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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장애인 US 오픈 골프 챔피언 조인찬 - [주간미시간이 만난 사람] 조인찬 - 골프는 일생을 통한 여정이다
  • 기사등록 2015-08-26 21:52:18
  • 수정 2015-08-27 21: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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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시각 장애인으로 국제대회 4회 우승을 차지한 조인찬씨(63. 볼빅)

[이스트랜싱=주간미시간] 김택용 기자 = 골프를 정의하는 말 중에 Golf is a journey of a lifetime(골프는 일생을 통한 여정이다)이란 말이 있다. 진정한 골프의 의미를 즐기며 골프를 친구 삼아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런 말은 그대로 입증하는 주인공이 있다.

지난 8월 15일부터 나흘 동안 조지아 주 마리애타에서 열린 US Blind Open Golf 대회에서 B2(부분 맹인) 네트 챔피언을 차지한 조인찬(63, 볼빅)씨가 그 주인공이다. 조인찬씨는 유부철 전 앤아버 한인회장의 매형이다. 미국에 온 김에 몸이 불편한 장모님을 뵙기 위해 미시간에 잠시 들린 조인찬씨를 20일 이스트 랜싱에서 만났다.  

조인찬 씨는 고압가스 제조업을 하던 비지니스 맨이었다. 88년 미국 출장 중에 사물이 휘어져 보이는 증상이 갑자기 나타나 검진을 받아보니 황반변성이었다. 중심성 망막염이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사물의 가운데 부분이 안보이고 주변만 보이는 증상이다. 오른쪽 눈에 이상이 왔지만 곧 왼쪽 눈으로 적응할 수 있어서 좌절의 시간은 짧았다. 하지만 2000년 왼쪽 눈마저 같은 병을 앓게 되었을 때는 너무나 힘들었다. 우울증에 빠져 6개월 동안 컴컴한 방안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이대로 끝을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인기척이 드문 새벽을 골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하염없이 걸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걸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정처 없이 걷는 것이었지만 죽는 것 보다 나았다. 한번은 다리를 건너다 고속도로로 뛰어 내릴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나 때문에 운전자까지 피해를 입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걷는 게 일이었다. 걷다보니 체력이 회복되었고 체력이 회복되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 장애인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연히 제물포에 있는 복지관을 찾았다. 그곳엔 앞을 전혀 못 보는 사람들이 많아 어떤 일이건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들을 도우면서 그가 장애인이란 걸 잊을 수 있었다. 그는 남을 도우면서 비로소 100%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복지관에서 천 원씩 내고 점심을 사먹던 그는 점심 티켓을 공짜로 주는 공인 중개사 준비반에 들어간다. 처음엔 점심값을 아끼자는 마음으로 들어갔지만 2달 만에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면서 그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복지관 출신이 합격하면 복지관에서 가르쳐야 했기 때문에 그는 더욱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노력을 통해 그는 "나도 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는 사업할 때 술로 접대하는 것 보다 골프로 하는 것이 났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비용도 적게 들었다. 친구도 많았고 그를 따르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장애인이 되고 나니 모두 다 떠났다. 아무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복지관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그는 그 친구들을 통해 더욱 값진 인생을 만났다고 고백한다. 

그는 위만 쳐다보면 너무 힘들다. 때론 아래를 보면서 위안을 얻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복지관에서 주변시력이 남아있는 자신보다 더 힘든 전맹의 친구들을 도우면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행복이 찾아왔던 것이다. 눈이 정상이었을 때 할 수 있었던 만 가지 일보다 장애인이 되어 할 수 있는 100가지 일이 더 소중한 것은 첫째 100가지나 되는 일을 아직도 할 수 있다는 점과 둘째 그 100가지는 정상이었을 때는 안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만개보다 100개가 더 소중하다.

2007년 11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후 어느 날 저녁 뉴스에서 시각 장애인 골프대회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아니 장애인이 아니었을 때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골프를 쳤던 그인지라 다음날 당장에 전화를 걸어 회원에 가입했다. 좌절 후 골프채를 아파트 쓰레기통에 내동댕이쳤었는데 아내(유영출)가 몰래 다시 가져다 두었었던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국내 선발전에서 우승을 하고 2008년 일본에서 열린 오픈 대회에 초청되었다. 하지만 IBGA (International Blind Golf Association) 국제 협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아 출전은 못했다. 그는 귀국한 후 바로 한국 협회를 만들고 국제 협회에도 가입한다. 한국에는 약 100여명의 장애인 골퍼들이 있다. 이 중에 조인찬씨가 유일한 국가대표다.


그는 지난 19일 마친 ISPS 한다(Handa) US블라인드 오픈에서 네트 챔피언에 올랐다. 1·2라운드 합계 7언더파 185(96-89)타를 기록해 우승했다. 그의 핸디는 원래 17.2인데 작년 호주대회에서 부진해 24로 떨어졌었다. 이번 우승으로 22정도로 하향 조정될 전망이다. 2등인 탐슨 선수보다 11타를 앞섰다. 시각장애인 골프는 B1, B2, B3로 구분되는데 B1은 전맹(빛을 전혀 감지할 수 없는 상태), B3는 약시를 의미하고, B2는 그 중간 사이의 등급으로 희미하게 사물을 볼 수 있다. 시각장애인 1급인 조인찬씨는 이번 대회 B2 부문에서 네트 정상에 올랐다. 조인찬씨는 이번 우승으로 국제 시각장애인 대회에서 통산 4승을 거뒀다. 영국에서 열리는 브리티시 블라이드오픈에서 우승하면 블라인드 4대 메이저대회 커리어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시작장애인 골퍼에게는 상금이 없다. 경기 참여를 위한 경비는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협회에서 주는 우승 격려금이 약 50만 원 정도, 볼빅에서 용품 후원, 에고에서 슈즈 후원을 받고 있다. 서울 한양 CC, 가평 베네스트, 안성 베네스트, 글렌로즈 골프장에서 9홀 연습라운딩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위해 후원해주고 있는 기업들과 자신의 서포터로 동고동락을 함께 하고 있는 김신기 씨에게 감사를 전했다. 김신기 씨는 홀을 안내해주고 볼을 놔주는 등 시각장애인 골퍼의 눈이 되는 역할을 한다. 골프장 외에서도 손과 발이 되기 때문에 캐디라고 하지 않고 서포터라고 부른다. 

장애인을 위한 국제 대회는 연간 6개 정도가 있다. 호주 오픈, 캐나다 오픈, US 오픈, 브리티시 오픈, 이태리 오픈과 남아공 오픈이 그것이다. 저팬오픈이 있었으나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잠정 중단되었다. 

그에게 골프란 무엇일까?  그는 "골프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떻게 사는 게 가장 잘 사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자문하고 “그것은 하루하루를 성의 있게 정성껏 그리고 소중하게 사는 것”이라고 자답한다. 

골프도 첫 홀에서 마지막 홀까지 한 샷 한 샷을 성의 있게, 정성껏, 그리고 소중하게 해야 만족스런 스코어가 나오니 인생과 같다는 말이다. 살다보면 ‘조금만 참을 걸’하며 후회하기도 하고 ‘욕심을 부려 망치는 일’도 있듯이 골프도 그렇다. 

그는 또 Golf is a game of honesty, integrity and fairness(골프는 정직, 진실, 공정의 게임)라고 말한다. 그가 만났던 골퍼 중에 가장 정직 골퍼가 생각난다.

2012년 캐나다 오픈에서 그는 진정한 골퍼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긴다. 그는 첫 번째 경기에서 90타를 쳐 87타를 친 제레미 포인스낫 선수(당시 23세)를 3타차로 따라가고 있었다. 13홀까지 경기에서 1타차로 따라잡은 조 선수는 14번 홀에서 동점으로 가는 것이 목표였다.

파 4홀인 14번 홀에서 조 선수는 3 온을 했고 젊어서 힘이 좋은 제레미 선수는 두 번째 공을 그린 에지 러프에 살짝 올려놓은 상태였다. 조 선수는 투 펏을 해 보기로 마쳤고 제레미 선수는 더블보기를 해 두 선수가 동타가 된 상황이 되었다. 

홀을 마친 조 선수는 다음 홀 티박스에 도착해 있는데 제레미 선수가 14번 홀에서 떠나지 않고 서포터인 아버지와 레인저와 함께 모여서 무언가 심각하게 논의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이 지난 후 티박스에 도착한 제레미와 그의 아버지는 제레미가 14번 홀에서 6타가 아닌 7타, 즉 트리플 보기를 했다고 조 선수에게 알려왔다. 

내용을 들어보니 제레미가 러프에 걸려 있는 공을 치려고 할 때 공이 살짝 움직인 것을 카운트하지 않은 것이었다. 공이 움직인 것을 제레미는 알지 못했고 서포터인 아버지만 본 것이다. 너무나 조금 움직였기 때문에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맹인인 제레미도 공이 클럽에 닿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 라이오넬 포인스낫 씨는 이 사실을 레인저에게 알렸고 자진해서 벌타를 가산한 것이었다. 아들에게 정직을 가르치기 위한 아버지의 수준 높은 현장 교육이었다. 

당시 두 번째 라운딩에서 86타를 친 조 선수는 92타를 친 제레미를 앞질러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조인찬 씨는 "하지만 그날 주인공은 우승한 내가 아니었고 참정직을 보여준 아버지 라이오넬 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진정한 골프의 정신을 지켰기 때문이다. 조인찬씨는 이래서 골프가 좋다고 말한다.

그는 아직도 일주일에 3번씩 연습한다. 내년에 재기되는 재팬 오픈에 출전할 예정이다. 그는 멈추지 않는 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시각장애라는 역경을 맞은 자신이 골프를 통해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많은 정상인들은 물론 여러 형태의 장애인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 그리고 장애인은 불편한 것이지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창공을 나는 골프공에 실어 멀리 멀리 보내고 싶은 것이다.


볼빅이 후원하고 있는 2015 시각장애인 US 오픈 골프 네트 챔피언 조인찬씨


mkweek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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