죄가 되풀이되선 안된다는 준엄한 상징물인 기림비를 다름아닌 일본정부가 나서 없애라고 회유한 것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사안입니다. 일본정부의 반역사성과 몰염치에 대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주류 신문과 방송에도 적극적으로 알립시다.
또한 엉터리 역사에 휘둘리는 일본인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노력을 기울여 인간으로서의 양심 회복을 촉구하고 그들 스스로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참회하도록 해야 합니다. 히로키 시게유키 총영사같은 자들에게 “당신의 할머니가,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의 아내가, 당신의 딸이 만주와 상해, 대만, 필리핀, 남양군도에 성노예로 끌려가 매일 수십명의 군인들에게 유린당했다면, 과연 당신은 그들이 스스로 몸을 팔러 갔다고 말을 할 수 있는가?”하고 물어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참회하지 못하고 죽는 것처럼 불쌍한 영혼은 없습니다. 백제의 유민(流民)들이 그들 왕가의 뿌리가 되었으니 따지고 보면 자손국인 일본이 파멸을 향해 치닫지 않기를 바랍니다. 못된 이웃일망정 일본이 휘발유통을 짊어지고 불섶을 향해 돌진하는 우매한 광란을 벌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늦기전에 1. 일본군 위안부가 범죄임을 인정하고 2. 진상규명 3. 국회결의 사죄 4. 법적 배상 5. 역사교과서 기록 6. 위령탑과 사료관 건립 7. 책임자 처벌의 7개항을 이행함으로써 일본이 문명국의 일원으로 함께 손을 맞잡고 갈 수 있는 상대임을 믿게 해주기 바랍니다.
부디 정신차리게나 일본아!
기사제공: 노창현 기자 : 뉴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