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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았던 소시민 위한 정치인생 ‘노회찬’ - “진보정치의 아이콘, 정치역정 막 내리다”
  • 기사등록 2018-07-30 11: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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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자유주의·사회주의라는 이념으로 갈라지며 반 세기 넘는 세월동안 이념갈등을 벌여온 한반도에서는 서로의 체제에 대한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는 세월을 보내왔다. 북한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에 경우, 군사독재시절 강력한 ‘반공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사회주의를 ‘비판적으로 공부하는 것’조차 허용치 않았다. 이를 어긴 국민은 ‘가혹한 처벌’을 받았고, 이에 우리사회는 ‘평등’을 주요가치로 하는 사회주의 도입을 원하는 ‘진보’가 발을 붙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진보세력의 꾸준한 활동으로 인해 어느정도 뿌리를 내려왔고, 최근에는 ‘진보 정당’인 정의당이 지지율 10%를 넘는 지지율을 달성하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기쁨도 잠시, 진보 정치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노회찬 정의당 국회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악재가 발생했다.


▲ 노회찬 의원의 빈소. <김상문 기자>
촌철살인 어록 다수 남긴 노회찬…사랑받아온 ‘스타 정치인’ 
30년간 우리나라 진보정당 운동을 직접 일군 역사의 산증인 
드루킹 불법 정치자금 혐의 직격…압박감에 자살 선택한 듯 
특검 수사는 타격…드루킹 측에 협박당한 것 수사 시작하나 

정의당 원내대표이자 대한민국 진보정치의 아이콘 노회찬(62)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졌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오전 9시38분쯤 노회찬 의원이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현관에서 쓰러져 숨진 채로 발견됐다”며 “이 아파트 17~18층에서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노 의원은 ‘드루킹’ 김동원(48)씨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 등으로 특검의 수사를 받아왔다.

 

스스로 목숨 끊어 


노회찬 의원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날 병문안을 다녀오는 등 모친 병환에 대해 근심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에 따르면 노 원내대표는 전날 3박5일 미국 방문을 마친 직후 모친이 입원 중인 서울 강남의 한 종합병원을 찾았다. 


유족 측 관계자는 “어머니가 아프셔서 미국 가기 전에도 다녀오신 걸로 안다”며 “요즘 (노 원내대표가) 신경 쓸 것도 많아 경황이 없겠다 싶었는데 병원도 갔다”고 전했다. 


노 원내대표가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시점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드루킹 사건에 휘말리는 와중에도 치매 증상을 앓고 있는 모친을 자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빠도 2주에 한 번은 찾았고, 연락하면 바빠도 오셨다”고 유족은 전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심경을 자주 토로하진 않았지만 모친의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데 대해 상심이 컸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최근 드루킹 사건과 관련된 소환설이 흘러나오는 데다 모친의 병환마저 나아지지 않자 미국 출장길에서도 표정이 밝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나마 5당 원내대표단과 미국 방문일정을 마무리하며 가진 술자리에서 용접공 면허 취득 등 과거 추억을 회상하면서 다소 웃음을 보였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노 원내대표의 갑작스런 소식에 당혹감을 보이고 있다. 한 측근은 “머릿속이 하얗다”며 “전혀 그럴분이 아닌데, 판단력이 냉철하신 분인데, 이해할 수 없고 전혀 납득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유족 측은 “(투신)소식을 뉴스를 보고 알았다”며 “(투신 전) 의미심장한 말은 없었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노 원내대표는 투신 전 아파트의 17층~18층 사이에 외투와, 지갑 및 신분증, 정의당 명함, 유서 등을 남겼다. 

 

극심했던 압박감 


이처럼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노회찬 의원에게 제기된 의혹은 2016년 경찰과 검찰 수사를 거쳐 한 차례 무혐의로 결론난 바 있다. 하지만 특검은 당시 김씨 측이 무혐의 처분을 받는 과정에서 조작된 증거를 경찰에 제출한 정황을 확보하고 재수사를 벌여왔다. 


그간 특검은 노 원내대표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드루킹 측이 ‘특정 정치인’에게 불법자금을 건넨 혐의를 입증할 진술과 물증을 다수 확보했다”며 노 원내대표에 대한 소환조사 방침을 분명히 했다. 노 원내대표는 특검 수사 이후 “어떤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은 적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하며 특검 수사에 당당히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특검 수사에 속도가 붙으면서 노 원내대표의 부담감도 커져간 듯하다.


노 원내대표를 향한 수사는 지난 7월17일 경공모 핵심 회원인 도모 변호사(61)를 긴급체포하면서 본격화했다. 도 변호사는 노 원내대표와 경기고 동창이다. 특검은 도 변호사가 김씨와 공모해 노 원내대표와 경공모 간 만남을 주선하고, 노 원내대표에게 경공모 자금을 건네는 데 관여한 정황 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특검은 도 변호사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증거위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은 긴급체포 후 도 변호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지난 7월19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특검은 2016년 3월 ‘산채’라 불린 경기 파주시 느릅나무출판사 사무실에서 김씨 측이 노 원내대표에게 2000만원을 건넨 정황을 확보했다. 1주일 뒤에는 김씨 측이 노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경남 창원시에서 노 원내대표 부인의 운전기사를 통해 3000만원을 전달했다는 진술 등도 확보했다.


특검은 김씨 일당이 2014년에도 노 원내대표에게 강연료 등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건넸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6년 불법자금 수수 과정에 가족이 관여한 의혹이 불거지고, 추가 수수 의혹까지 나오면서 노 원내대표는 심리적 압박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노 원내대표가 지난 7월23일 남긴 유서에는 당시 받은 돈 액수와 과정, 심경이 나와 있다. 그는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000만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고 썼다.  


유서 나머지 부분을 보면 노 원내대표는 이 돈을 후원 처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괴로워한 듯하다. 그는 유서에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고 썼다.

 

▲ 정의당 원내대표로서 국회에서 활약해온 노회찬 의원. <김상문 기자>

 

진보정치 산증인 


이처럼 숨진 노회찬 의원은 30년간 우리나라 진보정당 운동을 직접 일궈온 산증인이자 상징적 인물이다. 날카로운 한마디로 복잡한 정국을 정리하며 촌철살인 어록을 남긴 그는 대중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스타’ 정치인이기도 했다. 
학생운동에서 노동운동, 진보정당 운동으로 이어지는 이력의 시작은 17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정권이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한 이듬해 경기고에 입학한 그는 비판 유인물을 제작해 학교에 배포했다. 고2 때인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시위 때는 교실 문을 잠그고 수업 거부를 주도했다.  


그는 1979년 고려대 입학 후 조직화된 노동자가 앞장서야 근본적인 변혁이 가능하다는 판단하에,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고려대학교 재학 중인 1982년 영등포 청소년 직업학교(현 서울산업정보학교)에서 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 등을 따고 용접공으로 현장 노동자들 틈으로 섞여들어가, 이른바 ‘학출’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지난 1987년 이후 노동자들의 정치 세력화를 꾸준히 꾀했던 노 의원은 1989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결성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이후 권영길 전 국회의원의 대선을 지원하는 것으로 본격 제도권 정치에 입문했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노 의원은 거의 무명에 가까운 인사였다. 하지만 각종 토론에서 특유의 ‘촌철살인 입담’을 과시하며 대중적 정치인으로 발돋움 했다. 상대방의 허점을 찌르고, 쉬운 언어로 자신의 주장을 풀어내는 그의 발언들은 ‘노회찬 어록’으로 인터넷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지난 2010년엔 서울시장 선거에 진보신당 후보로도 출마했지만 낙선했으며 2012년 서울 노원병에서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재선에, 2016년 20대 총선에선 창원 성산에서 정의당 소속으로 3선에 성공했다. 창원 성산은 제조업체들이 밀집한 노동운동의 핵심 지역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진보진영에서 3선 고지를 달성한 의원은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와 그가 유일하다. 


그는 2013년 ‘삼성X파일 사건’과 관련한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하기도 했는데, 그의 투쟁가적 면모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라는 평이 대체적이다. 그는 당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잃었다. 


이같은 역경의 인생을 살아온 노회찬 의원은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촌철살인의 화법으로 뭇 대중들의 지지를 얻는 인기 정치인으로도 유명했다. 


대표적으로 국회 입성 뒤 발언에서 “3급수, 4급수 있는 정당에 산천어, 열목어 넣으면 그 물고기는 못 살고 죽습니다”라며 부패한 정치권을 비판했다.  


‘국가 경제를 위해 장시간 공로한 점’을 들어 죄를 지은 재벌 총수의 사면 또는 감형을 주장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직장생활 30년 하다 감옥에 들어간 사람이 국가 경제를 위해 장시간 노동자로 일했기 때문에 감형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며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또 “암소갈비 뜯는 사람들이 불고기 먹으면 옆에서 굶던 사람이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다”며 재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2016년 탄핵정국 때 국회 본회의 긴급현안질의에서는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를 상대로 일명 ‘사이다’ 발언을 한 것이 대표적 예다. 당시 노 의원은 “대한민국에 실세총리가 있었다면 최순실이다”라고 황교안 총리에게 일갈을 날렸다. 그러자 황교안 총리는 “그렇게 속단할 일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노 의원은 “속단이 아니라 뒤늦게 깨달았다 이건 지(遲)단이다”고 맞받아치며 황교안 총리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또 문재인 정부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반대하고 나서자 그는 “정확한 얘기죠. 아니, 동네파출소가 생긴다고 하니까 그 동네 폭력배들이 싫어하는 것과 똑같은 거죠.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해 발군의 토론실력을 보여줬다. 탄핵정국 당시 노 의원은 JTBC ‘밤샘토론’에 출연해 상대 패널로 박근혜 대통령 하야 반대를 외쳤던 양동안 명예교수와 설전을 벌였다. 양 명예교수가 “박근혜 대통령이 불의를 저질렀다는 걸 확실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불의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아직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박 전 대통령을 두둔했다.


이에 노회찬 의원은 “대통령이 잘못한 게 확인이 안되는데 왜 시민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학생이 학업을 내려놓고 광화문에 모이는가”라고 반문했다. 노회찬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한 게 왜 없나. 뭐가 미확인인가. 대통령이 미확인비행물체(UFO)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또 지난 1월 방송한 JTBC ‘신년토론회’에서는 김성태 의원과 적폐청산과 관련해 설전을 벌이던 중 “정권을 지지하는 희한한 야당이 다 있다”고 김성태 원내대표가 발언하자 노 대표는 “그러니까 탄핵 당했지 이 사람아”라고 말해 좌중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그는 이러한 토론실력과 촌철살인의 화법을 바탕으로 JTBC정치 시사 프로그램 썰전에 유시민 작가의 후임으로 발탁됐다. 이런 그의 어록은 ‘진보정치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드루킹 게이트에 얽혀버린 노회찬 의원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된다. 이처럼 주요 고비마다 촌철살인의 화법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던 대중정치인 노회찬의 인생역정은 62년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 노회찬 의원의 빈소. <김상문 기자>

 

협박 혐의 조사 


한편, 수사 대상자가 숨지면서 60일간의 수사기간 중 반환점을 앞둔 특검의 정치권 수사는 차질을 빚을 듯하다. 특검은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 허 특검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어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일단 특검팀은 노회찬 의원이 정치 후원금을 받은 것을 매개로 드루킹 측에게 발목을 잡힌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드루킹이 노 원내대표에게 후원금을 건넨 뒤 경공모의 청탁을 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등 사실상 협박했다는 의혹이다. 


이에 특검팀은 앞서 확보한 경공모 회원들의 통신내역을 먼저 살펴볼 것으로 전해진다. 경공모와 노 원내대표 측 사이에서 어느 정도 연락이 오갔고,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겠다는 취지다.


특검팀은 앞선 경찰·검찰 수사로 확보한 증거 외에도 필요하면 추가 증거도 확보할 예정이다. 노 원내대표 측에 대한 통신 내역 등을 추가 확인함으로써 경공모와의 연관성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계획이다.


물적 증거 외에도 특검팀은 경공모 회원들을 소환 조사하는 등 인적 증거도 확보해나갈 방침이다. 경공모 회원들로부터 노 원내대표와 드루킹 사이의 관계 및 돈이 건네진 구체적인 경위와 전후 맥락을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드루킹의 최측근이자 노 원내대표와는 고등학교 동창 사이인 도 변호사에 대한 조사가 집중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도 변호사는 노 원내대표에게 드루킹을 소개해준 인물로 지목됐다.


애초 특검팀은 전날 도 변호사를 석방 이후 처음으로 불러 조사하려 했으나 노 원내대표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일정을 취소했다. 다만 특검팀이 후원금 협박 의혹을 샅샅이 확인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만큼 향후 도 변호사에 대한 수차례의 소환조사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검 관계자는 “노 원내대표나 가족, 보좌진 등에게 소환통보 등 연락을 전혀 취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특검이 노 원내대표 관련 수사를 중단하기로 한 것은 아니다. 특검은 예정된 수사를 계속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25일로 예정됐던 김씨 일당 4명에 대한 1심 선고는 법원이 검찰 요청을 받아들여 변론을 재개하기로 하면서 미뤄졌다. 이에 따라 김씨 등은 구속상태로 계속 특검 수사를 받게 됐다.


특검이 지난 7월20일 ‘킹크랩’ 2차 버전을 이용해 지난 2월21일부터 한 달간 네이버 아이디 2196개로 기사 5533개의 댓글 22만1729개의 공감·비공감 수 1131만116회를 조작한 혐의로 김씨 등을 추가 기소한 사건은 검찰이 기소한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단독 재판부가 아닌 같은 법원 합의부에 배당됐다.



출처: 사건의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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