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무상이란 우리말로 사람의 한 평생삶이 덧없이 허무하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사람은 노년기에 접어들면 한번쯤은 인생무상이란 의미를 생각을해 보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55년 전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 읽었던 이야기 가운데 정비석 (소설: 자유부인 저자)씨의 산정무한(山情無限) 중의 한 구절, 인생무상(人生無常) 이란 말이 생각나서 독자들과 함께 한번 음미해 보고자한다.
“천년사직(千年社稷)이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고, 태자(太子) 가신지 이미 처년 (千年)이 지났으니 유구(悠久)한 영겁(永劫)으로 보면 천년(千年)도 수유(須臾- 잠깐)던가.”
“고작 (칠십 생애)七十 生涯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싣고 각축(角逐)을 다투다가 한 옴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人生)이라 생각하니 의지(意志)없는 나그네의 마음도 암연(黯然)히 수수(愁愁)롭다.”
1) 여기서 천연사직이란 신라의 일천년 왕조를 의미한다.
2) 남가일몽이란 중국의 “남산” 기슭에 남가(南柯)라는 한 마을이 있었는데, 이 고을에 성진이란 동자승이 살고 있었다. 이 동자승이 어느 날 작은 암자의 주지승을 따라 아래 마을을 다녀오다가 개울가에서 잠간 쉬는데 저 밑에서 여덟 명의 소녀들이 발을 씻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때는 춘 3월, 복숭아꽃이 활짝 핀 따스한 봄날에 개울가에 모여 있는 이름다운 저 여인들, 필경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일 것이라.
이후로 동자승은 하루도 이들 선녀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든 중 어느 날 오후 동자승이 불공을 드리다가 잠깐 잠이 들면서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의 내용이 이러했다. 동자승은 얼마 전에 개울가에서 본 팔선녀를 모두 아내로 삼고 이 여인 저 여인들과 함께 하면서 여러 명의 아들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이때 “이제 그만 일어나라”하는 암자승의 목소리에 잠을 깨고 보니 이 모두가 잠깐 동안의 꿈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3) 이 이야기는 이후 조선조 숙종 때 서포 김만중이란 학자가 평북 선천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구운몽(九雲夢)아란 소설로 정리하여 전래되었다.
4) 본 서사시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신라 천년왕조도 남가일몽과 같은 한 순간의 꿈과 같은데다, 신라 마지막 태자(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입산(중이 된다는 뜻)한지도 또 천년이 넘었으니 우주의 끝없는 영원함(永劫)으로 볼 때 천년이란 아주 짧고도 짧은 한 순간이 아니겠나.
5) 사람의 수명이 70년, 좀 많이 살면 80년이련만, 이 세월 동안 “좋은 일, 나쁜 일” 그리고 “슲은 일”, “즐거운 일”들이 교차하는 가운데서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살다가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삶이라고 생각하니 덧없이 왔다 가는 나그네의 마음은 슬프기만 하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인생무상이란 제목의 서사시는 당시의 한 작가의 시심을 열거한 것일 뿐 이것이 인간 삶의 전부를 묘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세인들은 인간의 삶을 이렇게 허망한 모습으로만 묘사 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이들의 이와 같은 생각은 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필자는 이렇게 인간 삶의 모습을 슬프고 어두운 면만 관찰하고 그 위에서 이것이 인간 삶의 참모습인 것처럼 직설적으로 묘사하는 자세는 극히 나이부한 발상이 아닐는지 뭇고 싶다. 인간의 삶은 그 목적과 삶의 과정을 우주의 시간과 공간속 에서 보다 포괄적으로 조명해 볼 때 어두운 면도 있지만 반면에 밝은 면도 많이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 할 것이다. 인간의 삶속에는 세인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자기욕심이나 경쟁심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부정적 요소의 힘으로(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인간이 우주공간 속에서 접하게 되는 자연의 불완전 함을 보완하면서 세상의 온전함을 지향하며 나아갈 수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세인들이 짧다고 개탄 하는 인간 수명은 “생육하고 번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끈임 없이 이루어지는 자손번식과정을 통하여, 마치 순간순간이 모여 영원을 이루듯이, 영원한 우주의 생명을 이여 가는 큰 힘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인생은 결코 허망하거나 슬픔의 대명사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홍 순 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