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독자 칼럼 ] “너희와 함께 하는 봄”을 기다리며…

세월호가 드디어 인양된다는 소식에 나는 숨이 가빠졌다. 부디 바다는 더 잔혹하지 않았길 바랬다. 그러나 드러누운 채 밖으로 나온 세월호는 컴컴한 골들과 검붉은 상처들을 덕지덕지 내보이고 있었다. 나의 숨은 더 얕아졌고, 그렇게 육지로 올라온 세월호는 나의 어깨에 상여처럼 턱 얹혔다.

삼년이 지났는데도 풀린 것은 없다. 자식이 갑자기 죽었는데 어미는 아직도 그 억울한 이유를 모른다. 그리하여 낮은 밤이 되고 밤은 그 날의 그 바다가 되어, 일상이 허상인지 허상이 일상인지 알 수 없이 산다. 단단하고 싶은데 몸이 바람 앞 모래알 마냥 풀풀 흩어진다. 아이의 뼛조각 하나라도 다시 품어보고픈 엄마들은 얼굴이 쪼그라들었고 아빠들은 목청이 터졌다. 세월호는 뭍으로 나왔건만 까닭 없이 자식, 형제, 남편, 아비를 잃은 이들은 무한의 고통 속으로 매일 침전한다.

그 아픔을 통감하는 일흔 한 명이 <너희와 함께하는 봄>이라는 표제로 미시간 앤아버에 모여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추모했다. 참사 1097일째였다. 이 긴 시간이 지나도록 풀어진 억울함은 하나도 없으나, 떠난 이들은 한 명도 잊혀지지 않았다. 연대의 반가움에 나지막히 인사를 주고 받는 추모객들 머리 위로 오래 묵은 비통함이 갓처럼 눌러앉아 있었다. 장내는 느리게 출렁였고, 노란 종이배들을 따라 조심스레 들어서는 어른 아이 모두 얼굴이 흐려졌다.

이윽고 추모제를 여는 바이올린 독주에 우리는 집에서부터 지고 온 울음들을 풀어냈다. 연대와 기억이 유가족들을 살아가게 한다는 사회자의 말은 떠는 어깨들을 토닥였다. 그는 미수습자들의 이름을 또렷이 불렀고 모두 함께 묵념을 올렸다. 다큐멘터리 <망각과 기억-교실>이 상영되자 높이 걸린 스크린에서 객석으로 유가족들이 울컥울컥 쏟아져 들어왔다. 아이들의 손 때 어린 교실을 보존하려는 유가족들의 힘든, 그러나 이기지 못한 싸움에 애통함이 파도처럼 퍼졌다. 져주고 양보하라고 강요받는 이들은 왜 늘 피해자들인가. 눈물들이 요란하게 떨어지며 이 날은 “원래 그렇게 우는 날”이 되었다.

도종환 시인의 세월호 추모시 <깊은 슬픔>을 낭송하는 이의 비장한 목소리는 싯구를 압도했다. 마치 우리 일흔 한명이 함께 외치는 듯 묵직하게 울렸다. 마지막 순서는 아이들과 어른들로 이루어진 연주자들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합주였다. 서글픈 단조로 시작한 뒤 장조로 바뀌며 연대와 희망의 극적인 합창으로 이어졌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소리치는 우리의 등은 꼿꼿했고 턱은 단단했다.
우리는 마련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울음이 빠져나가 차가워진 배에 온기를 채워넣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전해주는 애정이란 이렇게 입 속에 먹을 것이 들어오고 몸이 더워지는 그런 것임을 상기시키는 연대의 음식이었다. 사회자는 우리가 한 뜻으로 모인 것에 감사하며 발언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참사가 반복되는 사회에서 여태까지 살아있는 것은 단지 재수가 좋아서라는 생각마저 든다는 의견, 유가족이 수긍하는 진상규명의 날까지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부탁, 부모의 마음으로 끝까지 잊지 말자는 호소 등 다양한 마음들이 공유되었다. 추모제를 치루어도 우리는 여전히 비통했으나, 함께 운 자들만의 포근한 연대감을 나눠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일상스러운 일상이 있어 미안한 우리는 때때로 모여 울고, 다짐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하며 산다.

추모제를 마친 늦은 오후는 봄이 넘실댔다. 관대한 햇살은 온 땅을 덥히고 야들야들한 새 꽃잎은 살랑바람에 진동하고 있었다. 허나, 아이들아. 너희를 떠올리는 곳은 빛도 시간도 없는 바다 속이 되더라. 내가 무엇을 한들 그대들은 돌아올 수 없고, 지켜주지 못한 죄는 봄마다 증폭되어 나는 운다. 너희가 없는, 너희에게는 없는 이 노란 봄에 내 어깨 위 상여 가득 그대들을 휘청휘청 태우고 곧 ‘너희와 함께 하는 봄’을 맞이하길 간곡히 염원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2017년 4월 16일

송민영 / 미시간 세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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