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발행인 칼럼] 감사만 할 일인가?

매년 7월 27일 한국 전쟁 종전 기념일이 되면 미시간에서도 미국 참전용사들이 주최하는 종전 기념식이 열린다. 롸체스터 힐즈를 비롯해 디어본 참전용사회가 주최하는 기념식에 한인 사회 지도자들은 손님으로 얼굴을 내미는 정도의 참여를 해왔다.

미시간 한인 사회가 종전 기념일에 참여하는 것에 소극적인 것은 한국인들은 종전을 기념할 수 없다는 정서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을 맺을 때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만 참석하고 한국측이 불참한데서 힘을 얻는다. 당시 한국은 종전을 반대했었기 때문이다. 대신 북진 통일을 원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참전용사회와 한인 사회를 연결하는 고리가 튼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인 사회 전반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인물이 중간 역할을 하기 보다는 한국 정부가 참전 용사들에게 관심이 있다는 점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려는 순수하지 못한 생각들이 중간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있다. 순서를 맡은 사람들도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사람들로 객관성있게 선별되기 보다는 중간 역할을 하는 사람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선정되면서 커뮤니티로 부터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는 지적도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집행부인 한인회장을 제치고(?) 한인회 이사장이 인사말을 한 것이 모양새가 안좋다는 반응이 있었다. 작년 한인회장도 올해 한인 회장도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다. 축도를 한 목사님도 미시간 교계를 대표하는 교회협의회장이 아니었다. 교회협의회장은 연락도 못받았다고 한다. 교회협의회장은 “한인 사회가 화합이 되려면 대표성을 잘 지켜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복잡한 문제들을 접어두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념식에 참석하면 고령의 참전용사들을 만날 수 있다. 디어본 출신중에는 87세의 할아버지도 있다. 보통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70대인데 예비군으로 징집이 된 사람들은 80대도 있다. 이들을 만나면 감사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들이 한국전 참전 용사라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또 한인 사회가 그들을 환영해 주고 감사해 한다는 것에 이들은 커다란 위로를 받고 있다. 따라서 한국을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에 인색할 수 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한국 전쟁이 발생한 배경을 따져 보면 미국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을 불러온 에친슨 라인이 그렇고 미국이 한국전에 참전한 것도 한국을 구하기 보다는 일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닉슨 전 대통령의 비공개 발언(1970년 9월16일)이 신경에 쓰인다. 2004년 성균관 대학의 김일영 교수가 펴낸 [건국과 부국]에 따르면 에친슨 라인은 ‘한국과 대만을 방위선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재정 지출 삭감을 주장하는 미 의회와 군비의 호율적 사용을 주장하는 군부를 다독이면서, 북진통일이나 본토수복을 외치는 이승만과 장제스의 무모한 모험을 견제하고, 그러면서도 유엔을 끌어들여 두나라의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다목적 발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을 갖는다.

따라서 한국전 종전 기념식에 오면 참전용사들에 대한 감사는 충분히 하되 반드시 집고 넘어야 할 것이 있다. ‘워싱턴 DC에서 엉뚱한 결정을 내리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이 잃는다’는 사실이다. 병사 7백만 명, 민간인 3백만 명이 죽었다. 미시간의 주민이 천만이니 우리가 다 죽은 거나 다름없다. 2백 5십만의 북한 군과 민간인, 1백 5십만의 남한 군과 민간인, 1백만의 중국군과 민간인, 5만 5천의 미군, 5백의 캐나다군, 3백의 호주군, 그리고 그 외 참전 UN군 5천명이 한국전에서 생명을 잃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전쟁의 책임을 모두 미국에게 돌리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남침을 감행한 김일성 도당과 중국, 소련등 공산 동맹국들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만들어 준 꼴이 된 미국도 2차적인 책임이 있다. 물론 0차적인 책임은 한국인들에게 있다. 한반도의 운명을 한국인들이 자주적으로 책임지지 못하고 강대국들이 좌지우지하도록 만들어 놓은 약소 국가 국민들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그냥 ‘한국을 살려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만 하기에는 속이 상한다. 일년 중 하루인 이날 7월 27일 한국전 종전일이 되면 내 나라를 내 힘으로 지켜내지 못한 국민들의 원통한 심정을 부여잡고 피비린내 나는 단내를 입에 머금고 곱씹어야 한다. ‘고맙긴 고마운데 남의 나라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말이다.

늘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이 앞으로도 강대국들의 잘못된 결정에 의해 운명이 결정될 지도 모른다. 구한말 때나 한국전 전후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주위에는 아직도 강대국들이 으르렁 거리고 있고 한국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힘이 없다.

자기 힘으로 자국을 지켜내지 못하는 나라는 누구의 나라인가? 한국에 파병되어 있는 미군이 철수하면 어떻게 하나 불안해하는 한국민들의 정서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제 남이 지켜주는 것에 타성이 젖어서 내 힘으로 지켜야 하겠다는 생각도 안하는 것인가?

몇달 전 한반도내 전략 핵무기 배치 여부를 미의회에서 논의한다고 한국 언론들이 떠들어 댔다. 한미 양국 정상이나 양국의 국방 장관이 모여서 논의한 것이 아니고 미국 의회가 한반도내 핵무기 배치를 자체적으로 논의한 것이다. 또 지난 달 한국은 한국군 미사일 사정거리를 늘려 달라고 미국에 요청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누구의 나라인가?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 어떤 한국인도 어떤 한국의 언론도 분통해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미국이 한국을 지켜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식민지 근성이 팽배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이 아니다. 한국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 올해 기념식에는 칼 레빈 연방상원의원과 쟌 딩글 연방 하원의원이 참석했다. 미국 정계에서 파워가 있는 중견 정치인들이다. 예상했듯이 행사 마지막에는 이런 유명 정치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한인들로 무대가 혼잡했다. 이들은 그 사진을 찍어서 어디에다 쓰려는 것일까?

사진을 찍으며 의미없는 미소를 짖기 전에 이날 한인 사회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한마디 건냈어야 했다. 한반도의 안전을 놓고 불장난을 하지 말라고 강력한 메세지를 전달했어야 했다. 스타를 만나 흥분하는 철없는 어린이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 조국의 안녕을 걱정하는 미국의 시민권자로서 당당한 주장을 할 수 있었어야 했다. 또 유명인들과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을 시간에 객석에 내려와 백발이 성성한 참전 용사들의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나 한번 더 잡아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참전용사들에게 감사를 전하러 온 건지 칼 레빈 상원의원을 만나 눈도장을 찍으러 온 건지 구분이 안되었다.

미시간을 대표하는 한인 사회 지도자들이 철학이 없는 태도로 미국 정치인들을 대하면 4만 한인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연방 상하원의원과 사진이나 하나 찍어서 집에다 걸어놓고 자랑을 하고 싶어 이런 곳에 온다면 나머지 한인들에게 죄송한 일이다. 그런 사진을 한인회 웹싸이트에 올려 놓고 커다란 활동이나 한냥 쇼업을 한다면 동포들을 우롱하는 일이다.

거기에 덧붙여 핵심을 찌르지 못하는 피상적인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돌아서는 그들은 아마도 ‘아마추어들이군’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니면 ‘그냥 참석해서 웃어만 주고 사진이나 같이 찍어주면 감지덕지 하는 사람들이군’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년에 이 행사에 참석하는 한인들은 똑바른 생각으로 준비하고 갔으면 좋겠다. 왜 내가 여기에 참석하며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미리 예상하고 준비해야 한다. 어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런 철학이 없이 행동하면 추태가 나오기 십상이다. 그런 노력이 있어야 우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김종대 한인회 이사장이 한국전 발발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미국과 소련이 일본의 무장을 해제하기 위해 3.8선을 그었고 그것이 한국 분단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이 분단된 것은 한국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6.25 전쟁이 발생하게 되었고 천만이 죽는 대 참변을 치르고도 한국은 아직도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두동강이 나있다. 수차례에 걸쳐 6자 회담이 열리기는 했지만 중국, 일본, 러시아는 물론 미국 조차도 속으로는 한국의 통일을 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더 속상한 일이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면 한반도는 누구의 땅이란 말인가? 또 이런 조국을 보면서 해외동포들을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주간미시간 발행인 김택용
mkweek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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