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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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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예레미야가 예언을 시작한 것은 B. C 627년경입니다. 유다가 멸망하기 약 40년 전부터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은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결정을 그 땅 백성들에게 알려주고, 회개하도록 촉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려 너희를 벌하려고 한다. 그러니 너희는 모두 악한 길에서 돌아서고 너희 태도와 행실을 올바르게 고쳐라”(예레미야 18:11절)

그러나 그 땅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소용없는 일이다. 그럴 필요 없다.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살아가겠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고집대로 행동하겠다”(예레미야 18:12절). 하나님은 그 땅 백성들에게 더 이상 경외와 섬김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순종과 헌신을 해야 할 하나님도 아니었습니다. “나의 백성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 어리석은 자식들이요, 전혀 깨달을 줄 모르는 자식들이다. 악한 일을 하는 데에는 슬기로우면서도, 좋은 일을 할 줄 모른다”

이스라엘의 본질적인 죄악은 어리석음과 완악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하나님의 진심을 모르는 무지함, 그 무지함에서 나오는 완고함,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필요 없다.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살아가겠다. 내가 좋은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고집대로 행동하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태도. 이것이 죄인들의 모습이요, 그 땅 백성들의 영적 상태이며,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흘렸던 눈물은 하나님의 눈물이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슬픔과 탄식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향하신 탄식과 슬픔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흘리시는 눈물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돌이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탄식과 슬픔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우리도 아파하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깨지고 망가진 자신의 참 모습과 공동체의 현실을 보지 못하면 그 사람은 울 수도 없고 괴로워할 수도 없습니다. 슬퍼함과 돌이킴이 없다면 자신이 당하는 고통과 억압에서, 우리를 망가뜨리는 무감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치유와 회복은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자신의 반역과 패역과 완악함을 슬퍼하고 돌이키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치료하며,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보라 내가 포로 된 야곱의 장막들을 돌이키고 그 거하는 곳들을 긍휼히 여길 것이라…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 중에서 나오리라”(예레미야 30:17절 이하) 하나님께서는 돌이키고 회개하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변함 없는 사랑으로 망가지고 깨진 것들을 치유하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슬픔과 탄식이 변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가 우리 안에서 터져 나올 수 있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돌이키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 때까지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최승윤목사
앤아버성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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