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제: 허물고, 무너뜨리고, 그리고 바꿔라(4)
발명가가 어떤 새로운 기술을 필요로 하는 용도의 발명품을 개발했을 때 더욱 크고, 빠르고, 강력한 수단이라고 해서 당장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러한 기술 중에서 끝까지 채택되지 못하거나 오랫동안 시간이 지난 후 간신히 채택된 기술이 무수히 많다.
우선 어떤 한 사회에서 여러 가지 발명품에 대한 수용성(需用性, receptivity)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발명품의 수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적어도 4가지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가장 명백한 요인은 기존의 기술과 비교되는 경제적 이점이다. 바퀴는 근대 산업 사회에서는 매우 유용하지만 다른 사회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았다. 고대 멕시코 원주민들은 바퀴 달린 탈것을 발명했지만 그것의 용도는 운송이 아니라 장난감이었다. 왜냐하면 그 시기에 멕시코 원주민들에게는 바퀴 달린 수레나 마차를 끌 가축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사회적 가치관 및 위신의 문제이다. 이것은 경제적 이익에 우선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일반 청바지도 메이커 청바지에 비해 똑같이 튼튼하지만 오늘날 수백만 명이 그 두 배 값으로 명품을 구입한다. 이것은 그 상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가격 차이보다 더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 일본이 그들 고유의 문자인 히라까나와 외래어 표기법인 가다까나 문자보다도 오히려 배우거나 쓰기에 어려운 한자(漢字, Chinese)를 계속 사용하는데 이것도 한자라는 문자 체계에 부여된 위신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세 번째 요인은 기득권과의 양립 가능성이다. 타이핑된 문서라면 거의 윗줄 왼쪽의 여섯 글자를 따서 이름을 붙인’쿼티(QWERTY) 자판’을 사용한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렵겠지만 이 같은 자판 배열은 1873년에 역공학(逆工學)의 산물로 태어났다. 쉽게 말하면 온갖 수단을 다 발휘하여 타이핑 속도를 최대한 늦추도록 고안된 것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를 왼쪽에 몰아 놓았는데 보통 오른 손잡이에게는 매우 불편한 자판이었다. 이렇게 비생산적인 자판을 설계한 이유는 1873년 당시의 타자기는 인접한 활자를 연달아 빠르게 치면 글쇠들이 엉키는 결과를 자주 일으켰기 때문에 제조업자들이 타자수들의 타이핑 속도를 늦춰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타자기가 개선되어 이 엉키는 문제는 해결되었다. 1932년에 능률적으로 배열된 새로운 자판기가 발명되었지만 그때는 이미 수억의 타자수, 타자 교사, 그리고 수많은 타자기와 컴퓨터가 널리 퍼져 있고, 또 그들의 기득권 때문에 8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능률적인 자판을 사용하고 있다.
비슷한 경우가 미국에서 발명되고 특허까지 받은 트랜지스터 이야기다. 지금은 트랜지스터화된 전자 제품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미국에 커다란 무역 적자를 안기고 있을까? 그 이유는 그 당시 미국의 전자 제품 회사는 거의 진공관 모델을 양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트랜지스터 제품이 자신들의 제품과 경쟁하는 것을 싫어했고, 그때 마침 소니 회사가 웨스턴 일렉트릭 회사로부터 트랜지스터의 제조 허가를 사들였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독일의 도시들이 도로의 조명을 전기로 바꾼 지 한참이 지난 후에도 왜 영국의 도시들은 1920년대까지 가스를 사용했을까? 왜냐하면 영국의 각 시 당국들이 가스 조명에 이미 막대한 돈을 투자해서 그것과 경쟁하는 전기 회사들을 규제했기 때문이다.
신기술 수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고려해야 할 마지막 네 번째 요소는 그 기술의 이점을 얼마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 아직 총포류가 도입되지 않았던 1340년, 영국의 더비 백작과 솔즈베리 백작은 우연히 스페인의 타리파 전투에서 아랍인들이 대포를 사용하는 것을 목격하고 영국군에 대포를 소개하였다. 영국군은 대포를 그로부터 6년 후 크레시 전투에서 프랑스군에게 사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바퀴, 디자인 청바지, 퀴티 자판기 등은 이렇게 어떤 한 사회가 모든 발명품을 똑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를 여러 각도로 보여주고 있다. 기술은 의심할 여지없이 역사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추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경제적인 발명은 우리 아이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방해하는 커다란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떤 사회가 확산을 통하여 다른 사회로부터 기술을 받아들이는 일은 그 사회가 처한 지리적 입지에 따라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 근대사를 살펴볼 때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되어 있던 사람들은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인데 그들은 그 시대 때 가장 고립되어 있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으로부터 160km나 떨어진 섬에 살았으며, 더구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도 갖지 못했다. 그들은 10,000년 동안 다른 사회와 접촉이 없었으므로 스스로 발명을 하지 못하면 새로운 기술이란 있을 수가 없었고 오스트레일리아 및 뉴기니아인들은 인도네시아 열도(archipelago)에 가로막혀 아시아로부터의 발명품을 거의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확산을 통해 발명품을 가장 잘 습득할 수 있었던 사회는 주요 대륙에 속해 있는 사회였다. 기술은 이들 사회에서 가장 신속히 발달되었고, 직접 만든 발명품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의 발명품까지 흡수하여 쉽게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중세 이슬람은 유라시아(유럽과 아시아)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인도와 중국의 발명품들을 쉽게 입수했고 고대 그리스의 지식도 물려받았던 것이다.
여기서 대한민국의 지리적 위치는 중국과 가까이 하고 있다. 중국은 농업화와 가축화가 용이한 야생작물과 동물을 가진 까닭에 본격적인 농업을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동물을 경작 활동에 이용함으로써 세계 4대 고대 문명 중 하나인 ‘황하 문명’을 일으켰고, 그 성과의 대부분이 한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중국의 예속국(Dependency)으로 전락하지는 않았다. 또한 한국은 좁고 긴 지리적 특성, 황해라는 자영적 장벽, 그리고 땅덩이가 중국보다 북쪽에 위치한 기후적 장벽으로 인해 별도의 역사를 발전시켜 나갔다.
또 수천 년 동안 한국은 일본에 아시아 대륙의 작물, 가축, 식량 생산 방법과 문화를 전달하는 통로였고, 아직도 많은 일본인들이 받아들이기를 꺼려하지만 일본어도 어쩌면 2,000년 전 한반도의 유민들이 일본에 전해 준 말인지도 모른다. 일본어는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한 후 현재 사용되고 있는 한국어와 같은 신라 말이 대체해 버린 여러 고대 언어 중 하나가 변형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위대한 문자 체계인 한글은 ‘전파’라고 부르는 과정의 아주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는데 중국 문자에 기초한 문자 체계인 일본어의 발명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세부적인 것까지 완벽한 형태로 전해진 다음 그 지역의 실정에 맞게 변형된다. 하지만 때로는 발명의 기본적인 개념만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 수용한 지역에서 스스로 모든 세부 조건을 창조해야 할 필요가 생기기도 하는데 한글의 탄생이 가장 좋은 예이다. 세종대왕은 한국어에 적합한 문자 체계를 고안하는데, 몽골 또는 티베트의 불교 문자의 예에서 착안한 표음 문자의 개념과 중국 한자의 블록 형식의 문자 형태로부터 영감을 얻었지만, 몽골 문자나 중국의 블록형 문자 중 어느 것도 세부적인 것까지는 차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세종대왕은 표음 문자와 블록형 문자 형태의 기본 개념만을 차용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은 문자의 운용 원칙과 형태 등 모든 세부 사항을 스스로 고안해 내었고, 그들은 세계의 어떠한 문자 체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놀랍고도 새로운 원칙을 만들었다. 그들은 음소(音素, phoneme)를 블록 안에 배열하여 음절(音節, syllable)별로 분류하도록 했고, 특정 문자 형태가 정해진 소리를 대표하도록 만들었으며, 그리고 특정 자음을 발음할 때의 혀와 입술 모양에 착상한 자음의 형태를 생각해 내는 천재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을 하였다.
이런 특성들 때문에 전세계 언어학자들로부터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경제적으로 만들어진 문자 체계다’라는 칭송(稱頌, praise)을 받고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한국 선조들의 창의성과 천재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위대한 문자 체계인 한글로 기록하고, 공부하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인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도 무방하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머리가 좋아지는 팁(5)에서 부제로 ‘천재성은 서로 의견을 교환할 때 계발(enlightenment)된다.’고 하였듯이 발명과 그 계발의 증진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의견의 ‘교제’이자 ‘교환’임을 백 번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김준섭 박사/SKY M.I.T.C. 248-224-3818/mitcsk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