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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의 재미 있는 성경 상식(4) – 바울 사도의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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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
바울 사도의 스캔들

바울에게도 스캔들이 있었다. 일생을 독신으로 살며 순결하기로 정평이 나 있던 사도에게 그런 흉측한 일이? 스캔들… 별로 유쾌한 단어가 아니다. 웹스터 영어사전은 스캔들(scandal)을, “수치스러운 행위나 상황,” “잘못이나 비행으로 발생된 위반 행위,” “평판에의 손상이나 공적인 불명예,” “불명예를 가져오는 이야기나 악의에 찬 험담” 등으로 정의를 한다. 그러니까, 스캔들은 당사자에게는 불명예이고, 그것을 입에서 입으로 회자시키는 전달자들에게는 험담(險談)의 재료가 된다. 인품을 갖춘 점잖은 사람이라면 스캔들에 귀를 기울이지도 말고 스캔들을 전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 세간(世間)의 생각이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자랑스러운 스캔들이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쓰고 있다(고전 1:22-23). 여기서 우리 성경에서 “거리끼는 것”으로 번역된 헬라 원어는 ‘스칸달론’(skandalon)이다. 영어의 스캔들(scandal)이란 낱말은 바로 이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이 이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덩이”(stumbling block), 즉 ‘장애물’(障碍物)로 번역을 하고 있고, 그러한 뜻은 오늘날 ‘추문’(醜聞)과 동의어가 되어버린 ‘스캔들’이란 말에 그대로 함축되어 있다. 그러니 현대적 감각에 맞게 읽을 경우,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리스도(=메시아)’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데 익숙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바울의 ‘스캔들’이었다.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분명히 복음의 종인 바울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라는 개념은 스캔들이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기 전의 유대인 바울은 이런 사도(邪道)를 전하는 사람들은 정신이 나간 이단아들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여 열심을 다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사건이 자신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죄의 방법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 바울은 오히려 이 스캔들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수치나 부끄러움과 연관시켜 회상을 한다. “내가 (스캔들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스캔들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복음은 오늘날도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스캔들로 나타난다. 거의 2000년 전에 로마의 십자가 처형을 받은 한 유대인 남자가 21세기의 미시간에 사는 나의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 스캔들의 복음이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괜찮은 스캔들이다.

유승원 목사의 목회 칼럼
http://www.kpcmd.org/KPCMD2.0/bbs/board.php?bo_table=Pastor_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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