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는 하루 만에 끝났지만 유독성 먼지와 암, 트라우마는 25년째 계속돼…미국은 다시 “Never Forget”을 되새긴다
[주간미시간=김택용 기자] 2001년 9월 11일 아침.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으로 여객기 두 대가 잇따라 돌진했다. 워싱턴 인근의 펜타곤도 공격을 받았고, 또 다른 여객기 한 대는 승객들의 저항 끝에 펜실베이니아 들판에 추락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미국은 이전과 전혀 다른 나라가 되었다.
약 3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뉴욕소방국(FDNY) 소방관 343명을 비롯한 수많은 경찰관과 구조대원들이 희생됐다. 미국은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했고 공항 보안, 정보기관, 국경관리와 이민정책까지 대대적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올해 9월 11일, 미국은 그날로부터 정확히 25년을 맞는다.
그러나 9·11은 역사책 속으로 사라진 과거가 아니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먼지를 마셨던 소방관과 경찰관, 구조대원, 건설노동자, 맨해튼 주민과 직장인들이 암과 호흡기질환, 정신적 후유증과 싸우고 있다.
무너진 빌딩에서 나온 보이지 않는 적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하면서 맨해튼 남부는 거대한 먼지구름에 뒤덮였다.
건물 잔해에는 콘크리트와 유리뿐 아니라 각종 금속, 섬유, 연소 부산물과 유해물질이 섞여 있었다. 당시 현장에 투입된 구조대원들은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찾기 위해 며칠, 몇 주, 일부는 수개월 동안 작업했다.
CDC 산하 World Trade Center Health Program은 현재도 당시 유독물질에 노출된 사람들의 건강을 추적하고 치료하고 있다.
2026년 현재 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거나 등록된 사람은 15만 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암, 호흡기 질환과 그 밖의 9·11 관련 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래서 9·11의 희생자를 단순히 “그날 숨진 약 3천 명”으로만 정의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테러는 2001년 9월 11일 하루 동안 발생했지만 그날의 건강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추모식에는 ‘일곱 번째 묵념’이 추가된다
이러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변화가 올해 25주년 공식 추모식에서 나타난다.
매년 뉴욕의 9·11 메모리얼에서는 희생자 가족들이 모여 이름을 한 명씩 낭독한다.
세계무역센터 두 건물이 각각 공격받은 시간과 무너진 시간, 펜타곤 공격 시간, 유나이티드항공 93편이 추락한 시간에 맞춰 여섯 차례 묵념도 진행된다.
하지만 올해는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희생자 이름 낭독이 끝난 뒤 9·11 관련 건강 후유증으로 숨진 사람들을 기리는 일곱 번째 묵념이 진행될 예정이다.
25년이 흐른 지금 미국이 9·11의 희생을 다시 정의하고 있는 셈이다.
9·11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가 1억 명
세대의 변화 역시 올해 25주년의 중요한 의미다.
9·11 Memorial & Museum은 현재 미국인 가운데 약 1억 명이 2001년 9·11을 직접 기억하기에는 너무 어린 세대라고 설명한다.
2001년 이후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 미국 사회의 주역이 되고 있다.
이들에게 9·11은 부모 세대가 TV 생중계를 통해 목격했던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라 교과서나 기록영상에서 접하는 역사다.
그래서 올해 25주년의 중요한 과제는 “기억”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9·11 Memorial & Museum은 학생과 교사들을 위한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과 생존자·구조대원들의 증언, 봉사와 공동체 정신을 조명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공포보다 강했던 인간애
하지만 9·11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테러의 공포 때문만은 아니다.
그날 뉴욕에서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를 도왔다.
소방관들은 사람들이 내려오는 계단을 거슬러 위층으로 올라갔고, 경찰관과 의료진들은 자신의 안전보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먼저 생각했다.
낯선 사람끼리 손을 잡고 건물을 빠져나왔으며, 시민들은 구조대원들에게 물과 음식을 제공했다.
테러 직후 미국 전역에서는 헌혈 행렬과 자원봉사 활동이 이어졌다.
9·11 Memorial & Museum이 올해 25주년의 중심 메시지를 “Remembrance and Service”, 기억과 봉사로 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밤하늘에 다시 세워지는 두 개의 빛
오는 9월 11일 밤이 되면 맨해튼 하늘에는 다시 두 줄기의 푸른빛이 올라갈 예정이다.
‘Tribute in Light’라는 이름의 이 조명은 사라진 쌍둥이빌딩을 상징한다.
9·11 테러 6개월 뒤 처음 시작된 이 행사는 이후 매년 9월 11일 밤 뉴욕의 하늘을 비추며 희생자들을 추모해왔다.
25년이 지났지만 그 두 개의 빛이 상징하는 의미는 여전히 강하다.
건물은 다시 지을 수 있었다.
뉴욕도 다시 일어섰다.
그러나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과 당시 구조현장에서 유독성 먼지를 마신 사람들의 고통까지 시간이 모두 지워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9·11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되돌아보는 일이 아니다.
그날 희생된 사람을 기억하고, 지금도 후유증과 싸우는 사람들을 돌보며, 극심한 위기 속에서도 서로를 도왔던 인간의 용기와 연대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이다.
25년 전 미국인들이 남겼던 약속은 매우 짧았다.
Never Forget. “절대 잊지 말자.”
25년이 지난 올해 9월 11일, 그 말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약속으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