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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生命)을 꺼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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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깨어지기 쉬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알은 그 껍질이 얇고 힘이 없습니다. 알은 단지 둥근 모습으로 침묵하다가 조금만 굴러도 깨지는 소리조차 희미하게 부서집니다. 그러나 알 속에서 생명을 보려 한다면 알의 껍질처럼 두꺼운 것도 없습니다. 알이 부화해서 스스로 껍질을 깨트리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열이 필요한지요. 며칠이고 며칠이고 자리를 뜨지 않고 어미 닭이 알을 품어야 비로소 알이 깨어납니다.

생명을 꺼내려는 사람에게 알의 껍질은 단단합니다. 적어도 그 껍질에 금이 가려면, 그래서 그 벽이 무너져 새의 노란 부리와 솜털이 바깥의 공기와 접하려면, 무수한 밤과 낮을 지나야 합니다. 알을 파괴하려는 사람에게 그 껍질은 연약하게 보이지만, 알에서 생명을 꺼내려는 사람에게 그 껍질은 두껍고 견고한 것입니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사물들과 사람들은 모두 껍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껍질은 외부와 내부의 경계선입니다. 그것은 얇은 피막으로 자신의 생명과 그 의미를 감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사물이나 사람에게서 생명을 얻으려면 그것을 파괴해서는 안됩니다. 파괴하는 순간 죽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파괴는 쉽지만 생명은 없어집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으려면 며칠이고, 몇 해이고 참을 성 있게 품어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파괴해야 할 것이 있고, 인내로 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쁜 것은 파괴해야 합니다. 그러나 좋은 것은 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쁜 것에 대한 파괴를 뒤로 미룹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내일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좋은 것들을 너무 쉽게 파괴합니다. 가까이 있는 소중한 것들을 너무 쉽게 함부로 다룹니다. 멀리 있는 것을 동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것들 속에서 소중한 것을 찾고 그 안에서 존경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하찮은 한 톨의 씨앗이라도 그것을 깊이 들여다 보면 천 근의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작은 낱알 속에는 울창한 숲의 비전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을 겨자씨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씨앗 속에서 울창한 숲을 보는 것만이 비전이 아닙니다. 그 씨앗이 울창한 숲이 되기까지 가꾸고 인내해야 합니다. 작은 씨 속에서 생명을 얻으려면 그것을 옥토에 심고, 가꾸며,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이 과정의 인내를 쓰다고 생각하지 말고, 순간 순간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생명을 위한 격려입니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에게 기대를 주십시오. 좋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서먹했던 여인에게 ‘당신’이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의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흰 공책의 첫 장에 최초의 글씨는 쓰는 마음으로,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에 첫 발을 내딛는 마음으로, 새 집으로 이사간 다음날… 그 최초의 귀가… 그래서 처음으로 제 집에 초인종을 누르면서 멋 적고 설레 이는 몸짓으로, 갓난 아기의 신기한 생명을 대하는 마음으로, 병원 침대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퇴원해도 좋다는 의사의 소리를 들을 때의 기분으로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십시오. <목양실에서 손경구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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