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따뜻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도시, 디트로이트 (프롤로그)

– 디트로이트 사진사 이재승의 포토에세이                – “Snap + Story, 디트로이트 네 이야기를 들려줘”

어렸을 때 좋아했던 할리우드 SF 영화 한 편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멋진 사이보그 로봇 경찰. 어떤 힘에도 견뎌낼 것만 같은 무쇠 철로 된 몸통과 범죄자를 빠르게 식별하여 처단하는 최첨단 능력까지 두루 갖추고 있던 로봇 경찰. 바로 로보캅입니다. 

혹시 저처럼 이 영화를 좋아했던 분이 계시다면, 로보캅이 활보를 하며 다녔던 그 도시 ‘디트로이트’를 기억하고 계시나요? 한 때는 화려했던 공업 도시였지만, 산업의 몰락과 함께 사람들은 길거리로 쫓겨나고 황폐한 도시는 엄청난 범죄가 성행합니다.

80년대 후반 이 영화를 제작할 당시 이런 디트로이트의 모습은 감독의 설정에 불과했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 디트로이트의 모습은 영화 속 모습 그대로 입니다. 아니나 다를까요. 디트로이트는 미국 US News에서 발간하는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1위라는 불명예를 수년째 안고 살아 가고 있고, 디트로이트 경찰들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오라”며 조언할 정도니까요.

미국 중동부 미시간 주, 오대호 중 하나인 ‘이리호’를 끼고 살아가는 도시 디트로이트는 한국의 울산과 같은 자동차 공업 도시입니다. 이른바 ‘Big 3’라고 불리는 GM, 포드, 크라이슬러 같은 미국 자동차 업체의 본사와 공장이 모두 이곳에 있고, 디트로이트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동차 업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디트로이트를 ‘Motown (자동차의 도시)’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한 때는 뉴욕과도 견줄만큼 안전하고 큰 도시였지만, 1980년 대 백인들의 차별 정책에 반대한 흑인 폭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디트로이트를 떠났고, 여기에 한국과 일본 완성차 업체의 값싸고 품질 좋은 자동차 물량 공세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떠나버린 도시는 그야말로 흉물이 되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2008년. 영화에서만 보던 그 로보캅의 도시에 무턱대고 왔습니다. “재승아, 너 총 맞으려고 작정했냐”라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며 말이죠. 물론, 여러분이 상상하고 제가 상상했던 그 디트로이트의 모습 만큼 엄청나게 위험한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서울의 도심을 능가하는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의 높은 마천루와 제가 다니는 웨인주립대, 디트로이트 미술관, 박물관들이 밀집해 있는 미드타운의 모습은 이게 과연 ‘위험한 도시’인가 의문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디트로이트의 첫 인상은 한없이 평화로운 다른 미국의 도시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위 미국 친구들까지도 지옥 (Hell)이라고 불리는 이 도시의 진짜 모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제가 있는 미드타운에서 차를 타고 불과 2~3 mile 나가면 영화에서 보던 그 흉물스러운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불타버린 집들, 낡아서 붕괴 되어버린 집들, 걸인 (Homeless)들로 넘쳐나는 거리. 저같은 건장한 청년도 그 거리에 들어서면 지레 겁부터 나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사진을 좋아하는 제게 디트로이트는 ‘범죄의 도시,’ ‘위험한 도시’가 아닌 참으로 ‘매력적인 도시’로 다가왔습니다.

무슨 용기에서였을까요. 이런 디트로이트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습니다. 알게 모르게 아마추어 예술가 정신이 발동했나 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디트로이트의 모습이 역사 속으로 감춰져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꼭’ 내 손으로 기록해야겠다는 사명감(?)도 약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사진을 찍는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미국 친구들로 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무작정이고 위험한 지역으로 사진을 찍으러 나섰고, 그런 ‘걱정 따위…’ 하면서도 내심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차에서 창문만 살~짝 내려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몇 번 위험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아찔했던 그 순간의 이야기는 앞으로 다른 사진을 보여주는 과정에 잠깐 잠깐 얘기할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왜 그렇게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사진을 찍냐고. 역시 이 도시의 큰 매력 때문입니다. 사진의 매력도 있지만, 저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매력은 황폐한 이 도시가 실은 따뜻한 희망과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는 겁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나고,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을거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길거리와 낡은 건물들은 역사가 있고 사연이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에게 제 사진과 함께 들려 드릴 이야기 입니다. 지금까지 상상하셨던 거대 국가 미국의 그런 화려한 모습은 아닙니다. 또, 아직은 아마추어 수준의 미숙한 사진 실력이지만 여러분에게 미약하나마 사진 촬영 정보와 어떤식으로 찍었는지도 알려드릴 생각입니다.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는 제 첫 번째 사진은 어느 새벽에 찍은 디트로이트 도심의 따뜻한 아침입니다. 과제를 하며 새벽 잠을 설치고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따뜻한 햇살이 디트로이트를 비추는 모습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디트로이트의 모습을 담기에 충분했습니다.

– 이재승의 디트로이트 사진이야기

http://www.facebook.com/jsl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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