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헨리 포드는 과연 자동차를 발명했는가?

헨리 포드(1864~1947)는 자동차도 대량생산체계도 발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을 완벽하게 개조시키는 능력으로 미국 최고의 갑부 겸 세력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아일랜드 이민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포드는 기계를 다루는데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다.
1890년 그는 디트로이트의 에디슨전기회사에 들어가 그곳에서 처음으로 가솔린 자동차를 만들었다. 자동차 개발의 선두주자는 유럽이었고 미국에서 자동차를 발명한 사람은 매사추세츠의 듀리에 형제였다.
포드는 그들의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간단한 엔진 하나와 바퀴가 달린 상자 갑 모양의 저렴한 자동차를 만들 궁리를 했다. 그리고 1900년 그의 첫 모델 T형 포드를 선보였다. 1년 사이에 그 자동차는 11,000여대가 팔려나갔다.
하지만 포드가 진짜로 원한 것은 대중을 위한 차였다. 포드와 그의 기술자들이 1911년 프레드릭 테일러의 책에 처음 아이디어가 소개된 컨베이어벨트 생산라인을 도입하여 T형 포드의 대량 생상을 시작하자 자동차 업계는 일대 혁명이 불어닥쳤다.
대량생산 체제의 효율성에 힘입어 T형 포드는 1908년의 950 달러에서 300달러 아래로 가격이 떨어졌다. 1914년이 되자 T형 포드는 24초당 한 대씩을 내놓으며 24만 8천대를 생산했고 그것은 전체 자동차 생산 대수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막대한 돈을 벌게 된 포도는 노동자들에게 통상 임금의 두 배에 해당하는 일당 5달러를 지불하여 신문의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미국인들은 첫눈에 그 자동차에 흠뻑 빠져들었다. T형포드는 미국인의 생활에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 1916년 의회가 고속도로기금법을 제정하자 미국은 대규모 도로 건설시대로 접어들었고 뻥뚤린 도로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은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이 되었다. 자동차 산업은 호경기 불경기에 관계없이 단기간 내에 미국 경제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전국의 도로변에는 주유소, 식당, 모텔 등의 신종 서비스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시골 통나무집은 이제 더 이상 벤더필드나 모건가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자동차는 노동자 계층과 중산층에 일종의 성취감을 부여해줬다. 1920년대의 미국 사회가 생겨난 배경에는 자동차로 야기된 새로운 자유와 자동차 관련 업종이 만들어준 경제적 풍요가 자리하고 있었다.
헨리 포드는 사회 개선이라든가 역사의 진보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보수적이었던 그는 노동자들도 강압적으로 다루었다. 포드사 노동자가 경쟁사의 자동차를 타고 있다가 발각되면 그대로 해고였다. 공장의 규율은 깡패식으로 잡아나갔고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에는 파업 분쇄 폭력단으로 맞섰다.
포드사에서는 1941년까지도 노동조합이 결성되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믿을 만하지 않고 어리석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포드는 대공황 시절엔 나라가 경제 위기에 빠진 책임을 노동자들의 게으름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이런 보수성은 정치적 신념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고립주의 외교를 지지하면서도 양차 대전 군수 물자 생산으로 한몫 챙겼는가하면 노골적인 반유태주의자이기도 했다. 반유태주의자임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인디펜던트(independent)> 신문사를 매입하여 반유태주의 대변지로 만들었다.
헨피 포드는 1947년 사망했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도 여전히 자수성가형 부자로 미국적 신화를 이룩한 미국 국민의 영웅이었다.
*출처: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케네스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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