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마다 달마다 그리고 때마다 우리가 찾고 먹는 음식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조선시대 농가의 행사를 월별로 기록한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보면 계절별로 갖가지 나물과 계절 음식이 나온다. 생선도 겨울에는 겨울에 잡히는 생산을 먹어야 제 맛이다.
일년 중 철을 따라 이뤄지는 각종 풍물이나 철마다 먹는 음식을 적어 풀어 놓은 책이 세시기(歲時記)다. 우리 말에 녹아 있는 다양한 계절 음식을 찾아 세시기처럼 월별로 정리했다.
1월복어/갖은 나물
“목숨을 걸고 복어를 먹는다(搏死食河豚)”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이며 미식가였던 소동파가 한 말이다. 물 돼지라는 뜻의 하돈(河豚)이 바로 복어다. 중국에서는 심지어 ‘천계옥찬(天界玉饌)’이라며 하늘 나라에서 신선과 선녀들이 먹는 음식이라고 말했다. 일본에도 ‘복어는 먹고 싶고 목숨은 아깝다’는 속담이 있다.
복어는 겨울에 먹어야 그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탕으로 또는 회로 먹는데 술을 과하게 마신 주당이 즐겨 찾는 해장 음식이 복어국이다. 종잇장처럼 얇게 썬 회를 접시에 펼치면 아무 것도 없는 빈 접시처럼 보인다.
본초강목에는 “복어는 독이 있어 맛은 기가 막히지만 잘못 다루면 사람이 죽을 수 있다”고 했다. 복어 알에 들어있는 독은 치명적이어서 30명을 죽일 수 있다. 서양에서도 복어를 먹었는데 예전 이집트 사람들은 복어 껍질로 주머니를 만들어 갖고 다니면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장사꾼들이 즐겨 이용했다고 한다.
아구찜으로 즐겨 먹는 아귀도 겨울이 제철이다. 아귀는 불교에서 악업을 저질로 굶주림의 형벌을 받는 아귀(餓鬼)에서 나온 말로 입이 크고 흉하게 생긴 모습에서 유래된 듯 하다. ‘물텀벙’이라는 별명도 있는데 옛날에 그물에 잡히면 어부가 재수 없다며 바다에 텀벙 버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아귀는 그러나 생긴 모습과는 달리 저지방 저칼로리 식품으로 영양가가 높고 비타민 A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묵은 산나물 삶아 내니 고기 맛에 비길 소냐
귀 밝히는 약술이며 부스럼 삭히는 생밤이라
정월 대보름이면 호박고지, 박고지, 가지, 버섯, 고사리, 시래기, 취나물 등 갖은 나물을 말려 두었다가 이날 무쳐 먹는다. 대보름 나물을 무쳐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보통 아홉 가지 나물을 무치는데 아홉은 꽉찬 숫자를 뜻하며 그 해의 채소 풍년을 기원하는 뜻도 들어 있다.
2월가자미/물쑥
‘가자미 놀던 뻘 맛 도미 맛보다 좋다’
‘상제가 울어도 제사상에 가자미 물어 가는 것은 안다’
가자미는 가을에서 겨울철까지 가장 맛이 좋아 살이 쫄깃쫄깃하고 단단해 씹는 감촉이 좋다. 흰살 생선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가자미는 단백질이 다른 생선보다 20% 많으며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한 식품이다. 동맥경화 및 혈전을 예방하는 고도 불포화 지방산이 많다. 입맛 없을 때는 가자미 회 무침이나 가자미 식해가 일품이다.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
물쑥은 이른 봄 습지에 자생하는 국화과의 다년생 풀이다. 다듬어 살짝 데친 후 양년 초고추장에 무쳐 먹는데 묵이나 김, 달래와 함께 먹으면 별미다.
3월조기/두릅
‘3월 거문도 조기 7월 칠산 장어와 안 바꾼다’
‘칠산 바다 조기 뛰니 제주 바다 복어 뛴다’
‘조기 배에는 못 갈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조기를 잡을 때 시끄러우면 조기가 도망가는데 수다를 많이 떠는 사람을 비웃을 때 하는 말이다.
조기는 제주도에서 겨울을 보내고 북상해 3월말 4월 초 영광 앞 바다에서 산란을시작한다.
산란 무렵의 조기는 알이 꽉 차고 살이 올라 어찌나 맛 있는지 ‘밥도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동의보감에 소화가 잘 되며 기운을 북돋운다고 기록되어 있다.
앞산에 비가 개니 살진 나물 캐오리라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 도랏 이어리를
일부는 역어 달고 일부는 무쳐 먹세
두릅은 단백질이 풍부한 향토 나물이다. 데쳐서 참기름과 깨소금에 무쳐 초고추장이나 겨자즙과 함께 먹는다. 강원도의 개두릅도 향기와 맛이 독특하다.
4월삼치/느티떡
‘삼치 한 배면 평양감사도 조카 같다’
삼치는 지방 함량이 많아 입에서 살살 녹으며 기름기가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삼치에 있는 기름기는 불포화 지방산으로 저밀도 단백질의 생성을 억제해 동맥경화, 뇌졸증, 심장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산란기인 봄철의 삼치를 최고로 치지만 기름기 많은 겨울에도 즐겨 먹는다.
석탄일에 등 달기는 산촌에 바쁜 일 아니나
느티떡 콩찌니는 제 때에 별미로다
요즘 보기 힘든 느티떡은 초파일 절기에 먹는 떡이다.
느티나무에 새 싹이 나올 때 연한 잎을 따다가 멥쌀가루와 섞어 떡켜를 두툼하게 해서 만든 설기떡이다.
5월밴댕이/상치쌈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말이 있다. 속 좁고 너그럽지 못한 사람을 빗대어 부르는 말이다. ‘오뉴월 밴댕이’라는 말도 있다. 변변치 못하지만 때를 잘 만났다는 뜻이다.
뒤집어 말하면 5-6월에 밴댕이가 가장 제 맛을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갈머리는 없어도 맛은 그만이다. 밴댕이는 몸길이 약 15cm정도의 청어과에 속하는 바다 물고기다.
증보산림경제에는 단오 이후 소금에 절였다가 겨울에 초를 쳐서 먹으면 그 맛이 으뜸이라고 했는데 요즘 밴댕이젓의 원형이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밴댕이젓을 보냈다는 구절이 나온다.
보리밥 찬국에 고추장 상치쌈을
식구들 헤아리니 넉넉히 준비하소
여러 가지 쌈장을 만들어 한 입 그득히 먹는 상추쌈 맛은 초여름의 별미다. 많은 동양의 옛 명의(名醫)들이 상추의 효능에 대해 적어 놓고 있는데 당(唐)나라 때 ‘천금식치(千金食治)’라는 의학서에서 “상추가 정력에 좋다(益精力)”고 썼다. 상추쌈에 밴댕이 젓을 듬뿍 얻어 먹으면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6월꽃게/호박나물
간장 게장은 밥도둑
알찬 암게를 일주일 정도 간장에 삭혀 밥을 비벼 먹으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꽃게는 6월에 잡은 것을 최고로 친다. 7, 8월 산란기를 앞두고 살이 오르며 게 뚜껑에는 노란 알과 내장이 가득 차기 때문이다.
속담에 ‘그믐 게는 꿀맛이지만 보름 만월 게는 눈물 흘리며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야행성인 꽃게는 보름을 전후해 먹이 활동이 활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장은 사돈하고는 못 먹는다’는 속담도 있다. 딱딱한 껍질과 함께 요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점잖게 먹기는 힘든 음식이기 때문이다.
호박나물 가지 김치 풋고추 양념하고
옥수수 새 맛으로 일 없는 사람 먹어보소
호박나물은 속을 뺀 애호박을 썰어 소금에 절였다가 볶은 후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무친 나물로 여름철에 많이 해먹는 찬물이다. 새우젓으로 간을 하면 맛이 더욱 좋다.
7월장어/오이무침
‘3월 거문도 조기는 7월의 칠산 장어와 안 바꾼다’
영광 바다에서 잡히는 조기 맛이 뛰어 난 것을 강조하는 말이지만 뒤집어 해석하면 7월의 장어 맛도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부산 사투리로 꼼장어, 일본말로 아나고인 장어는 옛날부터 정력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수놈 한 마리당 암놈 100마리 정도의 비율로 살고 있는데다 껍질을 벗긴 상태에서도 10시간 정도를 꿈틀거릴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먹지만 제철은 여름으로 ‘숙주에 고사리를 넣은 장어 국을 먹고 나면 다른 것은 맹물에 조약돌 삶은 국 맛이 난다’고 했다.
채소 과일 흔할 때에 뒷날을 생각하여
박 호박 얇게 썰어 말리고
오이 가지 짜게 절여 겨울에 먹어 보소
오이무침은 늦여름에 나오는 늙은 오이를 납작납작하게 썬 후 소금에 절여 초고추장으로 무쳐 먹는 나물이다.
8월농어/박나물
봄 조기, 여름 농어, 가을 갈치, 겨울 동태라고 해서 여름철 생선의 으뜸으로 농어를 쳤다. 6월부터 농어 철이지만 어린 고기보다 다 큰 고기가 맛있으니 한 여름이 제격이다. 또 일본 속담에 ‘가을 천둥소리에 놀라 농어가 깊은 바다로 도망간다’고 했으니 예전에는 여름이 지나면 사실 잡기도 힘든 생선이다.
‘보리타작 농촌총각 농어 10마리 잡은 섬 처녀만 못하다’는 속담도 있으니 맛이 좋아 인기가 높음을 알 수 있다. ‘바다의 웅담’으로 불리는 물고기로 동의보감에는 ‘오장을 보하고 위를 고르게 하며 힘줄과 뼈를 튼튼하게 한다’고 했다.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명절 쇠어 보세
송편 박나물 토란국으로 성묘 하고 이웃끼리 나눠 먹세
박 나물은 아직 늙지 않은 여리고 단 것으로 따서 속살을 파낸 후 납작납작 썰어서 참기름으로 볶은 후, 다진 파, 마늘, 깨소금, 청장을 넣어 맛을 낸다.
9월전어/무나물
‘전어 한 마리가 햅쌀밥 열 그릇 죽인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 돌아 온다’ ‘전어 머리 속에는 깨가 서 말’ 등등 전어와 관련된 속담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만큼 가을 생선으로 전어를 꼽는다. 맛뿐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날 때 손발이 자주 붓고 소화가 잘 안 되는 50대 이후 장년에게 좋은 생선으로 꼽힌다.
전어와 함께 꼽는 가을 생선 중의 하나가 고등어다. 초가을부터 늦가을까지 맛이 좋아 ‘가을 배와 고등어는 며느리에게 주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고등어에는 성인병을 예방하는 기능성 물질이 들어 있어 동맥경화를 막고 혈압을 정상으로 유지하는 성분이 있다. 고등어는 일본어로 ‘마사바’인데 뒷구멍으로 교섭을 한다는 뜻의 ‘사바사바’는 고등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타작 점심 차려 내니 닭국이 없을소냐
새우젓 계란찌게 벌어지게 차려놓고 배춧국 무나물에 고춧잎 장아찌라
무나물은 채 썬 무를 볶다가 소금, 파, 마늘, 생강즙으로 양념하여 익힌 후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무친다.
10월갈치/젓국지
‘10월 갈치는 삼겹살보다 낫고 은빛 비늘은 황소 값보다 높다’ 대중적인 생선으로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갈치는 5월부터 12월까지가 제철이나 가을 갈치를 보다 알아준다. 한방에서는 오장육부를 튼튼하게 하고 특히 위장을 따뜻하게 한다고 설명한다. ‘은빛 비늘은 황소 값보다 비싸다’고 하는데 갈치를 덮고 있는 은백색 물질은 비늘이 아닌 구아닌이라는 물질로 인조 진주의 원료로 활용된다. 친한 사이에 서로 모함한다는 뜻의 ‘갈치가 갈치 꼬리 문다’는 속담도 같은 종의 꼬리를 잘라 먹는 습성 때문에 생겼다.
대하(大蝦)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해 강장식품으로 꼽히는 대하는 산란 직전인 3-4월과 10-11월 가을철이 제철이다. 대하를 비롯한 새우의 효력으로는 양기를 더해주는 것을 꼽으며 조선 말 의학서인 방약합편에는 ‘아동에게 주지 말라”고 했고 중국에서는 “혼자 여행할 때는 새우를 먹지 말라”고 했다.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꿀 꺽어 단자하고 메밀 찧어 국수하소
가을걷이가 끝나면 김장을 담근다. 젓국지는 궁중에서 담그던 통배추를 말하는데 조기젓이나 황석어젓 등 젓갈을 많이 넣고 담근다.
11월꽁치/팥죽
‘꽁치는 서리가 내려야 제 맛’. 꽁치가 가장 맛있는 시기는 서리가 내리는 10월과 11월이다. 실제 꽁치는 계절별로 지방 함량이 달라 여름에 10% 전후에서 가을에는 20%로 높아졌다 겨울에는 5% 대로 떨어진다고 한다.
한류성 어종인 꽁치는 등 푸른 생선으로 DHA가 풍부해 성인병 예방에 좋고 항산화 작용으로 젊음을 유지시키는 비타민 E와 셀레늄이 풍부하다. 특히 야맹증에 효과가 있는 비타민 A는 소고기보다 16배가 높다. 또 내장에는 칼슘이 많다. 그래서 옛날부터 ‘꽁치가 나면 신경통이 들어간다’라는 말이 있다. 꽁치는 선도가 좋은 경우 내장 째 먹는 것이 좋다.
양식이나 아껴보자
콩기름 우거지로 죽이라도 다행이다
동지는 좋은 날이라 특별히 팥죽 쑤어 이웃과 즐기리라
동국세시기에는 동짓날을 작은 설이라고 해서 아세(亞歲)라고 했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먹어야 하는데 겨울에 추위를 타지 않고 악귀들을 멀리 내쫓을 수 있다고 믿었다.
12월명태/만두
‘명태 만진 손 씻은 물론 사흘 국 끓인다’ 인색하다는 뜻이고 ‘북어 한 마리 부조한 놈이 제사상 업는다’는 말도 있다.명태와 관련된 속담은 부정적인 것이 대부분이지만 사실 명태는 어느 한 부분도 버리지 않고 다 먹는 ‘팔방미인’ 생선으로 겨울철 한국인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초다.
살코기는 국이나 찌개로 끌이고 내장은 창란젓, 알은 명란젓, 수컷의 정액 덩어리인 곤이는 국을 끓여 먹는다. 아가미는 소금에 절여 ‘서거리 깍두기’를 담거나 생채에 넣어 먹는다. 이름도 다양하다. 생물 상태인 것은 생태, 얼린 것은 동태, 말린 것은 북어 혹은 건태, 얼렸다 녹였다 한 것은 황태, 내장을 빼고 반 건조시킨 것은 코다리, 하얗게 말린 것은 백태 등등.
한류성 물고기인 명태는 수온이 1-10도인 찬 바다에서 살며 베링해를 비롯해 동해에서 잡히는데 한 겨울이 제철이다.
콩 갈아 두부하고 메밀쌀 만두 빚소
깨 강정 콩 강정에 곶감 대추 생밤이라
섣달 그믐날이면 만두를 빚는다. 만두는 원래 초봄에 일년의 평안을 기원하는 음식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설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시기로 음과 양이 서로 교차하는 시절이다. 이 시기에 만두를 빚어 제사를 지내면 바람이 잔잔해 지고 비가 내려 일년 동안의 날씨가 평온해진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