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십계명 들여다 보기(10) – 제10계명: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어린 시절, 여름이 되면 학교를 다녀온 뒤 시냇가에 가서 놀곤 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갔다 오면 시냇가 모래사장에 가끔씩 조그만 웅덩이가 생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조그만 웅덩이들은 건설자재로 사용될 모래를 포크레인으로 퍼간 흔적이었습니다. 이 웅덩이는 겉보기에는 작고 얕아 보이지만 그 수심이 어른 키보다 더 높습니다. 더 위험한 것은 이 좁은 웅덩이 주변에는 지푸라기 하나라도 붙잡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부주의한 장난꾸러기 아이 하나가 이 안락해 보이는 웅덩이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죽을 뻔 한 적이 있습니다. 시냇가 옆 밭에서 일하시던 아저씨가 없었다면 이 아이는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한 걸음을 잘못 들여 놓음으로써 인생을 마감할 뻔 했던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제10계명은 우리들이 범하는 많은 죄들의 “첫 걸음”에 대해서 문제를 삼고 있습니다. 10계명이 말하는 죄의 첫 걸음은 마음의 문제, 즉 탐심(貪心)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에 나오는 10계명(20장)과 신명기에 나오는 10계명(5장)은 대체로 같아 보이지만, 탐심의 대상과 나열해 놓은 순서가 조금 다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이웃의 “집”이 먼저 나오고 “아내”, “남종과 여종”, “소와 나귀”가 뒤따릅니다. 신명기에서는 이웃의 “아내”가 먼저 기록되어 있고 “집”, “밭”, “남종과 여종”, “소와 나귀”가 뒤이어 나옵니다. 어느 것을 따라야 할까요? 로마서 13:9에 보면, 바울은 십계명의 몇 가지 계명들을 열거하다가, 10계명을 지칭할 때는 “탐내지 말라”는 계명이라고 합니다. 즉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기록된 10계명의 내용들이 조금 다르지만, 탐심의 대상이나 순서에 상관없이, 10계명의 마지막 문장인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말씀으로 수렴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탐욕관 관련된 유명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930년 11월 16일 밤 81세의 미망인 헨리타 게럿(Henrietta Garret)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역사상 최악의 유산상속을 둘러싼 소송의 소용돌이를 일으켰습니다. 그녀는 1895년 자신의 남편이 사망한 뒤, 상속받은 재산을 잘 관리해 오다가 아무런 유언도 없이 당시 17,000,000 달러의 재산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에게는 사촌 한 명이 있었고 몇 명의 친구들이 있었지만, 47개 주와 29개 국가로부터 26,000명의 사람들이 3,000명 이상의 변호사들의 도움을 빌어 고인이 된 헨리타 게럿과 친분이 있음을 주장하고 나서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위증, 가족 관련 서류 위조, 이름 변경 등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 일과 관련해서 12명이 구금 명령을 받았고, 10명은 감옥에 갔으며, 2명이 자살하고, 3명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탐심이 독이 되어 거짓 증거와 살인을 일으켰습니다.

성경에도 인간의 탐욕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특히 성경은 부자가 되는 것을 “간절히 소망하는 것”을 대단히 위험한 태도라고 경고합니다 (딤전6:9). 그리고 예수님께서 들려 주신 비유 가운데 씨의 비유가 있습니다. 여러 곳에 떨어진 씨들 가운데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앗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 재리의 유혹, 기타 세상적인 욕심이 들어와서 결실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막4:20). 이처럼 세상적인 욕심은 믿음이 싹트는 것 마저 막아버립니다. 탐욕은 재물은 물론 사람을 탐하는 데까지 미칩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탐했고 결국 간음을 저지른 뒤,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격전지에 몰아 넣어 죽음에 이르도록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명예를 탐했습니다 (막10:35-45).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때 자신들에게 우의정과 좌의정 자리를 청탁했고, 이것을 목격한 다른 열 제자들은 화를 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욕구는 온통 어두운 그림자로 가득 차 있는 듯 합니다. 비록 자연적인 욕구가 왜곡되어 앞서 언급한 다양한 형태의 “욕심”, “탐심”으로 변질될 수 있지만,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적인 욕구가 있으며 그것들은 죄가 아닙니다. 아가서는 성적인 욕구에 대한 묘사로 시작합니다. 어떤 이들은 아이를 갖고 싶어 합니다 (창30:22-23; 삼상1:17;시127:3-5). 어떤 이들은 자신의 지위가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잠24:27). 예수님께서는 배고픔을 느끼시고 음식을 찾으셨으며 (마4:2), 갈증을 느끼시고 물을 찾으셨습니다 (요4:10; 19:28-29). 예수님께서는 피곤하실 때 잠을 청하기도 하셨습니다 (눅8:23). 이 모든 욕구들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입니다. 우리들이 가장 갈망하고 바라야 할 것은 역시 영적인 욕구, 즉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을 바라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에 대해서 목이 마르다고 하며 (시42:1-2), 바울은 이 땅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빌2:23).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다른 무엇 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마6:33).

정리하자면, 제10계명은 이웃에게 속한 일체의 것에 대해서 탐심을 갖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실제 행동으로 드러나는 온갖 죄들의 “첫 걸음”이 되는 탐심은 시기심과 욕심 등의 바람직하지 못한 욕구들을 통해 생겨나고 발전해서, 결국은 이웃에게 실질적인 해를 입히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욕구하는 인간들로 만드셨고 우리들은 자연적이며 선한 욕구들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기대하시는 가장 고귀한 욕구는 바로 1-4계명이 말하는 “하나님 사랑의 욕구”와 5-10계명이 말하는 “이웃 사랑의 욕구”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십계명 들려다 보기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려분께 감사드립니다. 또 귀중한 글을 연재해 주신 디트로이트 한인연합장로교회의 문성준 전도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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