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원화 국제화 로드맵’ 발표…이르면 9월부터 해외 금융기관 원화 서비스 확대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이르면 오는 9월부터 미국 현지 금융기관을 통해 원화(KRW)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한국 정부가 해외에서도 원화를 보다 자유롭게 보유하고 송금하며 투자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원화 국제화 로드맵’을 추진하기로 하면서다.
관련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미국 은행이나 해외 금융기관에 원화 계좌를 개설해 원화를 보관하거나 한국으로 송금할 수 있게 된다. 한국 주식과 국채 등 원화 자산에 투자하는 과정도 지금보다 한층 간편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미국에서 원화를 사용하려면 대부분 한국에 개설된 은행 계좌를 이용하거나, 거래가 필요할 때마다 달러를 원화로 환전해야 한다.
특히 한국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려는 외국인과 해외 투자기관은 한국 외환시장의 영업시간에 맞춰 환전과 결제를 진행해야 해 시간과 절차상 불편이 적지 않았다.
앞으로 해외 금융기관이 원화 계좌를 취급하고 원화 결제망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되면 미국에서도 원화를 미리 보유한 뒤 필요한 시점에 한국 투자나 송금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제도가 시작된다고 해서 미국의 모든 은행이 곧바로 원화 계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에 등록한 해외 금융기관부터 원화 계좌와 결제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며, 실제 서비스 제공 여부와 시행 시점은 미국 은행과 금융기관별 준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환전·송금·한국 투자 과정 간소화 기대
이번 제도 개편의 가장 큰 변화는 미국에서 원화를 보유하고 사용하는 절차가 간편해진다는 점이다.
미국 거주자가 현지 금융기관의 원화 계좌에 자금을 보유하면 필요할 때마다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절차를 반복하지 않고 한국 주식이나 채권 투자, 한국 내 송금과 결제에 활용할 수 있다.
한국 금융시장이나 외환시장이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가 환전해야 하는 불편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 부모나 자녀가 있는 한인들은 생활비, 유학비, 교육비 등을 보낼 때 환전과 송금 절차가 단순해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 방문이 잦거나 한국에서 부동산, 금융상품, 사업체 등 자산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일정 금액의 원화를 미국 계좌에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한국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한인 투자자에게도 원화 계좌는 실질적인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 달러를 송금한 뒤 다시 원화로 환전하는 과정을 줄이고, 투자 시점에 맞춰 원화 자금을 보다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화 계좌를 사용한다고 해서 환전 수수료와 송금 비용이 자동으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환율과 계좌 유지비, 국제송금 수수료, 환전 스프레드 등은 원화 계좌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금융기관의 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소비자는 계좌를 개설하기 전에 적용 환율, 송금 한도, 예금 보호 여부, 계좌 유지비와 한국 금융기관으로의 송금 비용 등을 꼼꼼히 비교해야 한다.
원화를 해외에서도 자유롭게 쓰는 ‘원화 국제화’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원화 국제화는 원화를 미국 달러나 유로화처럼 해외에서도 보유하고 송금하며 거래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확대하는 정책이다.
현재 해외에서 원화를 거래하려면 외환 규제와 결제 시스템, 거래시간 제한 등 여러 장벽을 거쳐야 한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제약을 단계적으로 완화해 해외 개인과 금융기관이 한국 밖에서도 원화를 보다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자산에 투자할 때 원화를 조달하고 결제하는 과정도 간소화한다.
외국인끼리 해외에서 원화를 사고팔거나 원화 표시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고, 해외 금융기관이 원화 계좌와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할 방침이다.
정부는 원화의 국제적 사용이 확대되면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금융시장 접근성이 개선되고, 한국 기업의 무역 및 환전 비용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년부터 24시간 운영되는 역외 원화결제망 추진
원화 국제화의 핵심 기반 가운데 하나는 한국은행에 구축될 ‘역외 원화결제망’이다.
한국 정부는 해외 금융기관들이 원화를 실시간으로 송금하고 결제할 수 있도록 전용 결제시스템을 마련하고, 내년 1월부터 24시간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해외 금융기관이 원화 거래를 처리하려면 한국의 금융시장과 결제기관 영업시간에 맞춰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역외 원화결제망이 운영되면 미국에서 원화를 송금하거나 한국 주식과 채권 거래대금을 결제할 때 한국의 외환시장 운영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줄어든다.
쉽게 말해 미국과 한국의 시차 때문에 발생했던 결제 지연과 환전 불편을 줄이는 금융 인프라가 마련되는 셈이다.
미국 금융기관이 미국 영업시간에 원화 거래를 접수해도 한국의 은행과 결제시스템이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처리가 가능해지는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해외 금융기관, 등록 방식으로 원화 서비스 참여
한국 정부는 해외에서 원화 계좌와 결제 서비스를 취급하는 은행과 금융기관을 ‘역외 원화결제기관’으로 등록할 계획이다.
복잡한 개별 인가 절차보다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금융기관이 등록을 통해 참여할 수 있도록 해 미국을 비롯한 해외 주요 은행의 참여를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해외 금융기관이 역외 원화결제기관으로 등록하면 고객에게 원화 계좌를 제공하고 원화 송금과 결제, 한국 금융상품 투자와 관련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형 은행뿐 아니라 국제송금, 증권거래,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기관도 원화 사업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어떤 미국 은행이 실제로 등록하고 원화 계좌를 출시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금융기관의 전산 시스템 구축과 규제 검토, 고객확인 및 자금세탁방지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서비스는 단계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외국인 외환거래 신고 기준 완화
한국 정부는 원화 결제망 구축과 함께 외국인의 외환거래 규제도 단계적으로 완화할 계획이다.
외국인이 원화를 빌리거나 원화 표시 자산에 투자할 때 적용되는 각종 사전 신고 기준을 현재보다 2배 이상 높이고, 일부 거래는 사전 신고 대신 거래 후 보고하도록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가 소규모 원화 거래를 할 때마다 별도의 신고 절차를 거쳐야 했던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외국 금융기관이 원화 결제에 필요한 자금을 단기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원화 차입 제한도 완화한다.
해외 금융기관이 야간이나 한국 금융시장 휴장 시간에 고객의 원화 송금이나 투자 결제를 처리해야 하는데 원화가 부족할 경우, 단기 차입을 통해 결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원화 계좌가 있더라도 결제에 필요한 유동성이 부족해 거래가 중단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필요한 경우 한국은행이나 외국환평형기금이 시장에 원화를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외국환평형기금은 환율이 급격히 변동하거나 외환시장이 불안할 때 정부가 시장 안정을 위해 사용하는 자금이다.
원화의 해외 사용이 늘어날 경우 국제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특정 시간대나 지역에서 원화 수요가 급증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와 한국은행이 비상 유동성 공급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의미다.
한국 주식·채권 투자 절차도 개선
한국 정부는 원화 국제화와 함께 외국인의 한국 주식과 채권 투자 절차도 계속 개선할 방침이다.
현재 외국인 투자자가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주식, 한국 국채와 회사채에 투자하려면 계좌 개설과 환전, 거래, 결제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부는 외국인 증권투자에 필요한 거래와 결제 절차를 자동화하고 투자자 등록을 간소화하며, 한국 기업의 영문 공시도 확대할 계획이다.
외국 금융기관이 한국 주식과 채권 거래대금을 원화로 결제할 때 적용되는 원화 차입 규제도 오는 9월부터 완화할 예정이다.
이르면 오는 9월부터 미국 현지 원화 계좌와 관련한 제도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은 이러한 규제 완화 일정에 따른 것이다.
해외 금융기관은 원화 자금이 부족하더라도 일정 범위에서 원화를 빌려 한국 자산 거래대금을 결제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들이 환전 시점과 결제시간을 맞추기 위해 별도의 원화 자금을 과도하게 보유해야 하는 부담도 줄어들 수 있다.
보유 원화 활용 범위도 확대
한국 정부는 외국인이 보유한 원화를 단순히 계좌에 보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금융거래에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한다.
외국인이 보유한 원화 채권을 담보로 제공하거나 다른 금융기관에 빌려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일시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원화를 단기 금융상품에 운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현재 해외 투자자는 한국 주식이나 채권을 매도한 뒤 다음 투자 시점까지 원화를 보유해야 할 경우 자금 운용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앞으로는 대기 중인 원화를 단기 예금이나 단기 금융상품 등에 운용해 이자를 받을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있다.
원화 표시 채권의 담보 활용과 대여 거래가 가능해지면 해외 금융기관의 원화 유동성 관리도 보다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외국 중앙은행과 국제금융기구, 해외 정부기관이 한국 국채에 투자할 때 필요한 계좌 개설과 결제 절차도 개선한다.
기관투자가가 한국 국채시장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행정절차와 결제 구조를 단순화해 한국 채권시장의 국제적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