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내가 얼마나 많이 용서 받았는가를 기억하는 것이다.
용서는 긍휼과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얼마나 많은 용서를 받아왔으며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았는가를 기억하라.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2)
당신이 벌어서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니다. 당신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니다. 용서는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받은 것이다. 이것이 참된 용서의 시발점이다.
당신이 가치가 있어서 용서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이 가치가 있어야만 당신이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신이 노력해서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이 노력해야만 당신이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용서를 은혜로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느끼면 느낄 수록 더 많이 용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성도는 모두 하나님께 용서 받은 사람이다. 용서를 받은 사람이 용서할 수 있다. 만일 누군가 용서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용서를 받은 사람이 아니다. 용서를 받는 일이 없기 때문에 용서할 줄 모르는 것이다.
긍휼은 공의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친절한 것을 말한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게 되면 강력한 감정이 일어난다. 이렇게 복받친 감정은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폭력과 같은 복수의 힘으로 사용하기 쉽다. 긍휼은 이러한 감정의 힘을 다스리는 능력이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3:9)
성경은 저주를 축복으로 갚으라고 말씀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어떻게 복으로 돌려줄 수 있는가? 그 비결이 긍휼이다. 하나님께서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라고 하신다. 정말 자비를 베풀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상대방의 뒤를 치고 싶다. 그 사람과 다시는 관계하고 싶지 않다. 무엇이나 닥치는 대로 그 사람에게 던지고 싶다. 다른 것은 하겠는데 축복만은 할 수 없는 감정이 일어날 때가 있다.
긍휼의 시작은 용납과 용서이다. 용납은 타인의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용서는 타인이 나에게 잘못한 것에 대한 것이다. 용납과 용서는 큰 일 뿐 아니라 수많은 사소한 일에도 해당된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 3:13)
용서와 긍휼은 성품이다. 인간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성품이다. 성품이 인간관계의 뿌리다. 성품의 특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긍휼과 용서는 한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성품들은 삶을 통하여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당신 곁에 보내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의 용서를 시험해 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