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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부터 ‘시끌’ 화해치유재단…무엇이 문제였나

화해치유재단 사실상 해체 이끌어낸 文, “지혜롭게 매듭짓자”

지난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일 양국 정부 간의 합의를 타결했다. 이를 통해 한일 양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으로, 불가역적으로 종결되었음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합의 직후부터 내용부터 시작해 과정의 이면 합의 논란과 위안부 피해자 배제 논란, 일본의 진정성 문제 등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피해자의 동의 없이 정부 측에서 일방적으로 이뤄진 합의는 그저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에 불과했다.


위안부 피해자 반영되지 않은 합의…‘두 번 죽이는 일’
文 “화해치유재단 정상기능 못해 고사할 수밖에 없다”
김복동 할머니 “재단 해체, 뭐라 말할 수 없이 좋다”
한국당 “한일관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해야할 문제”

▲ 지난 9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국민의 반대로 화해치유재단이 정상적 기능을 못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혜롭게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청와대>

“나는 일본군의 만행으로 꿈이 짓밟힌 수많은 소녀들을 대신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는 그 소녀들이 겪었던 고통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일본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는 없었습니다. ‘I am sorry’ 그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후세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인정하고 사과하시오. 그리고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꼭 기억해 주세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한 장면이다. 미국 하원 청문회의 연설 자리에 선 옥분(나문희)은 영어로 각국의 의원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밝히고 사과를 요구했다. 다소 어수룩하지만 그의 주장은 당당했다. 

지난 9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국민의 반대로 화해치유재단이 정상적 기능을 못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혜롭게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위안부 협상 결과로 만들어졌으나 이사진 대부분이 사퇴하는 등 기능을 상실한 화해치유재단을 사실상 해산시키겠다는 말이었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만행 앞에서 피해자 입장이다. 하지만 옥분의 당당한 연설과 사과요구처럼 우리 정부도 일본 정부에게 있어서 우리가 받은 피해에 대한 사과를 당당히 요구해야한다. 이러한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행하고 있는 화해치유재단 ‘사실상 해산’ 통보는 일본에게 간접적으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라 봐야한다. 

▲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다. <사진출처=다음영화>

 

화해치유재단  

화해·치유재단은 지난 2015년 12월28일 박근혜 정부가 주도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한·일 정부 간 합의’(12·28 합의)의 뼈대 가운데 하나다. 양국의 관계를 개선하라는 미국의 압력 속에, 한·일 수교 50주년이었던 2015년 안에 위안부 문제를 정리하려고 했던 박근혜 정부의 결정이었다. 

이 때 양국은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양국 정부가 협력해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한 예산으로 일본 정부는 ‘10억엔 정도’를 상정했고 합의에 따라 ‘재단’과 ‘10억엔’은 한·일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확인하는 근거가 됐다. 

피해 당사자와 지원 단체들의 반발은 거셌다. 일본 정부는 10억엔이 ‘법적 배상금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외무상을 통해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했지만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재단은 지난 2016년 7월28일 출범을 강행합니다. 이사장은 김태현 성신여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화해·치유재단’이다. 

재단은 만들어질 때부터 잡음이 많았다. 설립 당시, 재단의 이사진은 노인·여성복지 분야 전문가, 일본 전문가와 법조계 인사 등으로 꾸려졌는데, 정작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힘쓴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해 8월 말 일본 정부는 재단에 10억엔(108억원)을 송금했다. 재단은 이 돈으로 생존자(2015년 12월28일 기준) 46명 가운데 34명과 사망자 유족 58명에게 각각 1억원과 2000만원씩을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재단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 모르게 위로금 지급을 강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한 단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득 할머니가 모르는 상황에서 1억 원이 지급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 할머니는 위로금 지급 사실도 몰랐고 통장을 본 적도 없다고 밝혔고, “돈을 돌려주라”는 할머니의 녹취록도 공개됐다. 하지만 재단 측은 이 같은 의혹을 부정하며 “일본 정부가 사죄와 반성의 의미로 전달한 현금에 대해 할머니와 가족들에게 정중하게 설명하고 수용 의사를 물어 그 결정에 따랐다”고 해명했다. 

또다른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는 “위로금을 받고 우리를 팔아먹은 것”이라며, 피해자 11명과 함께 한국 정부를 상대로 각 1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도 했다. 

화해·치유재단이 일본 정부의 출연금을 일부 피해자들에게 나눠준 뒤에도 재단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지난 2017년 2월에는 재단 측이 일본의 출연금 중 5억 원 정도를 재단 운영비로 사용하겠다는 문건이 공개됐다. 2016년에는 정부가 화해·치유재단 운영비 명목으로 1억5천만 원을 지급했는데, 민간재단인 화해·치유재단에 정부 예산을 지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따라 관련 예산을 삭감했기 때문이다. 

재단 측은 “일본 출연금은 온전히 피해자 분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정부의 예산삭감 등 현 상황을 고려해 최소한의 행정비용을 일본 출연금에서 사용한다”라고 설명했지만, 비난은 거세졌다. 당시 문건을 공개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박근혜 정부는 지금까지 일본 출연금 전액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사용할 것처럼 선전해왔다”며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일부를 재단 운영비 명목으로 유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게다가 화해·치유재단은 일본 정부의 출연금을 일부 피해자들에게 나눠준 뒤, 지금까지도 인건비 등 재단 운영비로 매달 약 2천 8백만 원을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 존속을 위해 일본 측의 출연금을 사용한데다가, 특별한 활동 내역이 없는 상황에서도 매달 수천만 원을 사용해온 것이다. 

무너지는 재단

지난해 6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검증할 TF가 꾸려지면서, 화해·치유재단은 내부적으로도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합의 당시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관련 단체를 설득하고, 해외 ‘소녀상’ 건립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내용 등을 담은 ‘이면 합의’를 했던 것이 밝혀지면서 재단 이사진이 줄지어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말한 “(재단이)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지난해 말 이사진 11명 가운데 5명이 사의를 밝히면서 벌어졌다. 김 이사장과 2명의 이사진은 그보다 몇개월 앞서 사임했다. 관상 당연직 이사인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과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 재단 사무처장만 남은 상황에서 재단 사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재단은 9개월째 간판만 달고 있는 상태에서 사무실 운영과 인건비 등으로 매달 2750만원씩을 지출했다.

현재는 이사 11명 중 8명이 물러난 상황으로, 이사회 정관상 법인 해산 결정에 필요한 최소 인원 5명에도 못 미쳐 재단 존폐를 스스로 결정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가 나서면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3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미르재단에 대한 설립허가를 직권 취소했는데, 당시 미르재단의 이사들도 모두 사임한 상태였고 임시 이사회도 비협조적인 상황이었다. 

이처럼 재단을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부가 재단 해산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었다.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면 일본 측이 이를 한·일 합의 파기 수순으로 받아들여 강력 반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논란은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7월 1일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분이었던 김복득 할머니가 별세하면서 남은 생존자는 27명만 남게 됐다. 점점 할머니들에게 남은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9월 26일(현지시간)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과 만나 회담을 진행했다. <사진제공= 외교부>

정부의 역할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7월 ‘일본정부 출연금 10억엔 충당’ 명목으로 103억원의 예산을 편성합니다.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엔을 전액 대체할 수 있는 규모였다. “재협상은 없다”고 밝힌 정부가 사실상 12·28 합의 무력화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 설치 등 후속 조처를 잇달아 내놓는다. 아울러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전시 여성 성폭력의 문제, 인류 보편적 여성 인권의 문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일본과 직접 마찰하는 대신 국제무대에서 ‘우회 타격’을 지속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일본 외교 노선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 쪽에서는 ‘뒤늦은 추석선물’이라며 환영했다.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분인 김복동 할머니는 지난 9월 28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화해치유재단 해산 시사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분 좋다. 우리는 이미 해체됐다고 생각한다”며 “해체됐으니까 우리는 이제 우리대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직까지 일본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식민지 시대 때의 근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확실하게 잘못했다 소리가 안 나오는 것”이라며 “그러나 10년이 가든 100년이 가든 우리들이 죽고 나면 또 후세들이 싸울 거고 끝까지 밝히고 말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한국당은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며 여야 5당 중 유일하게 신중론을 냈다.

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지난 9월 26일 논평을 통해 “그동안 많은 논란이 제기되어 왔으나 한일양국 간에 합의로 설립된 재단의 해산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한일 관계의 미래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며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한미, 한일관계 등을 감안할 때 대국적인 견지에서 한일관계를 형성해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화해·치유재단이 해산될 경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지원 공백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도 정부 차원에서 충분히 검토해서 차질이 없도록 면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보수 언론에서도 같은 입장을 냈다. 이들은 한일 관계에 갈등이 생길 것을 우려하며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야한다고 밝혔다. 북핵 대처에 있어 한미일 공조를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피해자 할머니들 모두 우리나라 할머니들이다. 너희 할머니가 그랬으면 이런 기사를 쓰겠냐”며 맹비난했다.

주간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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