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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건 교회 개혁 3 – 목회 생명을 건 진검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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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목사

3장 목회생명을 건 진검승부

나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한번도 데모를 해본 일이 없다. 비겁함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본시 교육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사회와 제도의 개혁보다는 교육을 통한 인간의 개선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목회를 하면 할수록 교회의 문제는 교육만으로는 해결될까지 자리잡게 되었다. 조직과 제도가 개혁되지 않으면 인간의 의식 개혁만으로는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의식 개혁과 조직, 제도의 개혁이 서로 맞물려 일어날 때 선을 달성할 수 있지, 어느 한 쪽만 가지고는 한계에 부딪히게 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교육을 통하여 의식을 개혁하는 작업과 함께 조직과 제도의 개혁을 위해서도 나름대로 생명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하게 되었다. 교육을 통한 의식의 개혁은 조용한 헌신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조직과 제도의 개혁은 그와 같은 헌신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 기존의 제도와 조직에서 기득권을 향유하는 계층과 생사를 건 싸움이 있어야만 가능함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겁도 나고 부담스러워서 할 수만 있으면 그런 역할을 회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 같은 생각과 일에서 나를 놓아주시지 않았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97녀에 교회의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오히려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용기를 가지고 교회개혁을 위해 싸우면 겁내고 주저앉을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교회로 돌아와 단에 서면서 앞으로 당분간은 교회의 개혁을 위해 생명을 걸고 싸우겠다는 다짐을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교인들 앞에서 분명히 했다. 나는 그때부터 집요하게 파상 공세를 펼쳤고 나름대로 결론이 날 때까지 그 싸움을 놓지 않았다.

교회개혁의 선전포고

‘97년 8월 2일 주일부터 세 주간을 연속해서 ‘민주적인 교회’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는데, 첫 설교의 일부를 아래에 소개한다. 그것은 일종의 선전포고와도 같았다.

“(전략)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참으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교회를 건축하면서 저는 저에게 건물을 건축하는 데 은사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교회를 건축할 때 담임목사들이 가장 생각이 많아서,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지시하기도 하고 또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변경하기도 하는데, 저는 지난 2년 동안 그와 같은 일을 거의 한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 눈에는 그런 것들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동안교회 예배당은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제은사와 노력과는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지어진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우리 교회가 더 잘 지어졌는지도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유형의 교회를 건축하는 데는 은사가 없으나 그래도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교회를 건축하는 데는 저에게 어느 정도 은사를 주시지 않았나 스스로 생각해봅니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무형의 교회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가 제법 선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와 직임에 따라 최선을 다하여 우리 동안교회를 정말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고 훌륭한 교회로 건축해가고 싶습니다. 정말 교회다운 좋은 교회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물론 그 일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고 도와주셔야 되는 일이지만 그 일에 제 생명을 걸려고 합니다.

제 나름대로는 어느 정도 생명을 걸 준비가 끝났습니다. 지난 6년 반 동안 우리 동안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여러 차례 목회적인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최대의 위기는 바로 ‘97년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과 여러 교우들에게 부끄럽고 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으나 저는 정말 동안교회를 더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지만 그때 저는 교회에서 마련해준 사택을 교회에 내놓고 은행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전세 얻어 이사를 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바로 그 집입니다. 덕분에 평수를 많이 줄여야만 했습니다. 어머니와 세 아이를 포함하여 여섯 식구인 저희에게는 좀 비좁은 집이어서 이삿짐을 많이 정리해야 했으며, 아이 중에 하나는 방에서 자지 못하고 거실에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지금은 두 아이가 학기중에는 지방에 내려가 있기 때문에 별로 큰 문제가 없지만 그것을 통하여 저는 제 마음속에 있는 거품과 인간적인 욕심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사택뿐만 아니라 제가 쓰던 자동차와 전화기 등등 교회로 부터 받은 모든 것을 다 교회에 반납하고 개인적으로 새로 장만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아빠가 동안교회를 사임했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동안교회에서 목회를 하게 되었지만, 그때는 정말 완전히 마음으로 교회를 포기하고 떠났었습니다.

그것은 제 평생의 목회적인 흠이 될 만큼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 같은 실수와 허물을 통해서도 저를 훈련시켜주셨습니다. 그때의 그 경험을 통해 목회에 대한 인간적인 야망과 욕심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만 아니라면 떠날 수 있는 준비가 완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저에게 자유함을 주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소신껏 목회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힘을 잘못 사용하여 함부로 교회를 떠나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것을 엄포용 무기로 사용하여 교회와 교우 여러분들을 위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며 그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제가 옳지 않은 마음으로 칼자루를 함부로 휘두른다면 하나님께서는 저를 그대로 버려두시지 않을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목회를 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두려워하면서 목회를 하지는 않겠습니다.

교회의 오십견(五十肩)

저는 요즈음 어깨가 굳는 오십견 때문에 제법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몇 주 전에는 축도를 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의사로부터 오십견을 치료하려면 아픔을 무릅쓰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숯불을 뒤집어쓰는 것과 같은 통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온전하지는 않지만 많은 진전이 있어서 이제 축도는 거의 문제가 없고 몇 주 정도만 열심히 노력하면 오십견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그것을 잘 모르고 통증이 있으면 움직이지 않고 있었는데 그것이 점점 근육을 유착시키는 결과를 낳아 병세가 약화되었던 것입니다. 오십견의 경우 통증을 피해가면 점점 더 통증이 심해지고 통증을 무릅쓰고 운동을 해야만 통증이 점점 없어지게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와 일반 세상의 문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교회에도 오십견과 같은 문제가 잇습니다. 사람이든 교회든 나이를 먹어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오십견과 같은 근육 유착이 생겨 힘을 쓸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 동안교회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에 아주 심각할 만큼 흔히 나타나고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좀처럼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고치지 못하고 내버려두다가 나중에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상태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아픔을 통해 제 오십견을 치료하듯 목회도 그와 같은 정신으로 하려고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건물에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라는 글을 새겨놓았습니다. 저는 정말 우리 동안교회가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와 같은 교회는 고통을 피하고 숨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싸워 승리한 후에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동안교회가 정말 좋고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아픔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저는 정직하게 저와 여러분에게 그와 같은 아픔과 고통을 요구할 것입니다.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을 때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넉넉잡고 일주일이면 들어갈 수 있는 코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로 가려면 그 지역 사람들과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와 같은 마음의 준비가 없었습니다. 전쟁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쟁취하겠다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보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염려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전쟁을 각오하고 앞으로 나아갔다면 일주일이면 됐을 일을 전쟁을 겁내서 돌아감으로 40년이나 광야에서 방황을 해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십견과 같은 교회의 고통과 아픔을 직면하지 않고 회피 한다면 40년이 지나도 건강하고 좋은 교회를 만들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잠깐 동안의 아픔과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용감하게 직면한다면 일주일 만에라도 교회가 마땅히 들어가야 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줄 저는 믿습니다.

저는 몇 주간에 걸쳐서 앞으로 어떻게 목회를 할 것인가에 대해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가 어떤 목회자가 되어 어떤 목회를 하길 원하고 계시는가에 대하여 고민하고 기도하고 공부하여 정리된 내용들입니다.

그 설교가 끝난 후 저는 당회의 결의를 거쳐 여러분들에게 신임을 물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신임을 얻는다면 저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앞으로 정해놓으려고 하는 임기동안 최선을 다해 시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신임을 얻지 못하면 어느 기간 동안 다시 기도하며 생각해보겠습니다. 제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면 생각을 바꿀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이 분명한데 만일 동안교회가 개혁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견디지 못하여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판단된다면 교회를 떠나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겠습니다.

이 일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교인들중에 기도를 열심히 하시는 교인들이 많이 있는데, 기도의 은사를 받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오늘부터 이 문제를 위하여 심각한 기도를 시작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 동안교회에 좋은 결과를 축복으로 주시리라 믿습니다. (후략).”

생명을 건 싸움

나는 이 설교를 통해 교회개혁에 대한 나의 각오와 의지를 표명했다. 힘들어도 돌아가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겠다고 교인들에게 선포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교회개혁은 오십견과 같아서 건드리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아프다고 손을 대지 않으면 점점 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에 숯불을 끼얹는 것과 같은 고통과 아픔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고 손을 대겠다고 결심했다. 고통이 무섭다고 회피한다면 일주일이면 해결할 문제를 40년이 결려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가지고 교회개혁에 나름대로 생명을 걸 것을 하나님게 약속했던 것이다.

쉬엄쉬엄 말썽 없이 목회를 하기에는 동안교회처럼 좋은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장로들의 아킬레스건(?)만 건드리지 않으면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어느 정도 소신껏 목회를 할 수 있는 참으로 좋은 교회중의 하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목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편한 목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옳은 목회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편하고 안정된 목회라는 미끼에 걸려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회를 포기한다는 것은 목회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강한 목회는 필연적으로 선한 싸움을 요구한다. 싸움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힘들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힘든 싸움을 요구하신다. 거짓된 안정과 타협하지도 말고 힘들고 어려운 싸움이라고 포ㅣ하지도 말고 최선을 다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회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고 그러한 목회를 하나님 앞에서 하겠다고 스스로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내 결심을 교인들에게 선포했다.

나는 앞으로 내 목회의 생명을 잘못된 교회으 의식과 제도를 개혁하고 바꾸는 데 걸려고 한다. 비록 그 일이 쉽지 않고 피곤하다고 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깨끗하고 순수하며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일에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한다. 필요하다면 생명을 걸고 용감하게 싸우려고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땅에 40년 만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지 않고 싸워서 일주일 만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내가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싸움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싸움이고 내가 싸우려고만 하면 힘과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기 때문에 담대히 싸우려고 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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