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

[미시간 출신 유명인 시리즈 4] 플로이드 메이웨더(Floyd Mayweather Jr.)

미시간 그랜드 래피즈에서 태어나 권투의 레전드가 되다

[주간미시간=김택용 기자] Floyd May-weather Jr.(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는 체급불문 이 세대 최고의 권투선수로 간주된다. 그는 그의 피와 땀을 비롯해 인생 전부를 권투에 담았다. 49번 승리 중 26 KO승을 끌어낸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그는 WBC 슈퍼 페더급 챔피언, WBC 라이트급 챔피언, WBC슈퍼 라이트급 챔피언, IBF웰터급 챔피언, WBC 웰터급 챔피언, WBC 라이트 미들급 챔피언, WBA(슈퍼) 라이트 미들급 챔피언, WBA(슈퍼) 웰터급 챔피언과 WBO웰터급 챔피언을 차지했다.

링에 올라선 그는 놀라운 스피드, 강력한 파워와 믿을 수 없는 작전을 바탕으로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그의 싸움은 아주 소수만이 가질 수 있는 특출한 주먹의 예술품과 같다.

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메이웨더는 오늘날모든 상대 선수에게 악몽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40대에 들어선 그지만 권투계에 입문할 때 못지않게 열기왕성하다는 점이다.

메이웨더는 1977년 2월 24일, 미시간 그랜드 래피즈의 한 권투선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플로이드 메이웨더 시니어는 웰터급 전 도전자였으며 삼촌인 제프와 로저도 프로 권투 선수였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절망적인 마약 중독자였으며 금전적으로 그의 가정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불법 마약 밀매로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났다. 이런 상황에서 권투는 그의 좌절감과 분노를 쏟아낼 분출구였다.

그는 곧 프로 복서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습득했다. 그의 정밀도, 속도 그리고 섬뜩할만한 권투 감각은 그의 나이또래에서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선수로 만들었다. 그는 그랜드래피즈 오타와 힐즈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권투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플로이드의 아마추어 경력은 가록적이었다. 그는 1993년, 1994년, 1996년에 전국 골든 글러브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그의 아마추어 기록은 84승 8패였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스에서 페더급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같은 해 프로로 데뷔했다.

14번의 프로 경기후 교도소에서 출소한 아버지가 트레이너가 되었으며 아버지의 훈련 덕분에 그의 기술은 급속히 성장했다.

그는 2년 후인 1998년 제나로 헤르난데스를 물리치고 첫번째 슈퍼 페더급 세계 챔피언에 오르면서 1996년 미국 올림픽 출전 선수 중 처음으로 세계 타이틀을 획득한다.

2015년 필리핀계 매니 파퀴아오 선수와의 세기의 대결에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으며 2016년에는 최장기 무패 기록, 최고의 유료 시청 판매 기록, 백만 달러 상당의 가장 비싼 챔피언 벨트 소유로 3개의 기네스 세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플로이드의 개인 생활은 권투 경력만큼이나 화려했다. 그는 아무와도 결혼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여성을 곁에 두었다. 그는 ‘남자가 가질 수 있는 만큼의 여성을 가져야한다’고 믿고 있다. 그는 Shantel Jackson, Doralie Medina, Josie Harris, Liza Hernandez와 사랑을 나눴으며 2남 2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그랜래피즈에서 태어나 불우한 초년기를 보낸 메이웨더는 지금은 라스 베이거스 계곡에 있는 침실 5개, 욕조 7개가 있는 맨션에서 살고 있으며 ‘메이웨더복싱 클럽’라는 체육관을 소유하고 있다.

mkweek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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