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기뻐하고 즐기는 것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을 즐기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생을 기쁘게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사람들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비판하고, 비난하고, 공격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 비난과 공격이 정확한 사실일 지라도 비난하고 공격하는 시간에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게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이 사람을 기뻐하고, 즐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제가 부족함이 많은 목사지만 목양의 마음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것을 동경하지만 소박한 곳에 머뭅니다. 지난 18여년 동안 교회를 섬기면서 제가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소박한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높은 산보다는 쉽게 오름직한 뒷동산 같은 그런 목회, 그리고 교회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쉽게 웃을 수 있고, 타인이 나를 속이기 쉬운, 시간이 갈수록 탁월함을 자랑하기 보다는 조금 어리숙 해지는 그런 사람이 매력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잘나서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조금 더 낮아져서 사람들과 함께 가는 매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는 사도바울의 아주 개인적이고 친밀한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는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과 태도가 아주 긍정적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빌립보서의 중요한 주제는 <기쁨>입니다. 빌립보서는 전체가 4장으로 된 짧은 편지이지만 <기뻐하라>는 내용이 17번이나 등장합니다.
기쁨은 행복의 필수요소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저에게 행복이 있다면 저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간부터 10-12회에 걸쳐서 당신과 나눌 주제가 바로 <기쁨>입니다.
당신이 빌립보서 생각하면서 자신의 환경과 문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나의 남은 삶을 기뻐하고 즐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1장의 시작에서 사람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기쁨을 앗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가 나쁘면 사는게 괴롭습니다. 인간관계가 뒤틀리면 삶이 어려워집니다. 사람들하고 문제가 있으면 인생의 기쁨이 사라집니다. 제가 보면 사람들이 받는 가장 큰 상처가 대부분 사람으로부터 받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사람만큼 나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도 없습니다.
오늘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즐기는가?”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정말 기뻐하고 즐기는가? 아니면 그 사람들로 인해 괴로운가? 아니면 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지는 않은가?
미국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거는 리더의 첫번째 특징을 ‘다른 사람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당신께 질문합니다. 당신은 주위에 있는 사람은 즐기십니까? 배우자를 즐기십니까? 가족들을 즐기고 계십니까?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을 즐기십니까? 만일 대답에 자신이 없으시다면 빌립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여러분의 내면을 치유해주고, 그 사람들을 즐길 수 있는 지혜와 방법을 제공할 것입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 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전 9:9)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결혼 생활은 기쁨이라기 보다는 견딤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사람을 즐기기 보다는 그들에게 참아주고 견디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한 참음과 견딤은 고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내를 넘어선 기쁨과 견딤을 넘어서 즐길 수 있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사람을 즐기는 네가지의 비결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좋은 점에 대해서 감사하십시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좋은 것들을 기억했습니다. 사람이 함께 살다 보면 상대방의 장점과 단점을 알게 됩니다. 인간관계가 항상 좋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본문에 사도 바울은 사람들의 좋은 점을 기억했습니다. 긍정적인 경험들을 기억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 1:3)
여러분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좋은 점입니까? 아니면 나쁜 점입니까? 여러분의 그 생각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선택이 무엇입니까?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선택은 내가 합니다. 본문이 놀라운 것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경험한 것이 그리 기쁜 것들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경험한 것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 준 이유 때문에 매를 맞고 불법적으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람들에게 온갖 모욕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지진이 일어났고 결국은 빌립보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빌립보에 대한 기억은 나쁜 것이었습니다. 그는 빌립보에서 좋은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의 좋은 점을 기억하고 그들을 생각할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바울은 부정적인 문제를 다룰 수도 있었습니다. 고통스러운 일을 기억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통스러운 것들을 택하지 않고 감사할 일들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저와 당신에게도 지난 과거에 부모나 배우자에게 받는 상처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그 아픔을 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로 지금 현재를 감사하지 못하고 즐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사람들이 가진 좋은 것을 감사하고 기뻐하십시오. 즐거운 추억은 내 자신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것을 기억하고 그 나머지를 뒤로 하십시오. 이 말씀이 여러분이 당한 상처를 부인하고 다른 사람의 약점을 변명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건강한 방법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좋은 점에 자꾸 초점을 맞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라는 접속사를 조심하십시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할 때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만, 그러나…”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그러나” 라는 말은 항상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두는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완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친구들로 인하여 감사하십시오. 다른 사람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비결은 그 사람의 나쁜 점이 아닌 좋은 점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들의 빌립보 사람들의 좋은 점을 기억했습니다. 그들의 충성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그들의 도움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빌 1:5)
여기 ‘교제’라는 단어를 묵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충성스러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사람은 나에게 굉장한 일을 해주지 않았더라도 나와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나를 떠날 많은 이유가 있었어도 아직까지 내 곁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사업의 위기를 지나거나, 혹은 바보 같은 실수를 할 때에도 그들은 나의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그들의 능력이 아주 뛰어나서 나에게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어도 그들은 나의 곁에서 함께해주고 견디어 준 사람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감사해야 합니다. 여기 바울처럼 다른 사람을 즐기기를 원하면 그들의 약점이 아니라 장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때로 어떤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장점을 찾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장점을 발견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중요한 실력입니다. 장점발견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기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즐기려면 그 사람을 위하여 긍정적으로 기도하십시오.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하며 위하여 기도해 주는 것은 우리에게 용기과 격려를 줍니다. 내가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때 우리의 인간관계를 하나님께서 다루어 주십니다.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빌 1:4)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두가지 일을 합니다. 나의 태도를 바꾸어 줍니다. 그들을 바꾸어 줍니다.
기억하십시오. 긍정적인 기도는 긍정적인 생각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습니다. 생각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생각이 말을 만들고, 생각이 행동을 만들고, 생각이 우리의 미래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기도는 그러한 생각보다 훨씬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충고에 반항할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호소를 무시할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제안을 배척하고 우리의 도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능력의 주님, 모든 강력을 파하는 주님께 드려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울의 기도를 보면서 우리가 배울 것은 그의 기도가 매우 구체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막연히 ‘그들을 축복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기도의 응답은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기도하면 구체적으로 응답받습니다. 애매모호하게 기도하면 애매모호하게 응답을 받습니다. 9-11의 바울의 기도를 보십시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하시기를 구하노라” (빌 1:9-11)
바울은 다른 사람을 위해 네가지를 기도했습니다.
① 사랑안에서 성장하도록 기도했습니다. – “내가 기도하노니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 1:9)
② 현명한 결정을 그들이 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빌 1:10)
③ 옳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빌 1:10)
④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기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빌 1:11)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된 사람들을 즐기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내 가족, 내 친구, 내 직장 동료, 혹은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의 성장에 인내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6절을 보시면 바울의 아주 탁월한 태도가 나타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바울은 사람들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았습니다. 그들의 가능성을 보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을 끝내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구원을 통해 시작하셨고 결국은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바울의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께 배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덜렁대는 베드로 안에서 반석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아이라고 말하는 예레미아에게 “너는 열방의 선지자”라고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도 예레미아도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거인의 잠재력을 통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사람안에 숨겨져 있는 잠재력의 미래를 칭찬하고 그 사람에게 인내를 보여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에 대한 역사를 당신 마음대로 끝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 대한 역사를 아직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시작하신 것을 반드시 끝내십니다. 하나님은 새의 날개를 한쪽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완전히 끝까지 만드시고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내 자신의 문제와 잘못, 나의 죄와 미련함, 그리고 살면서 당면하는 모든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 삶에 시작하신 일을 끝내실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 대한 역사를 아직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발전에 대해서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을 즐기며 그들이 성장하고 발전하도록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의 실수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그들에게 실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실수를 통해서 인생의 교훈을 깨달을 때 칭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부모가 자녀를 즐기려면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그들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완전한 자녀도 없고, 세상에는 완전한 어른도 없습니다. 당신에게 다른 사람들이 완전해야 마음에 든다면 당신은 평생 동안 불행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사람들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빌립보에서 당한 나쁜 기억들을 무시하고 좋은 일들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바울은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확신했습니다. 바울은 소망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아직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확신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바울은 믿음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내가 누구에게 믿음을 준다는 것은 그가 믿을 만한 존재라서가 아닙니다. 인간은 믿을만한 존재는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믿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능력은 대단합니다. 우리는 기대하는 대로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내 자녀에 대한, 내 배우자에 대한,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기대해 주십시오. “야! 너 참 기대된다!”라고 말하십시오. 그 기대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마음 중심에서부터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제가 발견한 사실은 어느 사람이 내 마음에 있지 아니하면 내 신경을 건드린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내 마음에 품지 않으면 그들이 내 신경을 건드립니다. 내 남편이나 아내가 내 마음에 없으면 그들이 내 신경을 건드립니다.
수많은 가족, 결혼생활, 인간관계가 파괴되는 이유는 그들을 먼저 가슴으로 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고 머리를 통해 지적하고, 충동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아내가 “나는 우울해요.”라고 말하면 귀를 기울이십시오. 여러분의 남편이 “나는 좀 쉬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가슴으로 그 말을 들어주십시오. 사람들의 소리를 마음으로 들으면 그 말 뒤에 숨겨져 있는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듣게 됩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그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불평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나를 이해해주세요.”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가슴으로 들으면 더욱 이해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 1:8)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님의 심장을 품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이 품고 있는 사람이 굉장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너무나 크고 강렬해서 사랑할 수 없는 사람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이 사랑은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으면 가능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품습니까?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 5:5)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이 노력하거나 힘써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우리의 마음에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힘으로 사랑할 때 나는 힘이 듭니다. 내가 나의 힘으로 배우자를 사랑하면 그 사랑을 소유하지 못해 힘이 듭니다. 내가 나의 힘으로 자녀를 사랑하면 그 자녀를 잘 키워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절망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나로 하여금 사랑하게 하시면 사랑하는 일이 쉬워집니다. 왜?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이 쉬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크고 넓고 높고 깊으신 사랑이 나를 통해서 흘러가게 하십시오. 저와 당신 안에 그리스도의 심장이 살아 숨쉬게 하십시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을 즐기지 못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나 짧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주위에 주신 사람을 즐기지 못하면 우리의 인생은 불행할 것입니다. 바울의 기쁨의 서신인 빌립보서는 그 시작을 사람들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보십시오.
나가는 말: 이제 사람을 즐기기 위한 네 가지 중요한 질문을 드립니다.
내가 감사해야 할 사람은 없습니까?
당신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언제 감사하셨습니까? 주변의 사람들이 당신에게 베풀어준 사랑에 우리가 감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복을 누리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무엇이 주어져야 감사하시겠습니까? 큰 것에 감사하고 싶으시면 먼저 작고 사소한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감사하면 당신 손에 들린 작은 촛불이 횃불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친절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당신을 기쁘게 하기가 힘든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작고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고 기쁨을 누리시는 당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간에 감사의 카드를 써보십시오. 당신 마음에 감사를 품고 감사한다고 말하십시오. 당신이 받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사람들에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남편을 위해, 아내를 위해, 자녀를 위해,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 매일 매일 기도하십니까? 저에게 많은 분들이 기도를 부탁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찾아와서 “목사님 제가 목사님을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말하는 분은 매우 적습니다.
제가 목회를 할 때 저희 어머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어머님의 조언은 평생을 사모님으로 섬기면서 터득한 기쁨과 감사의 비결이었습니다. 어머님은 목회가 힘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기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그들을 위해 빌어준 축복이 나의 축복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축복을 여러분에게 나누어주기를 원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성장할 수 있도록 내가 인내를 보여주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이 성장하고 성숙하도록 인내하십시오. 남편에게 아내에게 그렇게 하십시오. 자녀들에게 그렇게 하십시오. 그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보내주신 사람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위해 기다리고 참아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에게 인내하신다면 당신도 사람들에게 인내해야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인내하려고 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성령의 열매는 오래 참는 것입니다. 내가 오래 참으려면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셔야 합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사랑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친교는 사람을 즐기고 교회를 즐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도의 교제를 즐기십니까? 친교를 즐기십니까? 여러분의 교제의 폭은 얼마나 되십니까? 누구와도 즐기지 못하는 마음속에는 사랑의 공간이 없는 것입니다. 몇몇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기는 교제는 아직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체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바울처럼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준 사람들을 축복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랑은 그 안에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성령께서 다루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품게 되면 우리는 원수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이 우리가 제일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누구도 그냥 무의미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이 당신에게 한 잘못을 생각하지 마시고,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바라보십시오. 그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사랑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이 사람을 즐길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무언가를 베풀어준 사람이 있으면 이 시간 감사하다고 말하십시오. 무언가를 베풀고 감사를 받지 못한 분이 있으면 너무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은 주고 또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서운함을 아시고 채워주실 것을 믿습니다.
빌립보서 1장의 서두에서 바울은 사람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사람을 즐기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가 자신의 문제와 환경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남은 삶을 주 안에서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며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존귀한 당신을 축복합니다. 저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