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 Special

세월호 미시간 추모회> “천개의 바람이 되어”

미주 50개주에서 동시에 열려,
미시간 대학 캠퍼스에서 100여명 모여 추모식 거행

[앤아버=김영신] 어디선가 천개의 바람이 불어오는 듯 했다. 앤아버 U of M 센트럴 캠퍼스 벨타워 앞. 지난 5월 18일 일요일 오후 2시. 가로 48인치 세로 36인치 하드 보드로 제작된 대형 세월호 모형이 나 뒹굴고,
벨타워 돌벽에 단단히 붙여 놓은 세월호 추모회 배너의 한 귀퉁이 자주색 덕테잎이 떨어졌다. 프로젝터를 쏠 흰 대형 스크린이 바람에 맥없이 자빠지고, 오열하는 유가족들의 천연색 사진첩도 바람에 쓰러져 다시 일으켜 세워야만 했다.

미시간에 사는 생면 부지의 네명의 엄마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열흘간 준비를 시작한 <세월호 희생자 추모회>. 하지만 매일 자원봉사자가 늘어나 추모회날까지는 20명의 자원봉사자가 함께 했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잊지 않기 위해 마련한 추모회가 있던 오후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하늘은 그림물감을 풀어 놓은 듯 맑고 푸르렀다. 하지만 어디선가 유난히 바람이 불어 왔다.
가슴을 비집고 들어 오듯이…

오후 2시가 지나자 검은 수트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기 시작했다. 앤아버와 트로이, 로체스터 힐 등 미시간 각지에서. 검은 선글래스를 쓴 어머니와 아버지, 파랑 스트롤러를 탄 개구쟁이 아들과 엄마 팔에 안긴 젖냄새 풍기는 아기도 있었다. 내리 쪼이는 강한 햇살에 눈이 부신 아이들은 미간을 찌푸려 멀리서 보면 인상을 쓴듯이 비쳤다.

U of M에 다니는 자녀의 졸업식에 왔다가 추모회에 참석했다는 부모님도 함께 했다. 추모회 내내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엄숙한 표정의 외국인 부부도 눈에 뜨였다. 참석자의 가슴에 노랑 리본을 달아주고, 추모회 순서지와 합창할 노래 악보를 나눠 주는 자원봉사자들, 자원 봉사 사회자와 통시통역사가 함께 묵념으로 추모회 시작을 알렸다. “이번 사고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최고의 참사로 기록되고 있으며, 또한 침몰하는 세월호를 미련없이 버리고 도망간 선장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절망과, 한 생명이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목숨을 기꺼이 희생한 세월호의 아르바이트 직원과 교사, 학생등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희망이 공존한 참사이기도 하다”고 세월호 개요가 소개됐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나부끼는 희생자들을 가까이 만나는 듯 했다. 세월호 참사와 유가족들께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시간에는. 1백여명에 가까운 참석자들은 비록 한번도 만난 적 없지만 단원고의 꽃다운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살신성인의 승무원들과 유가족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고 한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17년전 안타깝게 동생을 잃은 아픔을 갖고 추모회를 준비한 추모회 리더 Y씨는 “세월호 사고는 분명 잘못된 참사이며 사고의 확실한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유가족들과 함께 하겠다”고 전했다. 또한 “일부 언론에서 유가족의 아픔에 동참하기 위해 어머니들이 자진하여 마련한 추모회를 종북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무런 근거 없는 어이없는 처사” 라고 강조했다.

17살과 15살 두 아들을 데리고 추모회에 참석한 K씨는 “세월호 사고가 터진 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며 “아이들이 필드 트립을 떠나도 염려되는 것이 엄마의 심정인데, 세월호 부모님들은 앞으로 어떻게 사실까 상상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 세월호 사고 이전에는 한국 실정에 큰 관심을 갖지 않은 주부였는데, 너무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터져 그 이후 세월호 관련 자료들을 상세히 찾아 보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진실이 가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세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추모회에 참석했다는 L씨는 “내 자식을 잃은 것 같은 슬픔으로 이 자리에 왔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에, 언론의 허위보도가 이 사건을 최악의 참사로 키우는데 일조를 한 것 같다.그리고 돈이면 무엇이든 통하는 한국사회의 특권층에 의해 국민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형제와 조카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안전한 곳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S씨가 “지켜주지 못한 못난 어른이라 미안하다”고 떨리는 목소리를 전할 때, 참석자들은 숙연하게 고개를 떨군채 흘러 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한마리의 새가 노래하듯 애잔한 플룻 소리가 들려왔다. 하이스쿨 9학년에 재학중인 G양이 들려주는 ‘거위의 꿈’. 추모 연주는 K씨와 두 아들 가족의 현악 3중주 ‘엄마의 바다’와 ‘내 영혼 바람되어’로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이 멜로디가 천국의 희생자들에게 도달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H씨의 기타 반주에 맞춰 부르는 합창 ‘노랑리본’과 ‘친구여’도 천국 하늘까지 멀리멀리 울려 퍼지기를 소원했다.

사회자의 선창과 함께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께 바치는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를 참석자들은 함께 큰소리로 외치며 1시간여의 추모회 공식 순서를 마쳤다.
자유 시간에는 다양한 순서가 마련됐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참석한 어린 아이들이 비로소 분주해졌다.

하트 모양 포스트잇에 메모 써서 붙이기, 노랑리본에 글씨 써서 메달기, 노랑 컴퓨터 용지에 하고싶은 이야기 적기등이다. 노랑 리본에는 “I am sorry”의 문장이 자주 눈에 띠었고 “최후의 1인까지 구하라”는 단호한 노랑 종이 메시지도 있었다. 설문조사 “누가 세월호 사고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가? 정부, 청해진, 언론, 우리들”들 중에 노랑 스티커 붙이기에는 정부에 가장 많은 스티커가 붙었으며 ,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사고시 단지 내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관할 수 있는가” 네, 아니오 대답에는 노랑스티커가 아니오에 모두 붙었다. 유가족들의 염원인 세월호 특별법 사인 숫자도 차곡차곡 늘어갔다. 또한 지난 한달 간의 세월호 사고 관련 사진과 포스터들이 참석자들의 눈길을 붙들었고 세월호 사건 관련 시사 만평들도 전시됐다.

또한 참석자들의 발걸음이 한동안 떠날 줄 모른 대형 보드가 있는데 , 세월호 모형과 같은 사이즈로 제작된 세월호 사고 일지 < The Critical Two Hours>이다. 사고 당일인 4월 16일 몇몇 승객이 배의 기움을 감지한 시간인 오전 7시 46분부터 세월호가 완전히 전복되는 10시 30분 경까지 구조의 골든타임을 어떻게 허비하였는지를 설명과 도표로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탑승객과 세월호 주인및 승무원들, 해경등 세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각각 1분 간격으로 절박하게 설명되어진 <The Critical Two Hours>의 타임라인에는 학생들이 세월호에서 마지막으로 찍어 부모에게 전송한 순간의 사진들도 함께 전시돼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제 미시간 교민들이 유가족들께 보내는 마지막 순서만을 남겨 놓고 있다. 가로 4미터 가량 세로 60센티미터의 블랙 보드에 유가족에게 보낼 편지를 적은 작은 노랑 종이배를 다닥붙여 글씨를 만드는 것이다. ” FROM MICHGAN USA”라고. 양면테이프를 철자 모양대로 블랙 보드에 먼저 붙인 후 노랑 종이배들을 붙이니 아름다운 노랑배 < FROM MICHIGAN USA> 가 완성되었다. 그것을 참석자들이 두손으로 활짝 펴든채 가슴위로 들고 기념촬영을 마침으로 2시간에 걸친 추모회는 모두 막을 내렸다.

사고 발생 35일째인 오늘 희생자 유가족은 물론 안산시 주민과 학생, 전국 각지의 중고등학생, 대학생을 비롯해 선생님, 교수, 각 종교단체, 시민단체는 물론 엄마와 아버지들까지 거리로 나와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한 목소리를 합치고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의 50개주와 베를린에서까지.

세월호 참사는 분명한 인재이고 그 원인을 찾아 바로잡지 않으면 똑같은 사고가 되풀이 될 것이 명약관화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니 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남북 분단이라는 안타까운 정치적 현실 때문에 종북운운에 유가족의 아픔에 함께 울어주는 것에도, 당연히 알아야 할 사고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말하는 것에도 눈치를 보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세월호 사고 발생 34일째인 어제 여성 추정 시신 1구 발견, 실종자 17명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오늘도 짜디짠 바닷 바람 부는 팽목항 선착장에는 가족의 시신이라도 찾아 양지바른 곳에 묻는 것이 소원이라는 가족의 기다림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이미 시신의 성별조차 구별하기 어렵다고 한다.
“윤이나 선생님 보고싶다. 주희야 집에 가자…꺼내만 달라구요. 안아보게만 해줘요. 보고싶어요.”
아직도 이런 가족 17명이 남겨진 푸른 담요를 두른채 팽목항에 남아 있다.

이들은 우리에게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어찌하여 이런 질기고 모진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지난 4월 28일부터 23일째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광화문에 사거리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오지숙(39)씨는 자신의 1인 시위에 대해 “시위를 시작할 무렵, 유가족들이 정치적 선동꾼이라는 얘기가 한창 돌았다. 매스컴을 보면서 억장이 무너졌다. 그분들은 자식을 잃었다. 자식이 다친 것도 아니고 죽었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 의도에서 이러느냐’는 식으로 말할 수 있나. 너무나 속상하고 화가 났다.

나도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내가 분명히 피해자인데 어느 순간 가해자가 된 상황이었다. 너무 아픈 일을 당했는데, 사람들이 “그거 네 잘못이잖아. 네가 부족해서 그런 거잖아”라고 얘기할 때다. 진실이 낱낱이 드러나, 부모들 잘못이 아니라는 게 밝혀져야 한다. 그게 진짜 위로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미시간에서도 네 사람의 엄마가 오지숙씨와 같은 마음으로 모였고, 추모회를 준비했다. 하지만 추모회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네 사람의 시작이 이제는 20명이 넘는 엄마와 아버지들이 한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

” 제가 안타깝게 생각 하는것은 지금 우리 고국의 현실은 그 누가 기득권을 잡아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그 가족들은 저희가 힘이 돼드려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한 차례의 추모회로 끝나지 않고 마지막 1명을 찾을때까지 힘이 되어 드릴 겁니다.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Y씨의 다짐섞인 말이다.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개의 바람, 천개의 바람이 되었죠. 밤에는 어둠 속에 별이 되어 당신을 지켜 줄께요.” (노래 ‘천개의 바람’ 중에서) 천사의 날개를 단 천개의 바람들은 오늘 미시간에 날아와 주지 않을까? 그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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