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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에서 이스라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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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을 읽으며 우리는 이스라엘을 한 민족, 한 국가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이스라엘의 이야기, 이스라엘의 역사라고 부릅니다. 수천년 국토없이 떠돌던 “유대인”들이 1948년 팔레스틴 땅에 정착해 일군 나라 이름이 이스라엘인 것을 보면 그들의 가슴속에 가장 뜻깊은 이름이 이스라엘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면 언제 아브라함 집안이, 히브리인들이, 자기들을 이스라엘이라 부르기 시작했을까요? 그 기원은 바로 야곱이 경험한 신비한 사건과 관계가 있습니다.

야곱은 장자권에 자기 목숨을 건 사람입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맏이로 태어나는 형의 발꿈치를 잡아 새치기하려 했고, 팥죽으로 장자권을 샀다고 우겼으며, 신분을 위장해 장자에게 갈 족장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결국 형 에서의 노여움을 사자 밧단아람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칩니다. 다혈질인 에서의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당분간” 피신했던 것이 20년 세월을 지내게 되었고, 외삼촌에게서도 미움을 받아 도망나오게 됩니다. 갈곳없으면 고향을 찾는것이 사람이지요. 돌아오자니 형이 다시금 두려워, 얍복 강을 건너지 않고 종들을 보낸다 처자식과 선물을 보내 먼저 인사를 시킨다 온갖 잔머리를 굴리며 두려움에 떱니다. 이때 그는 신비로운 인물을 만나 씨름을 하게 됩니다. 장자권의 영적 가치를 알고 죽어도 그것을 차지하려 했던 야곱이, 이 인물이 범상한 존재가 아닌 하나님임을 알아 보았습니다. 자기를 축복하고 가라. 축복할 때까지 절대로 놓지 않겠다고 고집합니다. 결국 상대는 야곱의 골반을 쳐서 주저앉게 하고서야 야곱에게서 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서 주신 말씀이 “네 이름을 이제는 야곱대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너는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긴 녀석이다! “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을 뵈오면 죽는다는데, 내가 하나님을 뵙고도 살아남았구나! “ 감탄하며 그곳을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 이라 불렀습니다 (창 32장).

하나님을 만나면 죽는 것이 맞습니다. 사기꾼 야심가 야곱은 죽고, 영권을 사모한 이스라엘이 태어났습니다. 얍복강가 씨름은 야곱의 세례식이었고, 브니엘은 하나님 나라 이스라엘의 탄생지가 되었습니다. 평생 다리를 절게 되었어도 오히려 자랑스러워 할, 가슴뛰게 행복한 거듭남의 현장입니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의 변화는 구원역사의 거대한 도약입니다. 야곱이 임종을 앞두고 열두 아들들에 관해 선언한 창세기 49장은 흔히 말하는 “야곱의 축복” 보다는 야곱의 언약 (testament) 이나 예언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야곱이 한 이 예언의 영적 의미는 큽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삭과 야곱의 생애에서 이삭이 두 아들을 축복한 것, 그리고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포함한 자식들을 축복한 것, 이렇게 단 한가지 일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길을 알지 못하고 나간 것, 외아들을 바치라 할 때 주저없이 바치려 했던 일들이 “믿음으로” 한 일인 것처럼, 이삭이 두 아들을, 야곱이 자식들을 축복한 것도 “믿음으로” 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임종시에 자식들을 축복한 것이 왜 그리 중요한가 하면, 바로 그것이 영적 장자권의 계승과 더불어 한 집안에서 한 나라로 확대되어 가는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선포와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 29:1에서는 “야곱의 아들들”이 축복을 받는데, 예언을 마친 후 창 29:28은 이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라고 기록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적 상속권을 세상 무엇보다 더 원하는 사람, 하나님이 “졌다!” 하실 때까지 붙드는 끈질긴 기도의 사람, 그리고 또다른 사람에게 그 귀한 영적 유산을 물려주고야 생을 마감하는 영의 사람들이 됩시다.

유선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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