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 족보, 새 시작 (1)

하나님을 등지고 파멸의 길을 택한 인간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역사는 오늘 이시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의 역사는 곧 영적인 전쟁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범죄에 대해 내리신 조치를 보면 이것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첫인간의 범죄 후, 하나님께서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간에 전쟁이 있을 것이며, 그 결과로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고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 3:14-15). 사단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예시한다는 점에서 3:15을 원시복음 (proto gospel) 이라고도 부릅니다만, 본문이 회개와 구원의 길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이 말씀을 듣는 상대가 아담과 하와가 아닌 뱀인 것을 고려해 이 구절은 그리스도 승리의 선포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합니다. 하나님께서 뱀에서 벌을 주실 때 뱀을 향하여 말씀하시고, 뱀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 (단수명사 “여인의 씨”) 간에 계속될 전쟁이 있을 것을 선언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상대하고 계신 대상이 파충류 동물을 넘어서는 인격적 존재, 본능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죄를 짓고 그 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인것을 말해줍니다. 뱀은 곧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을 미워하고 인간의 파멸을 위해 힘을 다하는 사탄이고, 그 사탄과 대결하셔서 그 머리를 밟고 승리하실 “여인의 씨”는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보내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신 (갈 4:4) “제 2의 아담” 그리스도시라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이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겨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가 심판주로 재림하셔서 인류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시는 것이 신구약성경의 결론입니다.

구원사의 이야기는 그래서 아담의 계보를, 후에는 새 아담의 계보를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상태에서 영생하지 못하도록 생명나무를 접근차단시키셨습니다.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리도록 가죽옷을 입히시고 (지난호 내용) 죄를 처리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제사의 제도를 만들어 가르쳐주셨습니다. 부모에게서 이것을 전수받은 가인과 아벨은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것만 받으셨습니다. 가인은 이 일에 분노했고, 죄를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권고를 물리치고 자기 동생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2세대 인류 둘 중에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시기해 죽였으니,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큰 차질이 생겼다 하겠습니다.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은 그가 죄를 고백하고 믿음으로 제사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히 11:4).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은 가인이 믿음없이 모양으로만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자신의 죄성을 살피고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순종하지 않았고, 다시금 아우의 행방을 물어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께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라도 되냐고 대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땅으로부터 축출되어 안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생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사업가, 예술가, 장인들이 되어 문명을 이루지만, 그 족보는 결국 가인보다 더 흉악한 살인범 라멕이 스스로 가인보다 위대하다고 자찬하는 노래로 마무리됩니다 (창 4:16-24). 하나님께서 죄를 경고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셨겠지만, 그들 역시 응하지 않았습니다.

가인의 실패, 아벨의 죽음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아담과 하와에게 다시한번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아담부부는 새로 얻은 아들의 이름을 셋 (Seth) 이라 짓고, “하나님께서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 다른 씨를 주셨다” 라고 선언합니다. 다른 씨! 다른 계보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솉” 이라는 이름은 어근상 기초 (foundation) 를 뜻하는 “샽” 과 관련됩니다. 셋의 아들 “에노쉬” 는 “아담”이란 이름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쓰이게 됩니다. 셋의 출생은 곧 인류의 새 출발, 새 기초를 의미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한 가인과 그 후손들은 버려 두시고 새 인류, 새 계보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시는 분이심을 생생하게 증거해 줍니다. 창세기 4:26은 셋이 아들을 낳아 에노스라 부르던 그 때부터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기록합니다. 셋과 더불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분과의 사귐이 회복되었다는 뜻입니다. 놀랍게도 창세기 5장은 <아담의 족보>라는 제목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주시고, 그들을 사람이라 부르시고 … 창세기 앞부분에서 하셨던 말씀을 다시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새 시작이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다시 시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유선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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