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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이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한시대와 유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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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전 미시간대학에서 공부한 한인 청년…미주 독립운동의 중심에 서다

 

[주간미시간=김택용 기자] 광복 81주년을 맞아 미시간 한인사회가 특별히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가 있다. 바로 한시대(韓始大) 선생이다.

한시대 선생은 미주 독립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특히 미시간대학(University of Michigan, Ann Arbor)에서 공부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미시간 한인사회와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 하와이에서 교육을 받은 뒤 미국 본토로 건너와 미시간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시절에는 토론반 대표로 활동하며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과의 토론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할 만큼 뛰어난 역량을 보였다.

앤아버에서 공부했던 한인 청년

지금은 수많은 한국인과 한인 2세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미시간대학이지만, 100여 년 전 이곳에서 공부했던 한인 유학생의 삶은 지금과 크게 달랐다.

당시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시기였다. 미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개인의 성공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해외에서 새로운 지식과 국제정세를 배우고, 그것을 조국의 미래와 연결하려 했던 젊은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시대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미시간대학에서 공부한 뒤 시카고에서 한국 유학생들과 교류하며 한국 문제에 대한 관심을 넓혔다. 이후 직접 고국을 방문해 국내 사정을 살펴보고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1926년에는 다시 하와이로 돌아갔다.

그의 삶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교육과 독립운동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에게 미국에서 받은 교육은 개인의 출세를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았다. 배운 지식과 능력을 한인사회와 조국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한인 노동자와 함께한 지도자

한시대는 이후 캘리포니아로 옮겨 한인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에 나섰다.

1930년 농업지역이었던 캘리포니아 생거(Sanger)에서 한인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주선소를 설치해 일자리를 알선하고 생활을 돕는 활동을 벌였다. 이 점은 그의 독립운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독립운동은 단순히 일본에 저항하는 정치적 구호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해외에 흩어져 살던 한인들을 조직하고 서로 돕게 만들며 공동체의 힘을 키우는 것 역시 독립운동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당시 미주 한인사회는 규모도 작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그러나 한인들은 자신들의 생활만을 생각하지 않았다. 독립자금을 모으고 임시정부를 지원하며 한국의 독립을 미국 사회에 알렸다.

한시대는 바로 이러한 미주 한인 독립운동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이끌다

1940년대 들어 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되면서 미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미국 내 여러 한인단체들은 분열된 힘을 하나로 모아 조국의 독립을 지원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한 핵심 조직 가운데 하나가 재미한족연합위원회였다.

국가보훈부 기록에 따르면 한시대는 송종익, 김호, 김병연, 김성락 등과 함께 대표로 선임되며 이 조직을 이끌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한편 미국 정부와 사회를 상대로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오늘날처럼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한국의 현실을 미국에 알리고 미국 정치권과 여론을 움직이려면 조직과 인력, 돈이 필요했다. 미주 한인들은 자신들의 생활비를 아껴 독립자금을 냈으며 한시대와 같은 지도자들은 그 힘을 하나로 모았다.

광복 이후에도 계속된 그의 고민

한시대의 활동이 의미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단순히 ‘독립하는 날’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독립운동가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나라를 되찾는 것뿐 아니라 광복 이후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였다.

한시대 역시 미주 한인사회를 조직하고 교육과 정치활동에 참여하면서 독립 이후의 한국과 한인사회의 미래를 고민했다.

이것은 광복 81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면서 그들이 왜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왜 공동체를 조직했는지, 왜 자신의 성공보다 민족의 미래를 고민했는지도 함께 배워야 한다.

미시간 한인들이 한시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오늘날 미시간에는 수많은 한인들이 살고 있다.

자동차 산업과 첨단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와 기업인, 대학 교수와 학생, 자영업자와 새로운 이민자들이 미시간 곳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오가는 앤아버의 미시간대학에서 약 100년 전 한인 독립운동가가 공부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시대 선생의 이야기는 더욱 특별하다. 그는 역사책 속 먼 인물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미시간 땅을 밟았고, 앤아버에서 공부했으며, 그곳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한인사회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용한 선배 한인이다.

오늘날 미시간에서 공부하는 한인 학생들에게 한시대의 삶은 특히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는 것만이 성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받은 교육과 능력을 공동체와 사회를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삶의 가치라는 사실을 그의 생애가 보여준다.

광복절, 이런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매년 8월 15일이면 한인사회에서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다.

하지만 한시대와 같은 인물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광복절 기념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형식적인 행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시간에서 자라는 한인 2세와 3세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100년 전 너희가 살고 있는 미시간에서 공부했던 한인 청년이 있었다. 그는 미국에서 자신의 미래만을 생각하지 않고 나라를 잃은 조국과 한인사회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

이 한마디가 긴 기념사보다 아이들에게 더 오래 남을 수도 있다.

미시간 한인사회가 광복절을 맞아 한시대 선생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광복의 역사는 서울이나 상하이,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시간에도 우리의 독립운동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 역사를 다음 세대에게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광복절을 단순히 ‘기념하는 날’에서 ‘역사를 이어가는 날’로 만드는 첫걸음일 것이다.

100여 년 전 앤아버에서 공부했던 한 청년의 발자취를 오늘의 미시간 한인들이 다시 기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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