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이민과 자영업 중심 경제구조에 더해 ‘은퇴준비 부족’도 큰 몫
미국 한인사회는 흔히 교육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이민사회로 평가된다. 그러나 65세 이상 한인 시니어만 따로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최근 연구에서는 미국 내 한인 시니어의 약 18%가 연방 빈곤선 이하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인 시니어보다 두 배 이상 높고 같은 아시안계에서도 가장 높다.
즉 한인 시니어의 공식 빈곤율은 백인이나 필리핀계·인도계 노인의 약 2.5배, 일본계와 비교하면 2.6배가량 높다. 중국계와 베트남계 역시 높은 수준을 보였다. 연구진도 베트남계·중국계·한인 시니어가 조사 대상 가운데 빈곤선 이하 비율이 가장 높은 집단이라고 지적했다.
빈곤선의 두 배 이하까지 보면 40%에 육박
더 심각한 것은 공식적인 빈곤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인 시니어 가운데 12.0%는 연방 빈곤선의 101~150%, 또 9.2%는 151~200%의 소득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이를 합하면 한인 시니어의 39.4%가 빈곤선의 200% 이하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65세 이상 한인 10명 가운데 약 4명이 빈곤층이거나 빈곤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저소득층인 셈이다.
미국의 높은 주거비와 식료품비, Medicare 보험료, 처방약 비용 등을 고려하면 이러한 ‘near-poor’ 계층 역시 경제적으로 매우 취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한인 시니어의 빈곤율은 이렇게 높은 것일까.
늦은 이민, 짧은 Social Security 근로기록, 자영업 중심의 경제활동 같은 구조적인 요인이 분명히 크다. 그러나 동시에 은퇴준비를 충분히, 그리고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도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이민 시기다. 많은 한인 1세대는 30대, 40대 또는 그 이후에 미국에 왔다.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20대부터 직장생활을 한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Social Security와 401(k), pension, IRA 등을 쌓을 수 있지만 중년 이후 이민한 한인들은 미국식 은퇴제도에 참여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이민 시기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미국에 정착한 뒤에도 상당수 한인 1세대는 은퇴자금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기보다 당장의 생계와 사업, 주택, 자녀교육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특히 식당, 세탁소, 소매점 등 자영업에 종사한 이민자들은 회사원이 받는 401(k), employer match, pension 같은 혜택을 이용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스스로 IRA, SEP IRA, SIMPLE IRA, Solo 401(k) 같은 은퇴계좌를 적극 활용했어야 하지만 과거에는 이런 제도에 대한 정보와 관심이 지금보다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사업체와 집은 있어도 정작 은퇴 후 매달 생활비를 만들어줄 금융자산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생겼다.
Social Security도 마찬가지다. Social Security 연금은 최고 35년의 근로소득 기록을 바탕으로 계산된다. 미국에서 일한 기간이 짧은 데다 자영업 과정에서 신고소득까지 낮았다면 은퇴 후 받는 연금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
당시에는 세금을 줄이는 것이 유리하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만큼 자신의 미래 Social Security를 줄인 셈이 될 수 있다.
또 하나는 한인 1세대의 자녀 중심 재정문화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은퇴계좌보다 자녀 대학 학비, 주택 구입, 결혼, 사업 지원을 먼저 생각했다. “나는 조금 덜 써도 자녀만 잘되면 된다”는 희생정신은 한인사회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힘이었다.
그러나 노후 준비 측면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자녀 역시 높은 주거비, 학자금 대출, 자녀 양육비 등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부모 세대가 기대했던 만큼 경제적으로 지원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언어 장벽과 정보 부족도 더해진다. SSI, SNAP, Medicaid, Medicare Savings Program, 저소득층 주택지원처럼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어도 제도를 몰라 신청하지 못하는 시니어들이 있을 수 있다.
결국 한인 시니어 빈곤은 구조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은퇴준비 부족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고 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늦게 미국에 와 은퇴자산을 쌓을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에 정착한 이후에도 은퇴계좌를 일찍 시작하지 못했고, 사업과 자녀에게 자산을 지나치게 집중한 선택 역시 오늘날의 노후소득 부족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은퇴준비는 돈이 남았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이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 해야 한다.”
재정설계에서도 현금관리, 위험보호, 투자·은퇴계획, 세금·상속계획을 장기간 함께 준비하는 접근이 중요하다.
젊은 한인 세대는 401(k), IRA, Social Security를 30~40년 앞서 준비해야 한다. 현재의 시니어들에게는 정부 혜택과 주거·의료·생활비 지원 정보를 적극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오늘의 한인 시니어 빈곤은 단지 과거 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다음 세대가 같은 어려움을 반복하지 않도록, 한인사회가 지금부터 은퇴준비의 중요성을 더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