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3/8/09)
‘츠기하라 치우네’라는 일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외교관이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열심히 공부해 마침내 목적을 이룹니다. 그는 1930년대 초반에 러시아에서, 후반에는 리투아니아에서 일본 대사로 근무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집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독일 비밀 경찰을 피해 죽음의 사지를 넘어 폴란드에서 도망 온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일본 비자를 받고 싶어했습니다. 일본 비자가 있으면 유럽으로 도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치우네는 본국으로 전보를 쳤습니다. 도쿄에서 ‘절대 안 된다’는 회신이 왔습니다. 그는 출세와 생명을 구하는 일로 갈등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치우네는 본국의 명령을 거역하고 일본 비자를 발행했습니다. 28일 동안 밤잠을 자지 않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자기를 찾아온 유대인들에게 탈출구를 열어 주었습니다. 결국 일본은 치우네를 파면했고, 그는 남은 인생을 전기제품을 파는 일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치우네의 삶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에 살아가야 할 모습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것은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은 겉모습이 점잖한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거룩하다(하기오스)’는 ‘다르다, 분리되다’는 뜻입니다. 거룩함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무엇과 구별된 것인가? 악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세상과 구별된 것을 말합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세상을 좇지 말고 ‘말씀’을 좇아 살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하게 살면 치우네처럼 불이익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악한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살려면 고난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고난이 없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상고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4장에 보면, 천국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여섯 날개가 있는 그룹 천사들과 이십사 장로 들이 보좌에 앉으신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그런데 이십사 장로들이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는 장면이 등장합니다(계 4:10). 이십사 장로들은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제자로 구원받은 성도를 말합니다. 우리가 성도로 천국에 가면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그 예배 중에 우리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는 것입니다. 이 면류관이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당한 고난과 고통이 하늘나라의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겁을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계시록의 말씀을 들을 때 겁을 먹는 다면 그것은 잘못된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계시록은 복음입니다. 성도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지금 우리가 성도로서 악의 시스템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면서 많은 고난을 당하지만, 그 고난과 고통이 천국에서는 면류관이라는 소망을 부어주시는 말씀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세상과 갈등이 없으면 성도가 아닙니다. 바울은 성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말해 줍니다.
“우리는 정결함과 지식과 인내와 친절함을 나타내었으며,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일을 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의를 무기 삼아 양손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우리는 영예도 얻었고, 모욕도 받았고, 비난과 칭찬도 받았습니다. 우리는 거짓말쟁이로 취급 받았지만, 사실은 진리를 말하였습니다. 무명인 취급을 받았으나 사실은 유명한 사람들이며, 죽은 자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는 살아 있으며, 매를 많이 맞았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또 슬픈 사람 취급을 받았으나 우리는 항상 기뻐하였으며,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였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 같으나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고후 6:6-10)
우리는 거룩도 모양을 갖추기를 원하지만, 주님은 한번도 그렇게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가난한 자와 죄인과 세리와 함께 식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거룩은 ‘버섯처럼 쌓여 있는 거룩이 아니라 소금처럼 녹아있는 거룩’입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성도의 고난은 면류관입니다.
목양실에서 손경구 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