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 영혼을 위한 각성

(다음 글은 제가 1996년 North Carolina의 교민지 「대서양」에 게재했던 수상입니다)

지난 달 세계 체스 참피온 카스파로프는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겠다는 장담과 함께 IBM 컴퓨터 Deep Blue와 세기의 장기 대결을 벌였다. 물론 카스파로프의 패배에 인간의 존엄성 손상까지 걸 이유는 전혀 없다. 인간의 존엄성은 절대로 패하지 않는 빈 틈 없는 정보 처리 능력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인간의 존엄성은 분명히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 살짜리 내 아들에게 일부러 장기 게임에 져 줄 수 있는, 그래서 프로그램된 컴퓨터의 논리 흐름으로 볼 때는 지극히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고의 자유로움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Deep Blue는 카스파로프와의 대결에서 이길 뿐만 아니라, 코흘리개 소년과의 대국에서도 무자비하게 상대방을 참패시킨다. 이 기계는 지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나 카스파로프와 당신은 고의적으로 패배해야 할 경우와 때를 알기 때문에 존엄하다. 그래서 지난 주 Time Magazine의 표지 기사 제목인 “Can Machine Think?”에 대한 우리의 답은 일언지하에 ‘No!’이다. 정보 처리의 현상만을 갖고 “마음”과 “사고”를 논할 수는 없다. 사고 능력은 지정의(知情意)를 역동적으로 구사하는 것이며 이럴 때 우리는 “의식”(consciousness)이나 “마음”을 논할 수 있다.인간만이 자유 개체로서 진정한 의미에서 생각을 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존재이며 그것이 인간을 인간이게 한다.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데카르트가 다른 모든 것을 부정하고도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은 부정할 수 없었기에 존재 파악의 시작을 사고(思考)에서 찾으며 한 말이다.

이러한 사고 활동을 하는 인간의 중심을 성경에서는 영혼(靈魂)이라 부른다. 사고의 주체인 영혼은 창조주 하나님과 통하는 신성(神聖)한 접점(接點)이기도 하다.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기에 신을 찾을 줄 안다. 인류학적으로 어떤 형태로든지 종교가 없는 인간 사회는 동서고금을 통해 아직까지 발견 된 바가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혹 철저한 유물론자라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5분 정도만 데카르트처럼 자신의 사고 작용을 점검해 보라.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육신이 경험하는 것 이상을 항상 그리며 육신 속에만 갇히지는 않던 그 무엇의 주체, 그리워 사랑하는 그 사람과 나 사이에 발생하는 끊임없는 상호 작용이 물질적 현상인가 아니면 물질의 한계를 초월하여 말로 묘사할 수 없는 그 어떤 실재간의 관계인가? 창조하고 상상하고 미워하고 좋아하고 슬프고 기쁘고, 분노하고 행복해 하는 ‘나’라는 이 개체가 육신이 기능을 중단하는 어느 순간에 전기 코드 빠진 컴퓨터처럼 멈춰버릴 소프트웨어인가 아니면 여기를 넘어 저기서도 계속되는 연속성을 가진 주체일 것인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발생하는 신비한 영적인 현상들을 들어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생각을 하고 있는 주체로서의 내 존재만 잠시 진지하게 관찰을 해 보면 당신의 ‘영혼 됨’을 부정하거나 망각하는 것이 너무 위험한 도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물질의 덩어리가 아니고 영혼이라면 이 영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정말 영혼으로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물질의 복합체인 기계나, 감각과 본능이 주장하는 대로 환경에 조건 반사하며 움직이는 하나의 동물로 살고 있는가? 나의 영혼은 미국 사람들이 쓰기 좋아하는 말인 neglect나 abuse의 상태에 있는지도 모른다. 영혼이기에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생각하니까 ‘영혼 됨’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우리 모국의 사표(師表) 함석헌 선생님은 생각하지 않는 백성은 망한다고 일찍이 경고하셨다. 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생각하고 이야기 하면서 영혼 됨으로 돌아가 보자.

 

유승원 목사: 디트로이트한인연합장로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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