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파괴력과 대안
정비를 마치고 무기탑재가 끝난 전투기라도 사령부가 출격명령을 내리고 관제탑에서 GO 싸인을 해 주지 않으면 아무데도 가지 못합니다. 만약 조종사가 명령없이 발진하고 통제에 불복종하면 격추명령이 내려질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도록 지음받았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고 실패했기 때문에 의존성이 생긴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하나님과 함께 해야만 정상가동하도록 설계되었다는 뜻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생긴 결과는, 아담의 후손인 우리 인간들은 예외없이 관제탑의 통제를 거부하는 오발진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비행기를 격추시키지 않고 연착륙시키는 방법이 무엇인가 … 라는 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니, 인간의 다스림에 순응하던 자연도 인간을 거스리게 됩니다. 독초와 독충이 사람을 해치고, 짐승이 사람을 찢고 삼키는 일이 벌어집니다. 아름다운 에덴은 하루가 다르게
희미해져가는 추억이 되고 말았고, 인간의 죄로 인해 덩달아 저주를 받은 자연도 인간과 함께 신음하는 처지에 떨어졌습니다. 이처럼 엄청난 우주적인 손상을 입은채로 오늘도 우주가 운행되고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안의 “하나님 형상”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중화상을 입은 얼굴마냥 손상되어 있습니다. 그 원형을 되찾기 위한 수술과 회복, 영적rehab 이 성경의 구속사 (redemptive history) 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을 완성하실때, 인간과 더불어 몰락한 자연의 구속도 함께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역사의 회복의 있는 그날, 사람과 함께 자연도 회복될 그날을 온 피조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롬 8:19-23). 아담과 하와의 등뒤로 에덴의 문이 닫히면서 전개된 인류역사는 모두 이 구속의 이야기이며, 인간이 범한 죄의 결과를 원인무효로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에 관한증언입니다.
죄에는 파괴성이 있습니다. 만드는 것보다 부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미술가가 몇 달을 걸려 그린
걸작이라도 성냥 한 개피면 태워버릴 수 있습니다. 존귀한 인간의 생명도 총알 한 방에 굴복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작품을 망가뜨리는 힘입니다. 무엇보다도 죄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의 통로인 관계성에 타격을 줍니다. 하나님과 사귀고 서로간에 사랑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가꾸고 즐기도록 허락받았던 인간이, 범죄의 결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서로간에 소원해졌으며,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갈등구조에 들어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의 인류는 진보와 번영의 신화를 포기하지 않은채로 21세기를 맞았습니다. 경기침체가 우리를 힘들게 한다지만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능력이 어찌해서든 문제들을 해결하고 역사의 진보를 계속하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정직한 자기평가가 필요합니다. 1세대 인간 하와는 아담을 오도했고 아담은 하와를 비난했습니다. 2세대 인간 제1호인 가인은 동생 아벨을 쳐죽였습니다. 그후로 동족착취, 연쇄살인, 근친상간, 인종청소의 이야기들이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옛사람들보다 하나님과 더 친밀한 사귐을 갖고 있습니까? 사람들간의 관계가 이전보다 더 좋아져 갑니까? 우리가 세상과 자연을 더 이해하고 아끼고 관리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세상과 인류의 원작자이신 분이 준비하신 대안 외에 인간에게 다른 희망은 없습니다. 그 대안이 무엇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